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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조 Oct 26. 2024

자무쉬의 고래


대흥역 근처에는 한옥으로 된 카페가 하나 있다. 

원래 그곳의 이름은 하숙이었는데, 나는 영어로 적힌 그 이름을 보면서 완전히 다른 단어인 양 발음해보는 일을 좋아했다. 이제는 그 작가의 이름을 제대로 읽을 수 있지만, 여전히 서점에서 베르나르 베르베르(Bernard Werber)의 이름을 보면  웨르베르, 속으로 말해보며 혼자 웃는 것처럼.


한국에 돌아오니 그 집 이름이 카페 자무쉬로 바뀌어 있었다.

내 머리는 짐 자무쉬, 하고 자동으로 단어를 이어버린다. 

그러면 나는 카페의 간판에 그려져 있는, 검고 진한 선으로 그려진 도깨비나 가면 같은 로고는 떨쳐내듯이 잊어버리고

곧 선명하게 느낀다.


시원하고 향그러운 자두와,  아침 빛이 쏟아져내리는 맨얼굴

바 테이블의 투명한 맥주 거품,  어두운 골목에서 세탁기가 돌아가는 작은 형광등 빛이라든가

검고 구불거리는 아름다운 긴 머리,  줄무늬 이불

같은 것들로 느껴지는 그 영화를


여름의 환한 살구 냄새 같은 카페 자무쉬 앞에 가만히 서서 나는 겨울을 생각했다.

그 앞을 지날 때마다 언제 카페의 리모델링이 끝나는가 서성거리며 기다렸던 나를, 내가 네덜란드에서 보낸 6개월의 시간과 그 두께가 변화시킨 작은 한옥 카페의 이름을 생각하는데, 언덕길을 오르는 익숙한 모습이 보였다. W 교수님이었다.

알아보기는 단번에 알아봤지만, 눈을 크게 뜨고 허공에 꼬리만 설렁거리는 강아지처럼 굳어 있는데 교수님이 나를 알아보시고 인사를 해오셨다.


ㅡ오랜만이에요, 잘 지냈어요?


연극과의 W 교수님은 내가 동경하는 분. 

나는 연극 무대의 까만 햇빛 같은 조명 아래 서 있는 것처럼, 무대에 서서 객석을 바라보며 느끼는 박동처럼 이 분을 동경한다. W 교수님이 연출하신 연극을 본 날, 눈물이 말라붙은 볼에 닿는 겨울의 차가운 공기를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다음 날 강의가 끝나고 교수님을 찾아가 덜덜 떨리는 다리로 앉아 꿋꿋이 내가 느낀 모든 감각을 가능한 세밀하게 말하려고 했다. 

흔들리는 지하철을 타고 집에 돌아가며 느꼈던 영원처럼 멍한 박동 같은 것을. 

그런 박동은 뽀득하고 새로운 눈처럼 쌓여, 나는 대학에 와서 오랫동안 쓰지 않던 글을 다시 쓰기 시작했다. 교수님의 연극을 보고 하나를, 그리고 마지막 강의를 듣던 날에 또 하나를. 

철학을 좋아하던, 예전의 그 애가 내 글을 시작한 사람이었다면, W 교수님은 내 글을 다시 움직인 분이었다.








한겨울의 어느 날들을 기억한다. 

국적이 다른 아홉 명이 김진환 제과점 아래의 스튜디오에 모였었다. 독일과 캐나다, 미국과 인도, 베트남과 노르웨이, 그리고 불가리아와 한국에서 온 이들이 모여 연극을 구상했었다. 

그날 청록색 벽과 거대한 거울로 둘러싸인 지하의 스튜디오에서 우리는 대본을 읽었고, 무대를 이야기하다가 인도의 친구가 불쑥 말했었다. 5분만 쉬었다 하면 안돼?  그리고 불가리아 친구가 말을 이었다. 눈 온대, 첫 눈이래.

그래서 아홉 명이 와르르 웃음을 터뜨리듯이 계단을 뛰어올라가 흐린 하늘 아래 먼지처럼 솔솔 오는 첫 눈을 맞았고, 한 달 뒤에 올린 연극에서 우리는 모두 각자의 모국어로 대사를 했다. 다 함께 영어로 이야기하다가, 한 명씩 독백을 했다. 두 손을 가슴께에 얹고 쏟아내던 노르웨이어를, 히터가 잘 돌지 않아 찢어진 스타킹 같은 의상을 입고 덜덜 떨었던 베트남어를, 사리를 입은 뒷모습에서 들리던 힌디어를 기억한다.


내가 말할 수 있었다면, 그럴 수 있었을까?

내가 느낀 것에 대해서, 겪은 것들에 대해서.


나는 내 대사를 한국어로 말하면서, 함께 무대에 선 저들이 모두 내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으리라는 것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내가 그들의 언어를 모두 이해했던 것처럼  - 한국어보다도 강렬하게.

합정역의 작은 댄스 스튜디오, 네온 불빛 같은 강한 불빛이 내리꽂히고, 객석과 무대 ㅡ 관객과 배우의 구분이라고는 관객들이 앉은 방석밖에 없는 이상한 연극을 그들과 함께 올렸다. 그 자리에 W 교수님이 있었다. 그 날의 고장난 히터와 오스스한 추위, 눈빛과 몸으로 전달되던 아홉 개의 언어는 어떠한 예언 같은 것이었다. 내가 누군가와 영어로 사랑과 시를 이야기하게 될 것이라는, 누군가의 힌디어 노래 세 개가 나의 재생목록에 남을 것이라는.


ㅡ네덜란드에 다녀왔구나. 한국에 오니 어때요?

ㅡ습해요.


그렇게 대답하고 나는 웃었다. 

물론 처음보다는 덜 얼어있어도 여전히 나는 W 교수님을 동경하기에 긴장하다가 나온 대답이었지만 ㅡ 나로서는 정말로 달리 할 수 있는 말이 없었을 것이다.

늦여름에 나는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그 날은 하늘에 있는 구름이 거대하고 흐렸는데,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 해로 온통 밝았다. 택시 몇 대가 스쳐지나가는 공항의 긴 지붕은 고래의 뱃가죽 같았다. 

그것을 보면서 나는 암스텔베인의 기숙사에서 듣던 비행기 소리를 생각하고 있었다. 차를 타고 10분 거리에 있었던 공항, 나는 부엌에서든 방에서든 세탁기 앞에서 빨래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든 하루에 몇 번씩 비행기가 뜨고 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비행기가 가까울 정도로 낮게 날아갈 때면 나는 마치 거대한 고래의 울음소리를 듣는 듯했고, 모든 움직임을 멈추고 가만히 서 있곤 했다. 그러면 마치 추위 같은 소름이 몸을 훑고 지나갔고, 소리가 서서히 멀어지면 나는 이상한 개운함을 느끼면서 다시 요리를 하거나 빨래를 꺼냈다.

그러나 이곳에는,

고래의 울음소리가 아닌 고래의 뱃가죽이 있었고, 가장 선명하게 감각되는 것은 습기였다.

나는 꼭 이상한 물고기가 된 것 같았다. 너무 습해서 거의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입을 막으며 숨으로 흘러들어오는 빽빽한 공기, 흐리고 거대한 공기가 내 몸을 감싸고 가하는 압력이 생생히 느껴졌다. 

이상하다. 내가 물고기라면, 

여기서 호흡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곳은 내가 태어난 나라인데.




짐 자무쉬의 영화 <패터슨> 에는, 

미국의 패터슨이라는 작은 도시에 사는 주인공 '패터슨' 이 나온다. 그는 매일 버스 운전사 일을 하면서 시를 쓰고, 애인과 함께 작은 집에 산다. 컨트리 가수가 되고 싶어하는 애인은 컵케이크부터 욕실 커튼까지 모든 것을 검은색과 흰색으로 칠하고, 이상한 맛의 파이를 굽는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패터슨은 자신이 썼던 모든 시를 잃어버린다. 그리고 그는 지겨울 정도로 익숙한 거리를 걸어 어느 나무 가득한 공원에 다다른다. 그곳에서 그는 한 이방인을 우연히 만나 대화한다. 이방인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에게 빈 노트를 선물해주고, 패터슨은 그것을 들고 똑같은 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간다. 마지막에 패터슨의 목소리가 그의 오래된 기억 속에 있는 시 구절 하나를 읊는다. 

Or would you rather be a fish? (아니면 차라리 물고기가 될래?)



나는 그 영화의 감각들을 생각한다.

투명한 맥주 거품에서는 반짝거리는 눈으로 나를 좋아해주었던 사람을 떠올린다. 나에게 잠들기 전 기꺼이 15분 중의 8분을 내주었고, 힌디어 노래로 나에게 남은 사람. 담배 냄새 가득했던 센트럴에서 함께 갔던 바를 생각한다.

애인이 흑백의 아름다운 줄무늬로 칠한 욕실 커튼에서는 샤워를 할 때마다 들었던 주황색 앨범과 자줏빛 바디워시를 생각한다.

패터슨이 쓴 시들에서는 초저녁처럼 환한 9시, 저녁을 사러 가면서 흐르는 강과 황금빛으로 빛나는 오후의 나무들을 두리번거리던 나의 시선을 떠올린다. 

패터슨이 갔던 나무 가득한 공원에서는 내가 춤을 추던 암스텔베인의 어느 풀밭을 떠올린다.


네덜란드에서 나는 춤 추는 법을 배웠다. 

사람들이 아닌 초록과 햇빛에 스미는 법을, 

단정하고 안전한 흑과 백이 아닌 온갖 색깔들에 몸을 물들이고 그것을 아름다워하는 법을. 

나는 이제 이곳에서도 초록색 긴 치마에 살구색 옷을 입고, 딱 맞지 않는 헐렁한 셔츠를 걸치고도 아주 멀리 걸을 수 있다, 부끄러움 없이. 

그렇게 멀리 걷는 동안 머리 위에 우박이 있을지, 언제 하늘의 고래 소리가 들려올지 모르는 일을 사랑한다.



그리고 이제 카페 자무쉬 앞에서,

나는 패터슨이 집으로 돌아가며 걷던 거리를 떠올린다. 

영화는 패터슨이 집을 나서는 길, 매일 단골 바에 가는 길, 집으로 돌아오는 길 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시간은 그 똑같은 길 위에서 흐른다. 앞으로 시간이 지나면 자무쉬는 이름을 바꿀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곳에는 우박이 내리다가 금세 해가 반짝이던 네덜란드, 기숙사 방에서 창밖을 바라보던 내가 있을 것이다. 

변덕스러운 날씨 속에서 춤을 추고 익숙한 길에서는 새로운 빛을 찾는 알록달록한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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