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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RT 매거진 Jun 13. 2022

작가 김현수, 기억 속의 숲을 거닐다

작가 김현수의 캔버스는 온통 녹음으로 가득하다.

editor 김은아 photographer 성종윤


작가 김현수는 자신의 고향인 제주의 풍경과 숲을 주제로 작업한다. 그러나 제주로 떠나도 그 숲을 찾을 수는 없다. 그림 속 숲은 사실적인 풍경이 아닌 작가 마음속에 간직한 어릴 적 기억이기 때문이다.




자연은 오래전부터 작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준 고전적인 소재입니다. 김현수 작가의 마음에 숲이 들어온 것은 언제인가요.

아주 어릴 때부터요. 고향이 제주거든요. 저는 제주 시내에 살았지만, 어릴 때부터 제주시 조천읍에 사시는 할아버지 댁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어요. 주말은 물론이고 방학이 되면 몇 달 동안 그곳에서 살았죠. 할아버지와 바다에서 물장구를 치고, 할아버지가 목장에 가실 때 오토바이 뒤에 타고, 그렇게 자연과 가깝게 지내면서 그때의 기억이 차곡차곡 쌓인 것 같아요.


유년 시절의 기억을 캔버스 위로 풀어놓게 된 계기가 있나요?

대학원 때 무심코 풍경을 그렸는데, 친구들이 제주도인 걸 단번에 알아차리더라고요. 이국적이고 색다른 풍경이라는 평과 함께요. 돌담, 야자나무, 축축한 흙이 저에게는 익숙하고 평범한 풍경이었는데, 저에게는 일상적이고 당연한 것이 누군가에게는 특별할 수 있는 걸 깨닫게 되었어요. 그때부터 평소에는 잊고 지내던 소중한 기억을 그림으로 발전시키는 작업을 해오게 되었습니다. 제가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소재라는 확신이 있었거든요.


제주가 아무리 유명한 여행지라고 해도, 분명 김현수 작가만이 아는 풍경이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떤 특정한 장소보다는 저의 기억 속 장면으로 설명하고 싶어요. 이를테면 할아버지 오토바이 뒤에 앉아 있을 때라든가요. 꼬불꼬불한 시골길을 지나서 삼나무가 정글처럼 우거진 숲을 통과했던 것이 기억나요. 뾰족뾰족한 나뭇잎이 짙은 녹색의 터널을 이루고 있고, 잎과 흙에서는 축축하게 젖은 냄새가 풍겼죠. 숲을 빠져나온 다음 멀리서 보이던 빽빽한 삼나무들… 그림에도 이렇게 직접 살면서 경험한 제주의 풍경을 표현하려다 보니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는 좀 다른 풍경이 그려지는 것 같아요. 오랜 기간 차근차근 축적된 장면들이죠.


김현수, 시골길, 장지에 채색, 97x99cm, 2020


수많은 초록 중에서 다소 무겁고 채도가 낮은 색을 주로 사용하는 이유가 있나요.

종종 같은 질문을 받아요. 제가 느끼는 제주만의 색과 질감이자, 저의 경험을 가장 잘 재현할 수 있는 색을 고른 거죠. 어릴 때 본 제주의 숲은 무섭게 느껴질 정도로 어둑했어요. 푸릇푸릇하고 새싹 같은 느낌보다는 오라가 대단했죠. 할아버지 등 뒤에 숨곤 하던 기억이 나요. 그래서 짙고 축축한 색을 고르게 되었어요.


사실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추상화하고 단순화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있는 그대로의 풍경을 세밀하게 그린 것이 아니라 기억 속 풍경을 저만의 느낌으로 표현하기 위해서죠. 여러 가지 장면이나 시간이 합쳐지면서 단순화하고 추상화하는 방법을 선택하게 되었어요. 


기억이라는 소재가 한정적이라고 느낄 때는 없나요.

어린 시절을 그곳에서 보내는 동안 쌓은 기억이 너무 많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다양한 풍경이 나오는 것 같아요. 요즘에도 한 달에 한 번은 제주를 찾는데 새롭게 만난 장면이 더해지기도 하고요. 마음에 울림이 있거나 인상 깊은 장면을 만나도 따로 사진을 찍거나 하지는 않아요. 그런데도 캔버스 앞에 앉으면 문득 떠오르는 장면들이 있어요. 마당이나 길가에 이름 없이 돋아난 풀들 같은 거죠. 이렇게 새롭게 쌓인 기억이 무의식 중에 담아둔 과거의 기억과 만나 하나의 풍경을 완성하게 돼요. 그래서 작품에는 과거와 현재의 제가 함께 들어가 있다고 할 수 있어요. 과거부터 지금까지 계속 쌓아가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고요.


작품을 통해서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나요.

결국 말하고 싶은 건 자연과 인간은 연결되어 있다는 메시지, 그리고 두 존재가 함께 행복하게 공존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제주의 풍경은 이런 이야기를 대변하는 소재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할아버지와 매일 통화할 정도로 가깝게 지내는데, 제가 선물해드린 화분에서 얼마나 식물이 자랐는지 관찰한 내용을 말씀해 주세요.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화분이 할아버지에게는 우주구나, 또 식물 하나로 나와 할아버지의 관계가 더 넓어지고 성장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죠. 이언 점에서 사람과 자연이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곤 해요.


작업을 하면서 가장 좋아하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캔버스에서 작업을 하는 그 자체가 행복해요. 밥도 안 먹고 10시간을 연이어 작업할 때도 있을 만큼 그 순간에 몰입하는 편이에요. 빈 화면에 제가 뭔가를 만들어낸다는 것이 재미있고 신기해요. 어떤 풍경이 완성될지 너무 궁금하고요.



김현수 작가

주요 경력 성신여대 대학원 동양화과, 제주 청년작가전 선정(2021), 제주 미술대전 우수작가상(2019) 외

예상 가격 420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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