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wn care 하는 날, 미용실 아닌 집 뒷마당에서 머리카락 자르기
큰 딸이 초등학교 졸업을 했다. 아니 어느새! 눈 감았다가 뜨면 또 한치 자라 있는, 이제는 나보다 손도 발도 더 큰 맏딸 졸업식에 참여해 한껏 환영해 주고 집으로 돌아와 (자장면도 못 먹고) 쉬는 와중에 낭군의 호출을 받았다.
"오늘 머리 좀 잘라줄 수 있나?"
하모요. 머리카락 길이에 예민한 낭군님의 요청을 거절하면 하루가 고달프기에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고객의 요청을 수락한다. 머리는 절대 자를 수 없지만, 머리카락이라면 얼마든지 잘라드려야지요. 미국에 오기 전,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사람들에게 물은 적이 있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추천한 것이 '미용기술'! 미국에도 물론 아주 많은 미용실들이 있지만 -
1. 익숙하지 않은 동양인의 머리를 현지 미용사들이 어려워한다
2. 한국인이 하는 미용실이 당신의 동네에 없을 확률이 훨씬 높다
3. 가격이 비싸고 팁도 따로 내야 한다
등등의 이유로, 나는 영등포구 여성인력개발센터에서 8주간 가족헤어커트 수업을 들었다. 결과는? 미국에 와서 남편은 물론이요 아이들까지 미용실 한 번 가지 않고 그럭저럭 버티고 있다. 내 머리카락도 내가 직접 자른다. 물론 마음에 들진 않지만 급한 대로.
집 뒤쪽에 있는 테라스, 여기 사람들은 back porch 혹은 patio라고 부르는 곳에서 이발과 관련된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 평소에는 발판으로 쓰지만 이때만큼은 미용실 의자가 되는 이케아 스툴을 가져다 놓고, 남편 눈높이에 휴대용 거울을 설치하면 준비가 완료된다.
"오늘은 어떤 머리 모양을 원하시나요?"
"음... 투블럭에 도전해 볼까요? 제가 사진을 찾아왔는데 말이죠..."
이런 대화 따위는 없다. 목 주위에 소위 '커트보'라고 하는, 찍찍이가 달려 있어서 머리카락이 옷으로 들어가는 걸 막아주는 커다란 보자기를 두르고, 역시나 '바리깡'이라고 불리는 클리퍼 (Clipper) 전원을 켜면 위잉- 지지직, 위잉-지지직 소리만 맴돌 뿐이다. 양 옆은 바짝 자르고 윗부분만 남기는 걸 뭐라고 불러야 하나? 스포츠머리? 우리 낭군 운동은 1도 안 하는데? 군인 머리? 군대 가기 직전 입영열차 스타일? 리젠트 컷? 이건 대체 어디서 온 말이야? 사전도 살짝 검색해 봤는데 butch haircut이라는 표현도 찾았지만 여기엔 좀 더 심오하고 다양한 뒷배경이 있으니 아서라, 패스. 그냥 짧은 머리카락이라고 불러야겠다. 채 10분도 걸리지 않아 머리 다듬기가 끝이 났다. 요금은 0원, 팁은 포옹. 그것도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안 해줘?'라고 투덜거려서 겨우 받아낸 팁이다.
마침 오늘이 온 마을 잔디를 깎는 날이라서, 집 주변에선 잔디 깎는 기계에 풀들이 잘려나가는 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오고 있었다. 웃자란 풀도 깎고, 길게 긴 머리카락도 깎고. 그리고 풀보다도 머리카락보다도 무럭무럭 큰 딸은 5년의 초등학교 생활을, 연필 깎듯이 허물 벗듯이 정리하고 졸업을 했다. (플로리다에서는 5학년까지가 초등학생, 6학년부터는 중학생이 된다) 어쩐지, 남편이 늘 짧게 밀어달라고 하는 귀 주변에 흰머리가 부쩍 늘었더라니. 아이 셋 키우며 공부도 하고 일도 하고, 고생이 많소. 애잔한 흰색을 감추기 위해, 흰머리가 난 곳들은 평소보다 더 바짝 잘라야 했다.
시간이 어쩌면 이렇게 빨리 흐를까. 좀 천천히 가줘도 좋겠구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