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주식을 소유하는 ‘ETF’에 투자할 때.
한국경제 김용준 기자
주식시장에 유명한 일화가 하나 있습니다. 인간의 능력에 대한 얘기입니다. 원숭이와 펀드매니저의 수익률 대결로 알려져 있는 이벤트입니다.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이 이 게임을 실제로 했습니다. 원숭이는 신문에 실린 주식시세표에 다트를 던져 종목을 찍었습니다. 펀드매니저들은 자신이 갖고 있는 각종 노하우와 분석을 모두 동원해 투자했습니다. 이후 10개월 수익률을 비교해봤더니 원숭이가 더 높았다고 합니다. 원숭이는 아니지만 비전문가가 전문가를 이기는 일이 2020년 우리 주변에서도 다반사로 벌어졌습니다.
2020년 3월 주가는 곤두박질쳤습니다. 1400대까지 떨어졌습니다. 코로나19의 충격이었습니다. 하지만 시장은 곧 반등에 성공합니다. 정부가 급속한 경기침체를 막기 위해 시중에 돈을 어마어마하게 풀었기 때문입니다.
이때는 어떤 종목을 찍어도 올랐습니다. 예를 들어 ‘삼영’이라는 회사를 추천받았으나 잘못 알아듣고 ‘삼강’이라는 회사를 샀는데 200% 넘는 수익률을 올렸다는 사람도 봤습니다. 안 오르는 종목을 찾기 어려웠던 게 2020년이었습니다.
하지만 과거 전문가로 불리던 일부 투자자는 큰돈을 벌지 못했습니다. 1400대까지 떨어졌던 주가지수가 1700, 1800을 가자 “다시 하락할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에 과감히 베팅하지 못했습니다. 이후 주가는 3000까지 날아갔습니다. 과거의 경험이 독이 된 거지요. 물론 원숭이와 인간의 대결에 대해서는 “원숭이가 이겼을 때만 화제가 되기 때문에 알려진 것”이라는 반론도 있습니다.
어떻든 주식투자는 어렵습니다. 특히 주가가 3300을 찍고, 내려와 흔들리는 요즘 같은 시장에서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인지 최근 주식시장에서는 상장지수펀드(ETF) 얘기가 많이 나옵니다. 명칭은 어렵지만 그 연원을 알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종목보다 지수에 투자하기
미국에 존 보글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펀드매니저 또는 자산운용사들이 가져가는 수수료가 문제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미국에서는 한국처럼 개인이 직접 투자하는 것보다 전문가(펀드매니저)에게 돈을 맡기는 펀드 투자가 일반화돼 있습니다. 문제의식을 갖고 있던 차에 그는 무언가를 발견했습니다. 개별 종목에 투자하는 것보다 지수(다우지수·S&P 500 지수)에 투자하는 게 장기적으로 더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것 말이죠.
뱅가드라는 자산운용사를 설립한 그는 “모든 주식을 소유하는 방법”이라며 인덱스펀드를 내놓습니다. 지수에 투자하는 펀드입니다. 지수만 따라가면 되니까 매니저들이 개별 종목을 발굴하거나, 기업 탐방을 가거 나할 일이 없어집니다. 그만큼 펀드 운용에 비용이 적게 들기 때문에 투자자의 부담은 줄어들게 됩니다. 특정 지수를 따라간다고 해서 이런 상품을 ‘패시브 펀드’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새뮤얼슨 교수는 “존 보글의 인덱스펀드 개발은 바퀴와 알파벳 발명만큼 가치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뱅가드는 인덱스펀드 덕에 세계 최대의 자산운용사가 됐습니다. 하지만 인덱스펀드도 펀드이기 때문에 직접 가입을 해야 하는 등의 단점이 있습니다. 이런 단점을 해결한 상품이 바로 ETF입니다. ‘거래소에 상장된 인덱스 펀드’라고 보면 됩니다. 주식과 똑같이 거래하는 상품이지요. 미국 시장이 앞으로 좋다고 생각하면 S&P나 나스닥 관련 ETF를, 한국 시장이 좋다고 생각하면 KOSPI ETF를 사면 됩니다.
이미 많은 투자자는 ETF의 세계로 발을 들여놨습니다. 작년에 개인투자자들이 순매수한 ETF 규모만 10조 원에 달합니다. 2002년 국내에 첫선을 보인 뒤 ETF 시장은 20년 새 200배 넘게 커졌습니다. ETF 자체가 분산 투자의 기능을 갖고 있고, 거래가 편리하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입니다. 또 퇴직연금 계좌에서는 개별 종목을 사고 팔 수없지만 ETF는 사고팔 수 있습니다. 적극적으로 퇴직연금을 굴리려는 투자자들이 이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습니다.
ETF 시장도 경쟁 중
조금 더 공격적으로 투자하려는 사람들에게도 ETF는 새로운 또 다른 선택지를 주고 있습니다. 각종 테마 ETF와 액티브 ETF가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메타버스 ETF, ESG ETF 등이 테마형 ETF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즘 드라마·영화·게임·K팝 등의 인기가 좋아 K컬처에 투자하는 ETF도 나왔습니다. 액티브 ETF는 패시브 상품인 ETF에 매니저의 능력을 결합한 상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품이 쏟아져 나오다 보니 상장종목 수도 4개(2002년)에서 533개로 늘었습니다. 경쟁이 그만큼 치열해진 것이지요.
투자자들에게는 이들의 최초·최저 경쟁은 반가운 일입니다. 이 경쟁 덕에 선택의 폭은 더 넓어졌습니다. 골프, 탄소배출권, 금 현물, 중국 커촹반50(STAR50) 등 이색 상품을 쏟아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수수료도 더 싸지고 있습니다. 현재 수수료는 연 0.19%에서 0.4% 정도인데 최근에는 0.05%인 상품까지 나왔습니다.
이처럼 경쟁이 치열해진 이유는 국내 ETF 시장을 이끌고 있는 삼성자산운용(브랜드 KODEX), 미래에셋자산운용(브랜드 TIGER)에 KB자산운용 등 후발주자들이 도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계속 커지는 시장을 눈뜨고 앉아서 경쟁사에 내줄 수만은 없다는 게 이들의 생각입니다.
“경쟁은 시장을 효율화하고 소비자를 이롭게 한다”는 말이 한국의 ETF 시장에 딱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ETF를 다른 용도로 활용하는 투자자들도 있습니다. 현재 모든 국내 상장 ETF는 매일 투자 종목(포트폴리오)과 비중을 공개하는 점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수익성이 괜찮은 ETF가 펀드에 편입한 종목을 유심히 보며 거래하는 것이지요. 벤치마킹 전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전문가가 사석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자본주의가 발전할 것이라고 믿는다면 모든 기업을 살 수 있는 ETF를 사는 게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한국경제 김용준 기자
스토리텔러를 꿈꾸는 경제기자. 숫자에도 사람 냄새가 배어있다고 생각하며 취재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