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지금
덤으로 살고 있는 것 같아
그런 것만 같아
나, 삭정이 끝에
무슨 실수로 얹힌
푸르죽죽한 순만 같아
나, 자꾸 기다리네
누구, 나, 툭 꺾으면
물기 하나 없는 줄거리 보고
기겁하여 팽개칠 거야
나, 지금
삭정이인 것 같아
핏톨들은 가랑잎으로 쓸려다니고
아, 나, 기다림을
끌어당기고
싶네.
황인숙, <나, 덤으로>
이십대 초 읽은 황인숙의 시 한 편.
그때부터 나의 이름은 삭정이가 되었다.
삭정이.
바삭 내려 앉을 것만 같은 마른 가지.
비생명성.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어떤 대상에게 혹은 나 자신의 인생에 덤으로 얹혀
그렇게 아무런 생명성을 발휘하지 못하는 삭정이 같은 하루 하루.
문득 매일의 의미 없음이 한평생이 될까봐 두려웠다.
이십대의 나는 그랬다.
바쁘지 않은 사람이기에 가능했던 잉여의 삶이 지속될까봐 두려웠다.
그렇게 바삭 마르고 실수처럼 얹힌 채, 계속 기다리는 멍청한 짓을 할까봐 두려웠다.
두려움이 쌓이는 순간 덤으로 사는 삶에 생명이 필요함을 알았다.
이제 나는, 나를, 나를 둘러싼 숱한 구렁에서 빼와야 함을 깨달았다.
서른 즈음에.
젊은 날의 훈장 같은 삭정이라는 이름을 여전히 달고
서른을 살아 왔고
마흔을 살고 있지만,
삭정이의 비생명성이 아니라
삭정이를 솎아낸 꽃나무의 생명성, 삭정이 곁에 실수가 아닌 꼿꼿한 의지로 솟아난 새순의 생명성으로 매일을 채우고 있다.
그 생명성 가득해진 삶을 이야기 하려 한다.
'꿈꾸는' 삭정이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