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TECH
어느 때보다 미술시장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아트테크’라는 이름으로 그림 구매를 재테크의 수단으로 보기도 하고요. 관심은 있지만 어떤 그림을 구입해야 할지 막막한 분들을 위해 <SRT매거진>이 요즘 주목받는 젊은 작가들을 소개합니다. 서울미술관을 건립한 안병광 회장은 “그림 한 점을 소장한다는 것은 인생에 여유와 여백을 들여놓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번 기회에 일상에 예술 한 점, 그리고 여유한 점을 들여놓는 것은 어떨까요?
작가 진영은 공동체의 따스함에 주목한다.
editor 김은아 photographer 성종윤
누군가의 말을 따라 하고, 반복하는 습성 때문일까. 앵무새는 긍정적인 비유에서는 보기 힘든 동물이다. 작가 진영이 캔버스 위에 앵무새를 그리기 시작한 이유도 이와 멀지 않다. 그러나 작가는 특유의 따스하고 유머러스한 시선으로 앵무새들에게 평화를 선사한다. 그들과 똑 닮은 우리의 마음이 함께 편안해지는 이유다.
‘작가 진영’의 시작은 언제부터였나요.
디자이너였던 아빠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아빠가 작업하는 모습을 보며 자랐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미술이나 디자인의 길을 걷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죠. 그리고 본격적으로 입시를 준비하면서 ‘그림을 그린다’는 그 자체에 푹 빠지게 되었어요.
학부와 대학원 모두 한국화를 전공했습니다. 최근 작품들만 보면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한국화의 재료나 표현기법에 완전히 매료되었죠. 그래서 초기에는 한지를 이용한 작업을 했고요. 다양한 재료로 작업을 하긴 했지만. 여전히 마음 한편에는 ‘한국화란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이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한국화’라고 규정된 범위를 벗어나 보고 싶었어요. 한지가 아니라 캔버스에 작업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국화 작업을 하는 선배 작가들 중에서도 다양한 매개를 활용하는 분들에게서 용기를 얻었죠. 어떤 장르에 국한되기보다는 ‘작가 진영’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고요.
한국화 작업과 현재의 작업에서 일맥상통한 부분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거예요. 저는 사람에 대한 관심이 많고, 사람의 시선이라든지 군중에 대한 주제들에 늘 호기심을 느꼈거든요. 현재의 작업들과도 주제 면에서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표현 방식에서는 많은 변화가 있었죠. 처음엔 분위기도 다소 어둡고, 시니컬한 시선으로 바라봤던 것 같아요. 엄마가 ‘그림 무서워서 집에 못 걸겠다’라고 하실 정도였죠.
동화책의 한 페이지 같은 현재 작업을 봐서는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스타일에서 이러한 변화가 일어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대중성을 고민하면서부터였어요. 사람들이 작품을 봤을 때 우선 기분 좋게 받아들일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 안에 메시지가 무엇이든 심각하기보다는 유쾌했으면 하는 바람이었죠. 처음에 앵무새의 머리 부분만 있다가 몸도 생기고 지금의 형태가 되었습니다.
앵무새를 빼고 작가 진영을 이야기할 수 없죠. 꼭 ‘앵무새’여야 했던 이유가 있습니까?
역시 사람에 대한 이야기에서 출발했습니다. 스스로 생각하거나 판단하기보다는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 하는 사람들의 모습, 군중심리에 휩쓸리는 모습에서 앵무새를 떠올리게 됐어요. 특히 SNS와 각종 미디어에서 쏟아지는 정보가 많은 요즘은 더욱 그런 경향이 심하고요. 누군가 다른 목소리를 내면 경계를 하고, ‘틀리다’고 판단하는 것이 사회적인 현상이 아닌가 싶어요. ‘행복’만 해도 그렇죠. 모두가 행복하기 위해서 그토록 치열하게 노력하는데, 그 행복의 기준은 남들의 시선에 달린 경우가 많죠. 이러한 현상들에 대해 ‘과연 이게 옳은 걸까’ 하는 질문의 표현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저 역시 그런 면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소심하기도 하고, 남의 눈치도 많이 보는 편이고요. 그런 점이 투영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비판적인 주제와는 상반되게 작품의 분위기를 따뜻하고 즐겁게 표현한 것은 어떤 이유에서 입니까?
일종의 블랙코미디로 받아들여주셨으면 해요. 그러나 이러한 배경을 꼭 인지해야 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관람객이 그림을 볼 때는 자신의 가치관이나 경험에 따라 정말 다채로운 감상이 생겨나잖아요. 이를테면 어느 전시에서는 그림 속 앵무새 중 누가 자신을 닮았는지 찾는 분도 있었는데 재미있더라고요. 제 작품을 소장한 컬렉터분들과 대화를 나누면서도 느꼈고요. 그래서 작가로서 열심히 작품 해설을 하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아요. 그보다 관람자가 작가의 의도에 편안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쉽고 재미있게 다가가자는 생각이에요.
오래전부터 항상 ‘대중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말해왔는데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앵무새들은 작품 속에서만큼은 평화로워 보입니다. 그림 속에서라도 그들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인가요?
그렇다고 할 수 있죠. 앵무새의 따라 하는 습성을 비판적으로 이야기했지만, 사실 긍정적인 면도 분명히 있거든요. 서로 공감하고 연대하고, 사회라는 공동체를 이뤄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힘도 여기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사회적인 동물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가 있었기에 사회가 발전되어왔다고 생각하고요.
울창한 숲과 공원이 배경으로 자주 등장하는 이유가 있나요?
‘숲 시리즈’에 등장하는 공원은 초반 작업에는 잘 쓰이지 않았던 공간이에요. 도시에 살면서 조금이나마 자연을 느끼고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곳이 공원밖에 없더라고요. 아마 자녀를 기르는 분들은 공감하시겠지만, 아이와 함께 외출하면 생각보다 갈 만한 곳이 많지가 않거든요. 육아를 하다 보면 뭔가 갇혀 있고, 소외된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는데 그럴 때 저는 계속 공원을 찾았어요. 그때 시간이 작품에 자연스럽게 표현되었다고 생각해요.
앵무새들이 앞으로 새로운 둥지를 찾을 수도 있을까요? 계획 중인 다른 시리즈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숲 시리즈’와 같이 제 작품은 제일상과 굉장히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요. 그래서 가끔 ‘확장성이 있는 작가’라고 농담하기도 하죠. 언젠가 제가 남대문시장에서 갈치조림을 먹고 감동을 받으면, 그 장면이 작품 속에 등장할 수도 있을 테니까요(웃음). 앞으로의 작품 역시 저의 관심사와 경험에 따라 많이 달라질 것 같습니다.
저 역시 궁금하고 기대되는 부분이에요.
작품 활동의 원동력은 무엇입니까.
어떻게 들릴지는 모르지만, 작품이 팔리는 경험이죠. 저뿐만 아니라 작가 누구에게나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작품을 좋아해서 구입까지 하는 분이 있다는 사실. 그만큼 큰 동력은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앞으로는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구매하는 분들이 점차 늘어났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미술시장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지면서 그림 구입을 투자의 개념으로 바라보기도 하지만, 그림 소장은 작가와의 동행과도 같거든요. 작품을 소장한다는 건 그 작가가 어떻게 성장하는지를 함께 지켜보는 일이기 때문이죠. 앞으로 오랫동안 활동해주기를 바라는 작가가 있다면 컬렉팅이 어떤 응원보다 큰 힘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작가 진영
주요 경력 경희대 대학원 한국화 전공
소장 기관 국립현대미술관, 마이알레 외
예상 가격 2000만 원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