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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앤 May 26. 2022

아무튼, 편지Ⅱ

 시대가 변해도 사랑의 편지는 계속된다.

 스무 살에 접어든 나에게 친구는 세상의 전부가 아닌 일부가 되었다. 그들과 어떻게든 좋은 관계를 유지해보려고 안간힘을 쓰지 않았고, 십 대의 그때처럼 열심히 편지를 쓰지 않았다. 이제 세상에는 편지 말고도 누군가와의 관계를 이어 줄 쉽고 편한 매체들이 얼마든지 있었다.


 대학에 입학하면서 초고속 인터넷핸드폰 보급률폭발적으로 늘어났. 사람들도 더는 수고를 더하면서까지 편지를 쓰려하않았다. 머릿속에서 써야 할 말들을 고민하는 골치 아픈 과정도, 손으로 꾹꾹 눌러가며 글씨를 써야 하는 노동력도, 편지가 전달되기까지의  기다림도 사람들에게는 번거로운 시간낭비일 뿐이었다.


 기다림 끝에 주고받는 편지는 하루가 다르게 시시각각 변하IT시대에는 어울리지 않는 골동품과도 같았다. 곳곳에서 내 편지를 받아먹었던 빨간 우체통은 빠르게 사라져 갔다. 대문 앞 우편함은 손편지 대신 입고지서와 광고물, 대량 생산하듯 찍어낸 연하장으로 채워졌다.


 사람들은 쉽고 편한 방법으로 타인에게 닿을 수 있는 인터넷과 핸드폰을 열렬히 환영했을지 모르지만 나는 아니었다. 너무도 빠르게 변화하는 디지털 시대가 낯설고 두렵기까지 했다. 나는 아날로그적 감성을 지향하는 사람이었으학창 시절만큼은 아니지만 계속해서 편지를 쓰고 있었다. 여전히 편지의 물성과 편지를 주고받는 이들의 따뜻한 진심사랑했다. 편지만의 특별한 감성이 그리워서였을까? 아니면 남자 친구를 너무도 사랑해서였을까?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뜸해진 편지 쓰기는 달콤하게 피어오른 첫 연애와 함께 다시금 뜨겁게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편지는 누군가를 향한 사랑이다.


 십 대의 편지를 '우정'이라 정의한다면 이십 대 이후의 편지는 '사랑'이라 할 수 있겠다. 시시콜콜 사소한 이야기들로 가득했던 십 대의 편지는 이후, 보고 싶은 연인을 향한 애틋함과 자식을 사랑하는 엄마의 마음으로 채워졌다. 어느 편지나 상대를 향한 진심이 있었겠지만 신랑과 두 딸들에게 쓰는 편지에 담긴 애정에 비할바는 아니다.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많은 시간을 함께 해 왔기에 가족에게 쓰는 편지는 좀 더 특별하고 소중하다.



스물셋, 러브레터는 사랑을 싣고


 신랑과 함께한 8년의 연애 기간 동안 정말 많은 편지를 썼다. 색색의 펜과 색연필로 꾸민 종이 위에 사랑의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편지를 썼고, 1주년 기념 선물로 매일 러브장을 썼다. 러브장은 당시 연인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것으로 예쁘게 꾸며 쓴 편지나 일기장 을 특별한 기념일에 (주로) 여자 친구가 남자 친구에게 선물해 준 것을 말한다. 당시 나는 사랑에 홀딱 빠져서는 학과 공부와 교우 관계보다 연애와 러브장 꾸미기에 더 몰두했던 것 같다.  


 가끔 아이들과 함께 신랑에게 준 편지를 모아둔 상자를 열어볼 때면 우리 모녀는 할 말이 많아진다. 딸들은

 "우와! 진짜 예쁘다. 이걸 다 어떻게 만들었어? 근데 왜 우리는 이런 거 안 해주고 아빠한테만 해준 거야?"

하고 감탄 섞인 질투의 말을 내뱉는다. 그때마다 나는 "아이고, 엄마가 철딱서니 없게스리 왜 이런 했을까나? 아빠를 너무 사랑했나 봐. 이런 거 만들 시간에 공부라도 한 자 더 할걸 그랬어" 

하고 장난스럽게 대꾸하곤 한다. 사실, 렇게까지 열심히 했을까 후회스러운 마음도 살짝 들긴 하지만 지나고 보니 이것도 다 한때의 아름다웠던 추억이 아닐까 싶다. 나이 들면 추억으로 먹고 산다는 데 늙어서 먹고 살 양식 미리미리 비축해 두는 것이라 생각하자.


 스물셋, 첫 연애의 시작과 함께 시작된 러브레터는 신랑과 나, 우리 관계의 역사이자 다시 돌아갈 수 없는 풋풋한 사랑과 청춘의 기록이다.


연인에게 전한 수많은 러브레터


마흔, 두 딸들에게 보내는 엄마의 편지


 첫째가 글을 조금씩 알기 시작하게 된 여섯 살 쯤부터 생일이나 어린이날, 크리스마스가 돌아오면 어김없이 편지를 다. 예쁜 엽서나 카드에 사랑 메시지를 담아 선물과 함께 특별한 날에 전하곤 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캐릭터나 책 속 주인공을 프린트한 종이에 편지를 써주면 아이들은 기쁜 마음으로 내 볼에 뽀뽀를 해주었다. 두 아이의 해맑은 웃음은 나를 행복하게 했고 다시 또 펜을 들게끔 했다. 이제 내 편지의 주 고객은 신랑이 아닌 두 딸들이 되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편지는 특별한 날에 주고받는 이벤트가 아닌 모녀간의 다툼 뒤에 서로에게 보내는 화해의 표식이 되어갔다. 속마음을 잘 표현하지 않는 첫째는 쪽지에 써서 미안함을 표현했고, 나 역시 뒤죽박죽 헝클어진 마음을 편지를 쓰며 정리하고 진정시켰다. 두 자매는 서로 다투고 난 뒤 조심스럽게 쪽지나 편지를 주고받으며 화해를 하기도 했다. 우리 모녀에게 있어 편지는 서로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전하고, 상처받은 마음을 치료해주는 빨간약 혹은 대일밴드 같은 존재였다.


 엄마가 되어 주고받은 편지는 매일같이 지지고 볶고 화해하고, 한없이 멀어졌다 가까워지는 딸들과의 파란만장한 관계의 기록이다. 그리고 한없이 서툴고 부족한 엄마가 두 딸들에게 전하는 어설픈 사랑의 표현다.


나를 키워주신 우리 엄마께
엄마 안녕하세요? 저를 8년 동안 열심히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너무너무 고맙고 감사하고 사랑해요. 저를 많이 사랑해주시고 보물처럼 대해주셔서 행복해요.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꼬마 시인 영이에게
쉼 없이 쏟아지는 빗줄기와 코로나로 얼룩진 여름도 이제 끝을 향해 있구나. 영이와 엄마의 여름은 어떻게 기억될까? 올여름은 코로나로 인해 집안에만 갇혀 있었던 것 같아. 계속되는 비와 코로나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지만 그 안에서 엄마는 소소한 행복을 느끼기도 했어. 영이와 캔버스에 멋진 시를 적어 보았던 작업이 기억에 많이 남아. 네가 쓴 시를 보면 행복한 마음이 느껴져. 매일같이 반복되는 하루하루였지만 그 속에서 영이가 성장해가고 너와 나의 추억이 쌓여 간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이야. 매일 꾸준히 성실하게 네 일을 해나간 것에 많이 칭찬해 주고 싶어. 이번 한 달도 정말 수고 많았어. 많이 사랑하고 좋아해.   
 -2020. 엄마가

- 다툼과 화해를 반복했던 파란만장한 기록보다 모녀간의 사랑이 담긴  편지를 남기고 싶었다.


엄마에게 쓴 두 딸들의 편지
 두 딸들에게 쓴 엄마의 편지


편지 쓰기 누군가에게 전하는 내 진심이자 관계를 가꾸는 나만의 작은 행위이다.


 앞으로도 나는 편지를 통해 나를 둘러싼 많은 관계들을 더 살뜰히 가꿔나가고 싶다. 그래서 지금껏 그래 왔듯 앞으로도 타인을 향한 나의 진심과 사랑꾹꾹 눌러 담아 누군가의 손 위에 편지를 놓아줄 것이다. 시대가 변해도, 시간이 흘러 나이가 들어도,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사랑의 편지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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