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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앤 May 13. 2022

시인의 집

 공주풀꽃문학관에서 책다솜과 함께하다.

초록 이파리들이 싱그러운 빛을 쏟아내던 오월


책다솜과 함께 공주풀꽃문학관을 찾았다. 매월 함께하는 모임이지만 도서관이 아닌 야외에서 만난다고 생각하니 소풍 가는 아이마냥 설렌다. 어릴 적 소풍 가기 전날 밤마다 '하느님, 제발 내일은 비가 오지 않도록 해주세요.'라고 기도했던 것처럼 맑은 날을 소원하며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간절한 바람이 전해졌지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위에서 눈부신 태양빛이 쏟아져 내린다. 따사로운 봄 햇살을 맞으며 생각했다. 풀꽃을 노래하던 시인의 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낡은 자전거를 타고 문학관을 오고 가는 시인의 삶처럼 소박하고 단출할 것이다. 시인의 집은 분명 풀꽃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보면 볼수록 정감이 가고 잔잔하게 스며드는 매력이 있을 것이다. 평소 나태주 시인의 시를 애송하던 나로서는 풀꽃문학관으로 향하는 마음이 조금 더 별하다.


 회원들의 그림자를 따라 문학관이 자리한 언덕 위로 올라가 본다. 오르막길 한쪽 벽은 나태주 시인이 쓴 시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담장을 타고 내려온 초록 담쟁이덩굴이 풀꽃 시와 어우러져 제법 운치 있는 풍경을 연출한다. 발걸음을 옮기는 동안에도 시인이 노래하던 풀꽃을 끊임없이 읊조리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가파른 언덕 끝에는 '공주풀꽃문학관' 현판을 단 목조건물이 떡 버티고 섰다. 풀꽃 문학관은 1930년대에 공주헌병대장의 관사로 사용되었던 일본식 건물을 개조해 2014년에 개관하였다고 한다. 개관 이후에는 나태주 시인이 지역의 문인, 문학 지망생, 관람객을 만나서 담소를 나누고 강의하는 공간으로 쓰이고 있다.


 문학관 아래로 내려다보니 전망대에 올라선 것 마냥 주변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오밀조밀 뻗은 길 사이로 저 멀리 중동성당과 충남역사박물관, 영명중학교와 중학동 구 선교사 가옥까지도 보인다. 높은 곳에서 바라본 구도심의 모습은 공주라는 도시가 지나온 시간의 흔적들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마당 둘레에는 시인과 어울릴법한 갖가지 풀꽃들이 바람결에 흔들리며 서 있다. 마당 아래 박힌 위로 발을 디딜 때마다 폴짝폴짝 징검다리를 건너는 듯한 경쾌함이 다. 경쾌한 발걸음을 따라 문을 열고 그의 집에 첫 발을 내디뎌 다. 손때 묻은 오래된 책, 시인의 환한 웃음이 담긴 초상화, 그가 썼던 수많은 시가 담긴 액자, 아기자기한 장식물. 모든 것에서 시인의 지나온  삶이 고스란히 전해져 다.


 방 한쪽에 자리한 낡은 풍금에도 눈길이 다. 초등학교에서 오랫동안 아이들을 가르쳤다는 나태주 시인은 풍금을 자주 치셨다고 한다. 낡은 풍금 앞에 앉아 아이들 눈을 맞추며 즐겁게 노래했을 시인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려본다. 시인은 뿡뿡거리며 울리는 풍금 소리에 맞춰 아이들과 함께 '과수원길'을 불렀을 것이다.


  동구 밖 과수원길 아카시아 꽃이 활짝 폈네
하이얀 꽃 이파리 눈송이처럼 날리네


 풍금 앞에 서서 과수원길 노래를 흥얼거리다 회원들의 손짓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뒤에는 시인의 손길로 피어난 풀꽃 병풍이 아름다운 자태로 둘러져있다. 우리는 앉은자리에서 저마다의 사연이 담긴 시 한편씩을 돌아가며 읊었다. 팽팽한 기타 줄과 은혜 씨의 손가락이 맞닿을 때마다 은은한 기타 소리가  가득 울려 퍼진다. 아름다운 기타 선율 속에서 나는 평소에 자주 애송했던 윤동주의 <소년>을 낭독했다. 


여기저기서 단풍잎 같은 슬픈 가을이
뚝뚝 떨어진다.
단풍잎 떨어져 나온 자리마다
봄을 마련해 놓고
나뭇가지 위에 하늘이 펼쳐 있다.
가만히 하늘을 들여다보려면
눈썹에 파란 물감이 든다.
두 손으로 따뜻한 볼을 쓸어 보면
손바닥에도 파란 물감이 묻어난다.

아름다운 순이의 얼굴은 어린다.


윤동주의 <소년>을 시작으로 정호승의  <누군가에게>. 도종환의 <흔들리며 피는 꽃>, 피천득의 <오월>, 김춘수의 <꽃>, 문정희의 <겨울사랑>, 천상병의 <귀천>, 나태주의 <아끼지 마세요>를 돌아가며 낭송했다. 한 번쯤 들어보았거나 평소 좋아했던 시들이지만 누군가가 읊어주니 잔잔한 울림이 되어 마음 깊이 와닿는다. 삶의 어느 한 지점에서 우리가 노래한 시들을 마주할 때마다 풀꽃문학관과 함께했던 시간들을 떠올릴 것이다.


시낭송이 끝나고 짧은 담소를 나눈 뒤 우리는 문학관을 나왔다. 언덕길을 내려오는 동안에도 오월 햇살은 여전히 맑고 푸른빛을 한껏 쏟아내고 있다. 


풀꽃 문학관에서 함께 한 시간들을 기억하며 오늘의 이야기를  한 편의 시 속에 담아본다.




시인의 집  


파아란 하늘이 펼쳐진 산자락 아래

오월 햇살을 머금은 시인의 집이 있다.


언덕배기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세상 풍경도

마당 한편 소담스레 피어난 꽃도

발길 닿는 곳에 자리한 자그만 돌덩이도

시인의 집은 그가 노래하던 풀꽃을 닮았다.


빛바랜 서가에 꽂힌 손때 묻은 책들

그의 추억이고 삶이었을 낡은 풍금

네모난 액자와 천조각에 담아낸 수많은 시

시인의 집은 그가 걸어온 길이고 삶이었다.


시인의 손길로 피어난 풀꽃 병풍 아래서

우리는 한 사람 한 사람 시를 읊었다.

기타 선율이 춤추는 방 안에서

저마다의 사연이 담긴 가슴 따뜻한 시들을


우리는 풀꽃을 노래하던 시인의 집에서

시를 노래하고 마음을 나누었다.


책다솜과 함께 풀꽃문학관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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