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보다

by 김인영



줄거리


계유정난 후 어린왕 이홍위(단종)가 유배길에 오르자 강원도 영월 산골 촌장 엄홍도(유해진)는 가난한

미을 사람들을 위해 청령포를 유배지로 만들고

그 후

마을 사람들과 유배된 노산군(박지훈)과 당시 정치 세력들과의 이야기.

감추고 싶었던 1457년 역사를 재미와 더불어 배우들의 멋진 연기력으로

설 연휴 흥행을 예고 한다는 영화를 보고 돌아왔다.

어린 단종의 비극적인 삶을 다룬 사극. *왕과 사는 남자*

영월로 폐위된 왕의 이야기를 보며 언젠가 썼던 글이 생각났다.

어린 왕의 왕비였던 정순왕후의 추모식을 다녀온 날이었다.


*영영 이별 영 이별*


봄이 머물다 떠나는 길목에 꽃비가 내린다.

걷기 좋은 날, 지는 것이 아쉬운 듯 희고 붉은 꽃들이 바람에 얼굴을 돌린다.

아침 공기가 꽃술에 맺힌 이슬이고,

내가 마시는 물이 노루와 사슴이 놀다 목을 축이던 물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한 예술인의 낭송이

오백 년 전 한 여인의 아픔 속으로 나를 이끌었다.

찬 밤바람 속에서 단정한 한복 차림의 여인은

말없이 한 영혼의 고통을 대신 견디고 있었다.

담장 뒤 나뭇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며

그 목소리에 응답했다.


그날은 정순왕후 추모행사였다.

한때 국모였고, 한때는 노비로 살아야 했던 여인.

열다섯에 혼인해 억울하게 단종을 떠나보낸 왕비.

사람들은 단종과 그녀가 마지막으로 헤어졌던 다리를

‘영영 이별한 다리’라 불렀다.


청계천의 영도교.

영영 이별, 영 이별—

가슴을 베는 말이다.


궁을 떠나 시녀들과 정업원에 머물며

동냥으로 끼니를 잇되

세조의 음식을 거절했던 기개,

훗날 염색으로 생계를 이어가며

떳떳한 노동으로 살아낸 생.

가슴에 남편의 나무를 심고

평생 그리움으로 살았던 여인.


연극배우 박정자님의 80분 낭송과

해금과 기타의 선율 속에서

나는 왜 마음이 저미는지 알게 되었다.


나는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살아왔고,

잃어본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스스로를 작은 방에 가두고

오지 않은 근심을 삶의 중심에 매달아 왔다.

그 밤, 함민복 시인의

“푸른 마음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다”는 문장이

조용히 나를 일으켜 세웠다.

역사 속에서 잊힌 한 왕비의 삶을 통해

예술이 평범한 사람의 마음을

얼마나 깊이 흔들 수 있는지 배운 밤.


정순왕후는 지금쯤

이승에서 영영 이별했던 그 다리를

하늘에서 내려다보며

“잘 참고 살았노라”고 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별은 이승에만 있으니.











작가의 이전글사람을 위한 건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