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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세스맥스 Sep 27. 2021

이사 한 번 할 때마다
저절로 미니멀 라이프

저절로 되는 취향의 커밍 아웃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사임이 확실하다.


결혼 이후 우리 집은 총 4번의 이사 경험이 있다. 신혼 전셋집에서 큰 아이 백일을 지내고 진짜 우리 집으로 첫 번째 이사, 둘째 아이 백일을 지내고 새로 분양받은 아파트로 두 번째 이사, 경상도에서 경기도로 큰 아이 중학교 입학 때 세 번째 이사, 그리고 다시 경기도에서 경상도로 2년 전에 네 번째 이사를 했다. 세 번째 이사와 네 번째 이사는 간격이 4년밖에 되지 않고, 단기간에 2번이나 겪다 보니 저절로 살림이 미니멀해진 것을 실감한다.    

  

아이를 키우는 집에서 정리가 된 채로 지내기는 쉽지 않다. 우리도 아이가 어릴 때는 거실 아트월을 책장으로 채우고 빽빽하게 책도 가득 채우고 지냈었다. 작은 방은 장난감으로 가득 차 있었고. 둘째가 생기면서 버리는 건 생각도 못하고, 큰 아이 물건과 더불어 물려받은 사촌 형 물건까지 보관하고 살아야 했다. 옷과 장난감, 책 등. 그 많은 물건을 정리하는 건 정말이지 확실한 어떤 계기가 필요하다. 경험상 아이가 한 단계 성장하는 시기와 맞물린 이사만큼 확실한 게 없다.      


경기도로 이사할 시기는 큰 아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할 시기였다. 둘째는 아직 어리지만 그래도 2학년으로 진학하는 시기였고. 그동안 정리하고 싶었던 유아기 물건들을 아낌없이 버릴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둘째가 아직은 어리다 보니 버릴 수 있는 장난감과 책이 생각보다 한정적이었다. 완전 유아기 때 물건이나 둘째 낳고 안 맞는 나의 옷이나 오래된 살림살이 정도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입주할 때 샀던 가죽소파(아들 둘의 어린 시절을 다 받아준 찢어진 소파)나 신혼 때 구입한 장식장(그때는 체리색이 유행일 때였다), 몇 번 안 쓴 러닝 머신(정말 비싸게 주고 샀다.) 등 정리하고 싶지만 그냥 계속 사용해 왔던 것들을 정리할 생각을 하니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입주하면서 새로 구입한 전자제품들은 아직 쓸만한 것이 많아서, 버릴 만한 게 별로 없었고, 내가 초등학교 때부터 쓰던 피아노를 들고 갈지 말지, 많이 고민했었다. 


소파도 버리고, 책장도 버리고, 책도 버리고, 장식장도 버리고, 옷도 버리고, 안방 장도 붙박이 장이라서 안 가져갔지만(피아노는 가져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가 트럭 운임을 계산해야 했고, 책이 많아 무겁고 일이 많다는 이삿짐센터 직원의 불만도 들어야 했다. 이 때도 많이 버리고 정리했다고 생각했으나, 아쉽게도 둘째가 아직 초등학생인 탓에 책을 다 정리할 수가 없었다.   

  

진정한 정리는 그다음 이사였다.     

아기가 자리는 4년은 물건의 수가 늘어나는 시간이지만, 초등 고학년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는 4년의 시간은 안 쓰는 물건이 더 많아진 시간을 의미했다. 이번엔 대대적인 정리가 필요했다. 이사 석 달전부터 책과 장난감을 당근 마켓에 올리고, 어마어마한 양의 장난감과 책도 버렸다. 큰 아이는 책을 참 좋아하고 잘 읽었었다. 책을 사주면 읽으니 아깝지 않았다. 작은 아이도 그럴 줄 알았다. 그러나, 작은 아이는 형 나이 때 읽은 책도 안 보시고, 본인 보시라고 새로 산 책도 안 봤다. 정말 그럴 줄 몰랐다. 내가 낳은 아이인데 그렇게까지 안 볼 줄 몰랐다. 아이의 성향은 다르니 뭐라 할 말은 없다만, 언젠가는 볼 거란 나의 기대를 버리지 못하여 여전히 책은 4년 전이랑 똑같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혹시나 하는 미련을 버리고, 싼 값에 내놓으니 ‘당근’ 소리가 끊이질 않을 정도로 잘 팔려 나갔다.


정리를 해 보니 대략 이렇다.     


1. 노트북용 테이블 팔기

2. 빈백과 이케아 2인용 소파 팔기(소파 대신 쓰고 있었다.) 

3. 와이 책, 전집류, 만화책, 과학잡지 팔기

4. 화분 나눔 하기

5. 책장 나눔 하기

6. 나와 남편 책 팔기

7. 과학상자, 보드게임, 원목 가베 팔기

8. 장수풍뎅이 세트 나눔 하기

9. 오리발 팔기

10. 혼수로 산 그릇 세트 버리기

11. 베개, 이불, 요 버리기

12. 35년 된 영창피아노 팔기(이게 제일 마음이 아팠다.)


이와 더불어 많은 옷들을 버리고, 팔리지 않을 책은 버렸다. 추가 트럭을 부르지 않기 위해서 정말이지 최선을 다했다.(돈 앞에 장사 없다. 저절로 미니멀리스트가 되더라.) 많이 버린다고 하고 이사를 가도, 새 집에서 정리하면서 다시 버리는 물건이 나오는 경험을 이미 해 본 지라, 일을 두 번하지 않기 위해 더 계획적으로 정리를 했었다.  4년 전 이사 때 버린 물건에 더하여 또 그렇게 많은 물건을 버리고, 장롱도, 피아노도, 소파도 없이 이사를 왔음에도 불구하고, 트럭 한 대를 더 불렀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이삿짐 센터의 계산법이다. 이번엔 책이 많다고 불만을 듣진 않았지만, 같은 평수로의 이사에 짐이 정말 많이 줄었음에도, 짐을 싸다가 중간에 트럭 한 대 더 부르는 것이 이미 정해진 상술인 듯싶었다(이번엔 미리 계약하지 않고 중간에 부르더라). 정말 살림이 없는 신혼집 아니고서는 다 추가 요금을 부르는 것 같다.      


새로 이사 온 집은 베란다는 확장이 되어있으나 안방에 큰 붙박이장이 없었다. 이사 올 때 염려되었던 부분이었지만, 정리해보고 필요하면 장롱을 구입하자 생각했는데, 웬 걸! 옷과 이불을 많이 버리고 와서 그런지, 방마다 있는 작은 붙박이장만으로 충분히 수납이 가능했다.  가족들이 방문할 때마다 필요했던 이불과 요와 베개를 버렸더니, 그것만으로도 수납해야 할 물건이 많이 줄은 거였다. 아이들이 크다 보니, 물려 입을 옷을 보관할 필요도 별로 없었다. 지금까지 2년이 지나도록 살고 있지만, 안방 장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참고로 말하자면, 손님이 오시면 우리 침대 위에 놓고 사용하는 토퍼를 요로, 소파 위 쿠션을 베개로 제공하고 있다. 

   

몇 번의 이사를 겪으면 자신의 취향을 알게 된다. 


신혼 때나 입주할 때는 나의 취향이 뭔지 모르고 유행을 따랐지만, 여러 번의 이사 후에 살아남은 가구들은 다른 누군가의 추천이 아닌 100% 나의 선택에 따른 것들이었다. 살아남은 가구들로 분석해 보는 나는, 우드 가구 특히 결이 눈에 보이는 플라이우드 가구와 내추럴 칼라를 선호하는 사람인데, 그런 걸 알 리 없는 신혼 초에는 체리색 유행에 맞춰 가구를 사고 검은색 가죽 카우치 소파를 구입했었다. 그런 물건들에는 애착이 없으니 이사할 때 정리 대상 1호가 된다.   


여러 번의 이사를 거친 우리 집은 이제 우드 가구와 아이보리 리넨 소파가 있는 편안한 장소가 되었다. 나름 미니멀 인테리어라고 소개하고 싶다. 고양이 물건 외에는 더 이상 사고 싶은 욕심이 나는 가구가 없다. 하지만 가전은 미니멀한 디자인으로, 새로 나온 것으로 바꾸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부끄럽지만 이사 후에 살아남은 나의 가구들을 소개하자면 

10년 넘은 우드 테이블 (다리를 교체했다.)
10년 넘은 책장을 뒤로 놓아 캣타워로 사용 중이다.
역시 10년 넘은 식탁
붙박이장이 없어서 헤드 없는 침대를 벽에 붙여 사용하는 게 가능하다.  침대도 10년이 다 되어간다.


이사를 하는 시기와 아이들의 성장 시기가 잘 맞아떨어져 그 김에 집이 정리가 되고 살림살이들이 미니멀해지니(남들 눈에는 몰라도 내 눈에는), 생활 방식이나 습관 같은 것도 나한테 맞도록 미니멀하다면 미니멀하게 커스터마이징 중인 거 같다.  예를 들면,                      


1. 머리 파마 안 하고 단발 커트해보기.( 파마 안 하면 다 뻗쳐서 큰 일 나는 줄 알았었다. 뻗치긴 뻗친다.)

2. 드립 커피 내릴 때 분쇄 안 하고 아예 분쇄 커피를 사서 내리기.(커피 메이커도 버리고 분쇄기도 버렸다.)

3. 앞에도 언급 했지만, 따로 손님용 이불 없이 살기.(요만 몇 개였던가.)

4. 방바닥을 매일 닦지 않고 발바닥이 심란해지면 물걸레 로봇청소기 돌리기.(발바닥이 둔감해졌나?)

5. 두부를 부치거나 조리지 않고 그냥 레인지에 돌려 먹기.(꼭 불에 익혀야 하는 줄 알았었지.)

등등등.


결국 '미니멀 라이프'란 세상을 먼저 살아보고(혹은 살림을 먼저 해 보고) 시행착오를 겪어본 자들의 공통적인 안내서 아닐까?  갑자기 툭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 

먼 옛날부터 이런 삶을 추구한 사람들은 많았을 테고, 또 누군가는 글로 남겨 자신의 소신을 전하기도 했을 테다.  전업 주부인 나도 50년을 살아보니 저절로 삶의 방식이 간결해지고 정리가 되는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 들어서 좋은 걸 굳이 찾자면 이런 거라 얘기해도 좋을까? 이 시대는 '미니멀 라이프'란 이름을 붙여서 설명하지만,  살아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삶의 연륜을 더 좋아 보이는 말로 포장한 거 같다는 생각이 든 다.  그냥 살던 대로 마음 편하게 살면 되는데, 자꾸만 더 찾아보고 다른 사람의 얘기를 들으려 하는 거 같다.  그래서, 취향이 커밍 아웃된 나는 살던 대로 살라고 한다. 더 편한 쪽이 있으면 편한 방향으로 안테나를 달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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