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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앤 Apr 13. 2022

지금 당장 하자, Right now!

 유튜브 알고리즘은 몇 년 전, 배우 차인표 씨가 나온 '집사부일체'라는 예능 프로그램으로 나를 이끌었다. 서너 개의 짧은 영상으로 보다 결국 다시 보기를 통해 전체 영상으로 보게 되었다. 차인표 씨와 집사부일체 멤버들이 함께한 여러 에피소드 중에서 이승기 씨의 외할머니를 찾아갔던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엄마보다 더 많은 시간 동안 나를 길러주고 함께했던 친할머니 생각이 나서 마음에 더 와닿았던 것 같다.




 사부님이 된 차인표 씨가 집사부일체 멤버들에게 지금 당장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물어본다. 이승기 씨는 속초에 계신 외할머니를 뵙고 싶다고, 전역하고 찾아뵙기로 했는데 아직도 가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어진 사부님의 단호한 한 마디.

Right now!
일찍 자고 새벽 4시에 일어나서
할머니 뵈러 속초 갑시다.


갑작스러운 제안에 이승기 씨는 물론 멤버들도 제작진도 당황했지만 사부님의 굳은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이승기 씨를 보며 사부님이 말한다.


 인생의 마지막 날 본인이 스스로한테
물을 수 있는 질문은 한 가지다.
해 봤냐 안 해봤냐.
할머니한테 갔냐 안 갔냐.


 사부님의 말 한마디에 할머니를 만나기 위한 즉흥 속초 여행이 시작된다. 졸음과 피곤함을 이기고 서울에서 두 시간 반을 달려온 멤버들에게 푸른 바다는 시원한 파도 소리와 함께 그림 같은 풍경을 선물한다. 푸른 바다를 눈에 담고 할머니 집으로 향하는 멤버들과 이승기 씨. 그들의 마음처럼 화면 밖 시청자인 나도, 곧 다가올 할머니와의 만남이 기다려진다. 


 “딩동 딩동” 초인종 소리에  마음도 함께 떨려온다. 손주 이승기 씨를 보자마자 커다란 함박웃음을 지으시며 버선발로 뛰어나오시는 할머니. 할머니는 햇살처럼 환한 웃음으로 손주와 멤버들을 맞이한다. 4년 만에 보는 손주와 눈을 맞추고, 한껏 안아보고, 손주의 얼굴을 연신 쓰다듬어 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한 손주 녀석을 몇 년 만에 보았으니 얼마나 반갑고 기쁘실까? 오랜만에 손주를 본 할머니는 “정말 좋다. 정말 좋아. 다들 예쁘다. 예쁘다.”하시며 웃고 또 웃으신다.


 전날 밤 할머니를 보러 가겠다는 손주의 전화 한 통화에 밤 잠 설쳐가며 “우리 승기 해먹이지? 뭘 해먹여야 맛있어할까?”수십 번 고민했을 할머니다. 새벽 일찍부터 수산시장에 나가 장을 봤을 것이며 무거운 장바구니를 들고 오면서도 힘든 줄 몰랐을 것이다.


 이른 새벽부터 시장에 나가 사온 재료들로 얼큰한 해물탕이며, 통통하게 살이 오른 대게찜이며, 쫄깃쫄깃 문어숙회며, 보기만 해도 군침 도는 음식들이 한 상 가득 차려졌다. 할머니는 손주와 함께하는 식사가 무척이나 그리우셨을 텐데도 함께 앉아서 먹자는 출연진들의 호의를 한사코 사양한다. 혹여나 멤버들이 불편할까 부엌 한편에서 그들의 먹는 모습만 흐뭇하게 바라본다. 맛있게 먹는 손주 모습만 봐도 마냥 행복한 할머니의 모습이 몇 년 전 돌아가신 친할머니의 모습과 오버랩되며 나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우리 할머니도 저런 분이셨는데, 막내 손녀인 나를 그렇게 끔찍이 예뻐해 주셨는데...


 한 시간 남짓, 헤어져있던 시간을 채우기엔 만남의 시간은 너무도 짧다. 오는 발걸음은 가벼웠지만 가는 발걸음은 무겁다. 이제 가야 한다는 말을 듣자마자 할머니 얼굴에는 아쉽고 섭섭한 기색이 역력하다. 할머니는 오랜만에 만난 손주와의 짧은 만남을 아쉬워하며 손을 흔들고 인사를 건넨다. “승기 왔다 가면 꿈같겠네.”라고 수줍게 웃으며 손주 손을 꼭 잡는다.



 갑작스러웠지만 할머니에게는 꿈처럼 행복하고 소중했을 손주와의 만남, 하지만 그 만남이 지금 당장이 아닌 다음으로 나중으로 미뤄졌다면 할머니와의 만남은 언제쯤 이루어졌을까? 사부님의 단호한 'Right now'가 있었기에 할머니에게 잊지 못할 만남을 선물해 줄 수 있었던 것이다.




 친구들과 이야기하다 종종 농담처럼 “야~ 빨리해! 롸잇 나우!”라는 말을 하곤 했다. 장난처럼 내뱉곤 했던 그 말의 의미를 오늘에서야 찬찬히 되새겨본다. 'Right now' 누군가를 채근하기 위한 말이 아닌 하고 싶은 일, 해야 할 일을 미루지 않고 지금 바로 한다는 뜻일 것이다.


우리는 습관처럼 계속해서 무언가를 미룬다.  

집안일도 미루고, 회사일도 미루고, 누군가와의 만남도 미루고, 계획했던 일도 미루고, 마음을 표현하는 일도 미룬다. 내일로, 다음 주로, 다음 달로, 내년으로... 하지만 우리가 입버릇처럼 말한 그 나중은 때론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 돌이킬 수 없는 이별과 상실을 경험하고, 사랑하는 무언가잃고 난 후에야 ‘그때 사랑한다고 말할걸, 그때 더 노력해볼걸’하고 후회한다. 누군가는 말했다.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살아라.


 그 말인즉슨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최선을 다해 살아가라는 말일 것이다. 또한 하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미루지 말고 지금 바로 하라는 말이기도 하다. 다시 한번 사부님이 외친 ‘Right now’ 이 말을 마음속 깊이 되새기고 곱씹어본다.


내일이나 모레 말고 오늘, 지금 당장 하자.

사랑도, 일도, 하고 싶은 말도, 꿈을 위한 노력도 

미루지 않고 지금 이 순간에 하는 것, 

'Right now’ 그것이 인생이다.


* 사진 출처: 네이버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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