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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교주 Oct 31. 2021

FAREWELL

이별하던 나와의 이별

나이가 있는데 아직 미혼이다 보니. 연애. 결혼. 도 나의 상담주제이기도 하다.


나는 20살이 되어서야 이성에 눈을 떴는데,

워낙에 수줍고 내성적이고, 표현도 못하고, 사람을 사귀는데 큰 용기가 필요한 타입이라 당연히

남자들과 친해지는건 너무 너무 힘든일이었다.

그래서 안타깝게도 꽃다운 20대를 소위 말하는 모태솔로로 보내고,

서른이 넘어서야 연애를 했는데,

처음이었다. 

키작고 이쁘지도 않아서 늘 어려서부터 콤플렉스 덩어리였단 나를 여신같다 요정같다, 아름답다, 이쁘다, 사랑한다. 말해주는 사람이 있다는게 너무 놀랍고 행복했다.

심지어 우리엄마도 내가 낳았지만 못생겼다, 살빼라, 키가 5cm만 컸어도.. 라며 외모지적을 받으며 자라왔다보니 진짜 사랑에 빠진 눈에 씌인 콩깍지는 뭐일까싶다.


어쨋든 33살에 친구의 소개로 만났고,

이전까지는 소개팅을 해도 남자와 만남의 느낌이 있어야 연애를 할 수있지 않겠느냐 생각했었던 나를.

남자의 직업, 학력, 집안분위기 소위 말하는 배경? 이 어느정도 서로 비슷해야 잘 맞고 잘 살수 있을거라 생각해온 내게 그사람은 기대한 것 만큼은 아니었지만 5,6번 만나보는 동안 나를 향한 꾸준한 관심과 배려, 나를 좋아하는 구나 라고 느끼게 해주는 그사람의 에티튜드가 내 마음을 움직여 그래, 일단 사귀면서 알아가봐야지 라는 마음으로 돌려놓기까지 한것이었다.


그에게는 귀농해서 시골에서 사시는 부모님이 계시고, 미혼인 누나 둘과 셋이 수도권에서 살고 있었는데, 당시에 큰누나가 40세, 작은 누나가 38세 이었다.


큰누나는 대기업 직원으로 작은 구멍가게를 하던 부모님의 큰딸로 개천에서 용나 집안을 일으켜 세운 대들보같은 존재였다.

좋게 말하면 지혜롭고 나쁘게 말하면 깐깐한 구두쇠 같았다.


연애를 시작하고 누나들이 나를 궁금해 한다며 커피숍에서 짧게 한번,

이어서 몇 달 뒤 누나들이 셋이 사는 집에 초대한다하여 겸사겸사 나도 그들의 집안 분위기도 궁금해 방문해 저녁을 함께 했었다.

그때까지만도 그냥 이들이 내 시누이가 될지도 모르니 이렇게 천천히 종종 인사나누며 얼굴을 익혀나가면 된다고 생각했었다.


그와 연애가 1년 가량이 되어가면서 점점 의문도, 내 기준에 이해가 안가기도, 그냥 이런사람도 저란사람도 스펙트럼을 넓혀야 하는건가 싶으 일들이 있었는데, 


1. 만약 우리가 결혼해서 해외여행 가면 어디가고싶냐 물으니 그의 식구들은 거의 매년 한번씩 온 가족이 해외여행을 가는데 여긴 가보고 저긴 가보고 했다며, 내가 가고 싶은 나라는 자기는 가봤으니 안 가겠따는 거였다. 별로라고, 힘들기만 하다고. 그러면서 우리가족이랑 같이 더 좋은데 가면돼~ 하면서 나를 자기네 식구에 끼워 넣으려는 느낌을 받았었다. 


2. 남자친구가 쓰는 카드가 있었는데 하루는 카드가 바뀌었길래 새로 발급했냐 물으니 누나가 이걸로 결재하라고 했단다.

누나가 왜 결재하고 자시고 하실까 싶어 몇번 물으니, 셋이 살다보니 관리비 생활비 등 누나가 관리하기 편하게 자기 월급도 누나한테 이체하고 누나가 카드할인 혜택(전원실적 달성)을 받기위해 이번에는 이 카드를 쓰라고 줬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 거의 큰누나 혼자 아무리 대기업이라도 식구가 몇인데 서울에도 빌라 한채가있고 수도권에도 셋이 따로사는 자가도 있고. 귀농한 부모님 집도 큰누나가 마련해준거라니 이렇게 계획하며 돈을 모으고 살아야 되는거구나! 라며 오히려 존경하려고도 해봤었다.


3. 데이트중에 갑자기 그는 누나에게 전화가 왔다며 전화를 받더니 미안한데 어디를 가야겠다는 것이다. 저녁데이트 코스까지 미리 계획해 교외로 나온 상황이었는데 무슨 일이냐 물으니 누나가 핸드폰을 싸게 바꿀 수 있는 방법을 알아 냈다며 지금 가야만 그 가격에 계약이 된다며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 요즘 핸드폰이 한두푼도 아니고 요금제며 뭐며 비싼데 핸드폰은 또 때가 되면 고장도 나니 기회가 있을때 바꾸려는 거겠지. 이해해보려 하며 대신 나도 같이 구경가겠다고 했다. (누나에게 눈도장도 찍을겸...)

결국은 두사람은 핸드폰을 바꾸고 나는 그날 큰누나가 사주는 돈까스를 얻어먹었다.


4. 어느 여름휴가를 계획하던 때, 숙소문제로 전화통화를 하던 중 수화기 너머 누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너 이번달 카드값 왜 이렇게 많이 나와? 너 00(나)이가 하자는거 다 해주지? 걔는 데이트 비용 쓰긴 하니? 너 쉬는날 매번 00(나) 만나지? 그럼 너는 언제쉬어? 그렇게 맨날 쉬는 날 마다 니 몸 쉬지도 못하고 00이 만나서 걔가 하자는거 다 해주고 그러지?" 

- 당시 남자친구는 직업적 특성상 주말에도 일하는 상황이었고, 나는 사업을 정리하던 터여서 돈이 많이 없던 것도 사실이ㅏ, 그래서 남자친구가 더 데이트 비용을 많이 데는 것도 사실이었지만 나도 염치가 있지, 솔직히 상황과 사정에 맞게 김밥천국가서 밥먹고 해봐야 영화보고 커피마시고 허튼 짓을 한것도 아니고... 어디 교외로 나가보는 사치도 하지 않았건만 수화기 너머 나를 자기 남동생을 구슬려 카드값이나 펑펑 쓰게 만드는 소위 된장녀, 김치녀인것 처럼 말하고 있었다. 

당시 아무말 못하고 가만히 누나가 혼낸다고 혼나고 있던 남자친구도 지금와서 다시 생각하고 참 답답하고, 나도 그걸 또 굳이 전화너머 누나랑 남자친구가 하는 말을 본의 아니게 엿듣고 있던것도 참 안타깝다.

어쨋든 당시엔 그냥 오해일 수도 있겠지. 워낙 아끼고 사니까 남자친구 한번 못사귀어 보고 친구도 만나지 않고 회사-집-회사-집 한다는 큰누나니까 세상물가 몰라 저러다 보다- 라고 넘겼었다.


이밖에도 의이하고 조금 오해를 하고 있다 싶은 일들이 있었지만 모두 다 이 글에 열거하지는 않겠다. 


어느날, 그의 부모님이 결혼은 언제하냐며 물었다고 했다.

나는 사실 남자가 아직 모아둔 돈이라던가 경제계획, 직장계획, 등 직접 말하는 바도 없고, 나도 당시 미술학원 사업을 하다 막 사업을 정리한 터라 준비가 된게 없어 생각치도 못했는데 양쪽 엄마의 푸쉬로 어쩌다 보니 상견례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고, 어느덧 몇월 며칠로 날짜와 식당까지 예약해둔 상황이었다.

동시에 나는 사업을 정리하고 이제 나는 다른 직업을 가져야겠기에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시험을 이틀을 남겼을때 남자친구의 할머님이 돌아가셨다고 했다. 남자친구의 가족들은 장례를 치르러 시골로 내려간다고 햇고, 나는 잘 보내드리고 오라고 했다. 상견례는 일단 조금 뒤로 미뤄두자고 이야기가 되었다.

장례가 끝나고 발인이 있던 날 오후 나는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해 잘 보내드리고 왔는지 부모님은 어떠신지 여쭤보았고, 마침 옆에 어머님이 있으니 전화통화 해보면 어떻겠냐고 했다.

그래, 큰 일을 겪으셨으니 장례는 잘 치루셨는지, 몸은 피곤하진 않으신지 여쭈었고, 괜찮다고, 전화해줘서 고맙다고 말씀하셨었다. 

그래서 난 진짜 괜찮은 줄 알았다. 그런데 이게 문제였나보다.


이후 미뤄진 상견례에서는 딱히 막장이랄 것도, 훈훈 하달 것도 없이 그냥 각자 잘 살면된다. 

둘다 종교도 같으니 사랑하고 아끼며 살면된다. 양가어른의 이런 말씀을 듣고 마쳣는데,

큰 누나가 우리끼리 차 한잔 하자고 했다.

상견례로 긴장했고, 아직 누나들과 이전에 두번인가 밖에 보지도 못한 커피를 마시러 간 자리에서 ,

큰 누나는 대뜸 "어른들 이야기는 어른들 이야기고, 나는 솔직히 집안에 여자가 잘 들어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작은 어머니가 돈욕심이 많아 우리 할아버지 재산을 가로채갔다. 너는 왜 얘랑 결혼하려고 하니? 나는 얘 어디 내놓기 부끄러운데 너는 왜 결혼하고싶니? 그리고 상견례 날짜도 잡아뒀으면서 왜 우리 할머니 장례식엔 오지 않았니? 너가 진짜 우리 식구가 될 마음이 있는지 모르겠다" 

나는 "할머니 장례는 중요한 자격증 시험이 바로 내일 모레 있고 또 장지가 시골이니 감히 내려갈 생각까지는 못햇고, 그래도 남자친구를  통해 어머니와 통화도 했다, 섭섭하신 마음은 이해하지만 솔직히 아직 상견례 날짜만 잡았지 아직 양가부모님 얼굴도 모르는 상황인데 솔직히 장례가 좋은 자리도 아니고 좀 더 결혼준비가 확실해 지면 그때 친척 어른들께도 인사드리는게 맞다고 생각했다." 라고 말했지만 자기 회사사람들한테 물어보니 결혼할 생각이있으면 그러면 안됐다고 하더라. 라며 등등등 지금은 한마디 한마디 모두 기억나지도 않고 내가 애써 지우고 싶던 기억들이 었어서 그런지 이젠 그때의 냉정하고 철벽을 쳐버렸던 그 큰 누나의 말투와 이 상황은 뭔지 나더러 헤어지라는 소리인지 진짜 나의 결혼을 심사숙고하길 바라는 배려인지 그 짧은 1시간 남짓 오만가지 생각과 감정이 교차했던 순간이었다. 


그리고 결국 일은 여기서 터졌다.

상견례 후 한달쯤 지나 이제 결혼식 준비를 어떻게 해야하는건가, 나도 당시 이 남자친구에 대해 '와, 진짜 이사람 아니면 안되겠다', '이사람이랑 평생 같이 살면 좋겠다' 이런 마음의 확신이나 절실함? 이 확 와닿지 않는 상태에서 큰 누나의 말을 곱씹으며 매우 점점 기분도 나쁘고, 무엇보다 나는 상견례 이전에 시간이 충분히 있었음에도 양가 부모님 인사 다 시켜놓고 그런 말을 한 것이 매우 불쾌하고 부모님께 큰 죄를 지은것 같았다.

더구나 친구들보다 늦은 결혼인데 내가 이런 드라마 같은 일을 겪었다는게 더 무언가 자존심 상하고 매우 혼란스러웠다. 특히 얼굴도 모르는 남자친구의 할머니 장례식에 못 간걸로 결혼할 마음이 있네 없네.. 이 말은 나의 가치관에서 도저히 이해가 가지않고 뭐만 하면 자기 회사사람들한테 물어보니 이렇더라, 저렇더라.

주변사람이 회사사람 밖에 없는지, 아니면 대기업 다니는 사람들이니까 그들의 가치관도 우수하고 정답이라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그 큰누나의 가족관에 여러 밤을 지내우며 고민하고 고민하다 엄마에게 털어놓았다.


깊고 오랜밤을 엄마와 이야기 나누며 내가 오해살 행동한 것이 아니냐로 시작한 이야기는 엄마는 결국 그대로 내가 딸이라고 나도 안해본 시집살이를 너가 하게 생겼냐고, 관두라고 하셨다.

그렇게 첫 이별을 목전에 두고, 그래도 결혼까지 이야기하며 만나왔던 사이였는데 만나서 정리하는게 맞다 싶어 남자친구와 약속을 잡았다.

그 자리에서 그는 자기는 너무 힘들다, 너무 사랑하고 아끼는데 너가 헤어지자면 헤어지겠지만 다시 만나자고 하면 자기도 더 노력하고 누나와의 관계도 개선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한 이주일 간의 생각을 거듭하다 나는 내가 너무 낯가림도 심하고, 내가 너무 살갑지 못한 부분들이 있기는 하니 그게 너무 도란도란 지내는 남자친구의 가족들이 보기엔 지극히 개인적으로 보였을 수 있겠다, 그래도 그 쪽 집안도 3대째 같은 종교집안이고, 사랑하고 용서하는 마음으로 노력해보면 나이지지도 않을까 싶어 조심스레 다시 만남을 허락했다.

이후로 6개월 정도의 시간이 지났고, 남자친구는 누나와 한번 다시 만나서 얘기 해보면 어떻겠냐 했다.

그래 이제 만나봐야겠지, 

그런데 약속장소에 나타난 누나들은 이미 표정에 싸움을 하러나온 사람처럼 도끼눈에 똥씹은 표정을 하고 커피숍에 앉아있었다. 

"잘 지내셨어요?" 내가 먼저 인사를 걸었지만 인사를 받지 않았다.

"너네 다시 만나는거 알고 있었어. 대체 왜 만나? 우리 부모님은 00이 (남자친구) 구슬려서 너랑 다시 만나라고 했나본데, 난 너 우리가족으로 받아들일 생각없어." 

....

몇 초간의 정적이 흘렀고, 아무생각도 나지 않았다.

이렇게 훅  치고 들어올 줄은 진짜 몰랐다. 원래도 임기응변에 능하지 못하고 상황대체에 사이다를 못하는 성격이라 멍- 하다. 고작한다는 말이 

"이미 그렇게 정하고 오신거면 저도 할 말 없네요. 너네끼리 우물안 개구리들처럼 잘 먹고 잘 살든지 말든지하세요." 라고 커피숍을 나와버렸다.

더 사이다로 한방 먹였어야? 했는데..... 

눈물도 나오지 않고 옆자리에서 가만히 있던 남자친구가 더 황당하고 누굴 탓할까.

이 좋은 주말에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마침 비가 오기 시작했다. 

근데 마침 커피숍에 우산을 두고 나왔고,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우산을 놓고갔다고 갖고 나온단다.


우산을 받아들고 그 살을 애이는 겨울. 1월이었는지 2월이었는지.. 

그 길거리 한복판에서 남자친구에게 쏟아냈다.

"어떻게 그런말을 할 수 있냐, 사랑하고 용서하고 맞춰가라는게 우리 종교의 가르침인데 그렇게 종교종교 노래를 부르던 사람이 저런식으로 말을 하며, 오빠 너는 그동안 뭐한거며, 사람이 때가 되면 독립을 하고 성장을 해야지 어떻게 아직도 자기들 테두리에서 그것만 보고 맞다고 생각하면서 나를 못된 년, 여우같은 년으로 만들 수가 있냐며."

그렇게 대낮에 꺼이꺼이 눈물을 쏟아내며 억울함과 이제 정말 이게 이 사람을 보는게 마지막 이구나를 직감하며 그래도 마지막이니까 이사람 얼굴을 고이 담아가려고 내 눈으로 꼭꼭 눈도장을 찍어내고 있었다. 나는.

그때, 커피숍에서 누나들이 나와 울고있는 나를 힐끔보며 지나갔고 그들을 보자 그렇게 쏟아나오던 말과 눈물이 모두 삼켜지고 뒤돌아서 먼저 그 길거리를 떠나버렸다. 나를 산산조각 내버린 나의 첫 연애가 끝이 났다.




상담을 받으면서 이 이야기를 꺼내놓으며 결국은 나도 알고 있었다.

이 문제의 핵심은 누나가 아니라 중간에서 처신못한 남자친구였다는 걸.

그리고 이미 여러 조짐이 있엇는데 그냥 오해겠거니- 라며 시간이 해결해 줄거야. 라며 세상을 너무 착하게만 바라본 나의 실수 엿다는걸.


이야기를 상담선생님께 꺼내게 된건, 외로움 때문이었다. 부모님도 안주는 사랑을 이 사람 만큼 사랑과 관심을 그 누구도 나에게 준적 없었고 나는 그사람과 다시 잘되고 싶은 마음도 누나가 없어도 다시 결혼할 마음도 없지만 그 사람이 줬던 사랑이 너무 그리워서 힘들다고 했다.

그리고 예전엔 결혼하면 사랑하는 남편을 낳아준 부모님이고 가족인데 참 고마운 마음이 들것같앗는데 이제는 왜 며느리들이 '시'자만 들어도 치를 떠는지 알것같고, 나도 괜히 없던 시댁트라우마가 생겨버려 결혼이나 진짜 할 수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리워서 힘든거면 이제 안그리워야 하는데, 

트라우마가 생겨버렸으면 이제 극복해야 하는데,


아직도 이렇게 글을 써내려가며 그때의 순간들, 모든 장면이 하나하나 생각나진 않지만 가슴을 메이는 아픔과 상처가 다시 올라온다. 


그러면 그리워 하는 '나' 와의 이별이 필요한거 였다.


우리말론 작별, 영어로는 farewell 이란 단어가 있다.

사전적 의미를 무시하고 그냥 나만의 국어사전으로 작별은 더 무거운 이별의 인사. 즉, 영원한 이별을 뜻한다고 생각하는데, 영어의 farewell은, fare(요금, ~하게되어가다)의 뜻이라고 한다. well(잘, 건강한) 의 뜻이니 이것또한 나만의 영어사전으로 어원을 해석하면 잘 지내게 되어가다, 즉, 이별의 아픔에 요금을 지불해야한다고 억지로 문학적으로 해석해보자면 그렇다.


이별은 부정적인 의미만은 아니었나보다. 그 시절의 나와 이별해야 더 잘 되어가는 내가 될 수 있다.

매우 미래지향적인 단어이다.

이제 이별하던 나와의 이별을 해야지. 고이 접어 나빌레라. ㅋ


fare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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