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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세스맥스 Jul 20. 2021

도전 : 글쓰기

남편에게 하고 싶은 말

어렸을 적 나는 글을 잘 쓰는 아이였다(분명 어렸을 적이다). 글짓기나 독후감 대회가 있으면 상을 타곤 했다. 고등학교, 대학교까지는 밤마다 일기를 썼었다. 여러 권의 노트에 나의 생각과 생활이 담겼었다. 취업 후 일을 하면서 나의 일기는 간단한 메모 형태의 다이어리로 바뀌었고, 짧은 연애기간에는 남자 친구에게 보내는 이메일로 바뀌었고, 결혼 후에는 가계부의 형태로 바뀌더니, 아이가 태어난 후 나의 일기는 사라졌다. 나는 끊임없이 생각하고 누군가에게 말하였지만, 글이 아닌 나의 생각은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아이가 커감에 따라 일하고 싶은 생각은 커지고, 기회가 생겨 취업을 위한 공부도 했지만, 일을 다시 해 볼 행운은 없었다. 몇 번의 작은 기회는 지속적인 일로 변하지는 않았다. 변명이라 해도 할 말은 없지만, 그때마다 일이 생겼다.

이제 큰 아이가 대학에 가고 시간이 더 많아졌지만, 나는 더 나이를 먹고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많이 약해졌다.  생각은 끊임없이 나를 괴롭히지만, 내가 돈을 벌어 나의 쓸모를 증명할 일은 슬프게도 없어 보인다. 

그래서, 예전에 내가 잘했던 건 무언가? 생각을 해봤다. 그래. 난 글을 잘 썼어, 그리고 글을 쓰고 싶어 했었어. 소설 비스무리한 것도 써봤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써보기로 했다. 

그런데, 뭘 쓰지? 뭐에 대해서 쓰지?


요즘 읽었던 소설들의 배경은 2차 세계 대전이 많았다.  박완서 작가도 6.25 전쟁을 소재로 글을 많이 썼고, 박경리 작가는 바다가 있는 통영에서 자랐다. 나는 전쟁을 겪어보지도 않았고, 특별한 지역에서 자란 기억도 없고, 폭력이 있는 가정에서 자란 것도 아니고, 쓸 이야기의 소재가 없었다.

나의 머리에서 나오는 건 그냥 생각이다. 창의적인 이야기가 못 된다면 그냥 생각을 적어보기로 했다. 블로그를 해야겠다 생각이 들었다. 글을 써야 하는 이유와 꾸준함을 위해 어느 정도 강제성을 가져야 했다. 남이 올린 글을 보기만 할 땐 쉬워 보였는데, 시작하려 첫 페이지를 들여다보니 막막하기만 했다. 제목부터 레이아웃에 주제까지 어느 것 하나 쉽게 정할 수 없었고, 늦은 시간 앉아있으려니 자야 할 시간이었다.  


그러다, 우리 집 고양이 콩이를 키우며 드는 생각을 써보기로 했다. 콩이 키우는 이야기 하나를 간신히  올렸다. “고양이 물품은 아니지만 고양이가 좋아해요”란 제목으로, 말 그대로 고양이 용품으로 산 물건이 아니지만 콩이가 잘 사용해주고 있는 것 세 가지를 사진을 찍고 설명을 곁들여 짧게 올렸다. 

그런데 고양이 얘기는 흔하지 않나? 고양이 말고 다른 주제가 필요했다. 그래서 큰 아이 이야기를 써보자 생각했다. 조울증으로 진단받기까지 험난했던 아이와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쓰는 거다. 물론 아이의 허락을 구했다. 그래. 고양이 이야기는 블로그에, 큰 아이 이야기는 브런치에, 플랫폼을 달리해서 두 가지의 소재로 적어보자.


그런데, 시간이 많은 낮 시간에는 컴퓨터 앞에 앉아 있어도 글이 잘 써지지 않았다. 조금 있으면 세탁기가 띵 울리고, 장을 봐야 하고, 사야 할 살림살이들이 떠오르면 인터넷 쇼핑이 먼저였다. 나의 하루를 정리하자면 이렇다.  

새벽에 남편 아침밥을 챙겨주고 다시 잠들더라도 7시 10분에는 일어나 중학생 둘째 아이의 아침밥을 챙긴다. 오전에 걷고 들어오면서 장을 보고, 씻고, 점심 식사를 하고, 빨래, 청소 등의 집안일을 한다. 짧은 요약 하면 빨래, 청소지만, 그 짧은 단어에 내가 하는 모든 일을 다 담을 수는 없다. 물론 나의 일은 지속적으로 꾸준히 바쁘지는 않다. 계절성 이벤트(이불 빨래, 옷장 정리, 김장 등)나 돌발적인 다른 용무가 있는 경우(주로 모임이지만, 코로나 이후는 거의 없어졌다.)가 아니라면, 둘째가 오기 전에 영화를 본다던지 책을 본다던지 소파에 누워있을 수도 있다. 둘째가 돌아오고 저녁 식사 준비를 하면 2,3시간은 서있어야 한다. 남편은 매일 늦고 나의 저녁 일은 9시가 넘어서야 끝이 난다. 온라인 수업이라도 하는 주는 점심까지 챙겨야 하니 조금 더 바쁘다. 50이 되니 요즘 나는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다. 오래 서 있으면 종아리와 허리가 아프고, 부엌일을 할 때마다 손목과 손가락 마디가 아프다. 예전의 나보다 확실히 힘들고 쉽게 지친다. 

좀 누워서 쉬다가 씻고 나오면 10시 30분쯤 되고, 그 시간이 되면 콩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만 쳐다보고 있다. 콩이랑 놀아주고 나면 11시가 넘고, 침대에 누워 책을 보다 잠이 든다. 눕고 싶은 것이다. 밤에는 책상에 앉을 수가 없다.  불을 켜고 앉아야만 글이 써진다면 좀 더 일찍 앉아야만 한다. 


남편은 성실한 가장이다. 우리 가족은 그의 노동의 대가로 먹고 산다. 내가 알고 있는 녹내장과 기립성 저혈압이 아니더라도 그 또한 나이가 들었으니 아마도 여기저기 아플 것이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왔을 때는, 나처럼 남편도 무척 힘든 상태일 것이다. 그런데, 그는 퇴근하고 블로그에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린다. 그의 집중력은 정말 감탄할 만하다. 주말에도 자기 하고 싶은 수영을 하고 와서, 소파에 붙어 앉아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 글도 잘 쓰고 그림도 훌륭하다. 

그러다 생각해보니 주말에도 소파에 엉덩이 붙이고 앉아있는 그와 여전히 빨래를 돌리고 식사 걱정을 하는 나를 비교하게 되었다. 빨래는 저절로 세탁기에 들어가지 않는다. 누군가의 손으로 세탁되고 양말 하나까지 탁탁 털어 널어야 하며, 마르면 그 양말 하나까지 걷어서 개어서 서랍장에 들어간다. 나의 배는 고프지 않아도 두 아들의 끼니는 챙겨야 하지 않는가? 아무리 재능이 뛰어난 그도 스스로 세탁하고, 식사 준비하고, 화장실을 청소하고, 아이 병원을 예약하고, 어머님 생신 미역국을 끓인다면, 글을 쓰고 그림 그릴 여유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의 돈으로 먹고 산다. 그는 나의 노동으로 돈을 번다. 

그런데 그가 말했다.

“블로그에 새 글은 언제 올라와?” 죽고 싶냐?     


물론 나의 집안일은  8시간 지속적이지는 않다. 차라리 그러면 좋겠다. 퇴근이라는 걸 하면 되니까. 하루키는 새벽에 일어나 오전에는 글을 쓰고, 오후에는 달리기를 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규칙적인 생활을 한다고 한다. 분명 하루키가 집안일을 하지는 않을 거다.  내가 재능도 없고 성실함도 없고 끈기도 없는 거 나도 안다. 그렇지만, 나한테 제일 없는 건 인터셉트 없는 나만의 시간이다. 나의 블로그 새 글이 보고 싶다면, 그가 나한테 이렇게 말하면 안 되는 거다. 

“블로그 글 쓰는 거 얼마 안 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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