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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RT 매거진 Apr 06. 2022

작가 윤위동- 인내의 돌, 의지의 돌

ART TECH 

어느 때보다 미술시장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아트테크’라는 이름으로 그림 구매를 재테크의 수단으로 보기도 하고요. 관심은 있지만 어떤 그림을 구입해야 할지 막막한 분들을 위해 <SRT매거진>이 요즘 주목받는 젊은 작가들을 소개합니다. 서울미술관을 건립한 안병광 회장은 “그림 한 점을 소장한다는 것은 인생에 여유와 여백을 들여놓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번 기회에 일상에 예술 한 점, 그리고 여유한 점을 들여놓는 것은 어떨까요?




작가 윤위동이 그려내는 풍경은 고요하다. 그러나 극적이다.

editor 김은아 photographer 성종윤


흰 모래 위에 얹힌 돌. 작가 윤위동의 ‘모놀로그’ 시리즈는 분명 멈춰 있는 장면을 포착한 정물화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관람객들은 이 풍경에서 생동하는 이야기를 읽어낸다. 모래를 헤치고 나아가는 돌,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돌, 우직하게 자신의 궤적을 만들어내는 돌… 마침내는 삶에서 버티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이러한 감상은 과연 우연일까? 이 시리즈가 탄생하기까지 작가가 걸어온 여정을 듣는다면 필연처럼 느껴질 것이다. 처절한 고독과 자기 불신, 그리고 가난의 시간을 견디고 기나긴 슬럼프의 터널을 빠져나온 끝에 완성한 것이 바로 ‘모놀로그’ 시리즈이기 때문이다.

 

윤위동을 경기도 장흥에서 만났다. 가나아틀리에 입주작가로 활동 중인 그의 작업실이 있는 곳이다. 그는 자신이 지나온 가장 내밀한 고통의 시간을 담담히 털어놓았다. 그의 이야기를 들은 뒤에 바라본 작품은 사뭇 다른 뭉클함을 전해준다. 극사실주의 화법으로 정교하게 묘사한 풍경, 그림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캔버스 위에 완벽하게 재현한 기술적인 경이로움이 주는 감동은 그의 이야기에 비하면 작게 느껴진다.


붓을 처음 들었던 순간을 기억하나.

서너 살 때인가 어머니를 그렸는데 칭찬을 받았다. 기분이 좋아 계속 그리다 보니 실력이 늘었다. 초등학교 때 미술학원에 처음 갔는데, 연필로 명암을 표현하는 것이 너무 신기하더라. 그게 재미있어서 열심히 다녔다. 다른 학원생보다 일찍 출석해서 늦게 집에 가고… 그러다 보니 대학(중앙대 서양화 전공)에 가서도 나름 잘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다가 10년 전쯤, 가나아틀리에에 입주한 뒤 슬럼프를 겪었다.


‘레지던시 입주작가’ 면 어느 정도 잠재력과 작품성을 증명한 것 아닌가.

입주해 있는 작가들이 워낙 쟁쟁하다. 이곳에 와서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걸 깨달았다. 더군다나 그림도 안 팔렸다. 문형태, 장마리아 작가 등 비슷한 고민을 겪었던 선배 작가에게 고민 상담도 많이 했다. ‘그림이 안 팔리는데 어떤 동력으로 작업을 계속할 수 있을까요’ 하고. ‘그냥 버티라’고 하시더라. 그게 답이겠더라. 지나 보니 그런 시기를 잘 보내는 것이 작가에게 정말 중요한 것 같다.


‘모놀로그’ 시리즈 이전에는 극사실주의 화법으로 인물을 그리다가 자연으로 눈을 돌렸다.

극사실주의로 인물화를 작업하는 것은 정말 고통스럽다. 시간도 굉장히 오래 걸린다. 그렇게 해서 토씨 하나까지 그대로 옮기는 작업이 인위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딱 100점을 그리고 나니까 작업 방식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히 들었다. 오래 그리기 위해서는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처음에 무엇을 그려야 할지 몰라 주변에 있는 생물들을 그린 게 시작이었다.


왜 하필 자연이었나.

다른 곳에 눈을 둘 데가 없었다. 정말 스트레스가 극심했을 때여서. 수입이 일정치 않으니 신용불량자가 되었다가 풀리기를 반복하고, 교류하는 사람도 없어서 정말 외로웠다. 다른 건 다 잊고 싶어서 풍경만 봤다. 어느 날은 땅을 보는데, 공주 개미 한 마리를 중심에 놓고 일개미들이 둘러서 있더라.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그런 체계를 이뤄서 살아간다는 게 꼭 인간사회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한동안은 개미를 그렸다. 또 장흥에 무당벌레가 엄청나게 많다. 외로울 때 무당벌레를 친구 삼아 많이 그리기도 했다.

지금의 주제는 어떻게 찾았나.

자존심을 다 내려놓고 선배들의 그림을 공부했다. 김창열, 이우환 선생님처럼 대가들의 작품을 따라 그려보기도 하고, 그 안의 작품세계를 공부했다. ‘왜 성공했는가’를 찾고 싶었던 것인데, 작품의 진가를 알게 되었다. 잘 그리는 건 기본이고 작품 안에 철학이 있었다. 삶의 순환, 무(無) 같은 철학을 그림에 담아낸 것이다.


사실화로는 어떻게 철학을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자연과학에서 답을 찾았다. 흙에 열과 압력을 가하면 돌이 되는데, 반드시 필요한 소재가 있다. 바로 수분이다. 모래 위를 헤치고 가는 돌이 순환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윤회, 고진감래를 담고 있다고도 느꼈다. 물방울, 돌이라는 각각의 주제에 집중하는 작가는 있지만 이 요소들을 통합하는 작품은 없다. 나는 이 요소들을 통합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윤위동, Monologue 276, 캔버스에 레진, 모래, 아크릴, 72.7x60.6cm, 2021

자신이 영향을 받은 작가들을 거론하는 것을 꺼리는 작가도 많다.

숨기고 싶지 않았다. 영향을 받은 것이 사실이니까. 진심이야말로 결국 좋은 작업을 만든다고 생각하는데, 진솔하지 못하면 안 될 것 같다. 한 번은 꿈을 꾼 적이 있다. 고승(高僧)이 자신이 쓰던 오래된 목탁과 옷을 나에게 건네주는. 잠에서 깬 뒤에도 한동안 느낌이 묘했다. 답은 선배들에게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점을 찍는 것 같았다.


그런 방황의 시기에서 ‘모놀로그’ 시리즈가 나오는 데 2년이 걸렸다고.

스타일을 바꾸는 것도 고통스러웠다. 가수라고 치면 발라드에서 록으로 장르를 바꾸는 것과 마찬가지다. 선배들 작품을 공부하다 보니까 이전에 알던 것들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되더라. 그런 시간을 지내다 보니 방황하던 시기에 그리던 자연물로 돌아오게 되었다.


기억나는 인상적인 평이 있다면.

돌을 보며 추진력, 자신이 힘들 때가 떠오른다면서 감동받는다고 하시더라. 작품을 구입한 어린이가 “열심히 낑낑대며 움직이는 돌멩이, 힘들어서 쉬는 돌멩이, 그런 돌멩이를 안아주는 모래”라는 시를 썼다. 어떤 사물이든지 의도하지 않아도 내가 담기게 되나 보다. 흔들리지 않고 목표를 향해 끝까지 나아가는 의지를 느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는데, 알아주셔서 감사하다.


기나긴 슬럼프를 지나온 뒤, 지금은 작가관이 변했나.

그전에는 대단한 화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꿨다. 지금은 다르다. 대단한 작가들은 워낙 많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작업을 해나가고, 이 작업을 좋아하는 분들이 생기고, 그분들이 좋아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림이 이해가 되고 공감이 되길 바란다. 또, 말로 표현하기보다는 그림으로 던져주는 작가가 되고 싶다. 관람객이 스스로 감상하고 상상하게끔. 그런 과정에서 창작자도 모르는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작가 윤위동

주요 이력 중앙대 서양화 졸업, 가나아틀리에 입주 작가 작품 

소장 기관 한원미술관 외 

작품 추정가 약 500만 원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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