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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앤 Jul 18. 2022

고래는 바다에서 가장 행복하다.

통영과 거제도로 여름 휴가지를 정하고 갈 만한 곳을 열심히 찾고 있었다. 어디를 가면 아이들과 즐겁게 놀 수 있을까? 여기저기 찾아보다 거제도의 씨월드라는 곳이 눈에 들어왔다. 씨월드는 대한민국 최고의 돌고래 테마파크라고 소개되어 있었다. 씨월드 홈페이지를 둘러보다 돌고래 쇼 영상을 아이들에게 보여 주었다. 

 "엄마, 우리 여기 가서 돌고래 공연하는 거 보자. 정말 재미있겠다."

두 아이는 돌고래쇼장에 가 있는 듯 엉덩이를 들썩이며 영상 속 돌고래 모습에 흠뻑 빠져들었다.


씨월드에서는 돌고래 쇼 외에도 돌핀 교감 체험, VIP 아쿠아 체험 및 라이드 체험 등 십만 원에서 이십만 원이 넘 다양한 체험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돌고래 등에 타고 몇 번 돌면서 사진 찍는데 일이십만 원이나 한다고? 나는 체험을 위해 고래에게 가해지는 행위보다 터무니없이 비싼 체험비에 먼저 반응했다. 블로그 등에 올라온 체험 사진들을 보며 '저 사람들은 무슨 돈이 저렇게 많아서 이런 비싼 체험들을 하는 거지?' 하는 부러운 마음도 살짝 들었다. 여행 일정을 짜면서 지출되는 돈 한 푼 한 푼신경 쓰며 어떻게든 경비를 줄여보려는 내 노력이 조금 지질하게 느껴졌다. 이십만 원이면 여행 기간 동안 우리 가족이 지출하는 체험비맞먹 비용인누군가에게는 돈이 일회적인 즐거움을 위한 비용으인다는 게 어쩐지 좀 씁쓸했다.


내가 동물보호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체험비용보다 고래에게 행해지는 가학적인 체험 내용에 더 눈이 갔을 것이지만 부끄럽게도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비싼 비용 때문에 아이들이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진 것에 안타까움을 느끼는 그런 사람이었다. 사실, 좁은 수족관 안에 갇혀 인간이 시키는 훈련을 해야지만 살아갈 수 있는 고래의 고통이 내게는 크게 와닿지 않았다.


씨월드를 검색하다 2020년에 올라온 씨월드 논란 기사를 접하게 되었다. 거제 씨월드는 고래를 서핑보드처럼 타는 체험 프로그램으로 동물 학대 논란에 휩싸였고, 2015년부터 2년간 돌고래 6마리가 폐사했다고 한다.  씨월드 수족관이 돌고래가 살기에 굉장히 열악한 환경이라는 내용도 있었다. 계속 이어져 논란에도 불구하고 씨월드는 별다른 개선의 노력이 없었으며 최근 5월에도 돌고래 무단 반입 의혹과 잇따른 돌고래 폐사 기사가 올라와 있었다.  논란 기사와 함께 기재된 사진을 보며 아무것도 모른 채 씨월드에 가려했던 내가 한없이 부끄러워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동물의 삶이 아닌 인간의 삶을 우선시한, 고래의 행복이 아닌  아이의 즐거움을 우위에 둔 나를 반성했다.


돌고래 등에 올라 서핑을 하는 듯한 자세를 취한 인간의 모습은 이기심으로 가득 찬 정복자의 모습처럼 느껴졌다. 고래는 인간의 서핑보드가 되려고 태어난 것이 아니다. 인간을 등에 태운 자신의 모습을 사진 에 남기려고 태어난 것이 결코 아닐 테다. 인간에게 잡혀온 돌고래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인간을 기쁘게 하기 위해 자신의 본성을 잃어버리고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고된 훈련을 받고 다.


경남 거제 씨월드가 운영 중인 돌고래 체험 프로그램


내게 많은 돈이 있었더라면 나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두 아이를 고래 등에 태우고 활짝 웃는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자고 이십만 원이라는 돈을 지불했을까? 어쩌면 나는 잘못된 선택을 했을지 모른다. 고래 등에 올라탄 두 아이의 즐거움만을 기억하고 고래의 아픔은 잊어버린 못난 인간이 되었을 수도 있다. 첫째는 씨월드 논란 기사를 함께 읽고 나서는 돌고래쇼를 보러 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아니 보러 가면 절대 안 될 것 같다고, 사람들이 계속 쇼를 보러 가면 고래들은 영원히 바다로 갈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고래는 바다에 가서 살아야 행복할 거라며 씨월드 말고 다른 곳으로 여행 장소를 찾아보자고 말했다.


씨월드 논란 기사를 읽으며  <유 퀴즈 온 더 블록> 프로그램에 나왔던 최재천 교수와 제돌이 이야기가 떠올랐다. 서울대공원 수족관에 갇혀 공연을 하던 제돌이는 최재천 교수를 비롯한 많은 분들의 노력과 제인 구달 박사가 힘을 보태면서 제주 바다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최재천 교수는 제돌이를 바다로 돌려보낸 것이 자신이 한 일 중 가장 자랑스러운 일이라며 활짝 웃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던진 그의 떠올리 잠시 돌고래 쇼에 혹했던 나를 꾸짖었다.

"저 아이의 관점에서 한번 봐라. 저 아이가 자기의 고향 바다로 가서 사는 그날을 상상해봐라."



제돌이는 인간이 던져주는 죽은 고기만 먹다 산 고등어를 처음 넣어주자 겁이 나서 도망갔다고 한다. 인간이 만들어놓은 인위적인 환경에 길들여진 탓이다. 살아있는 물고기를 잡아먹을 수 있게 하는 훈련을 고 1년 반 동안 바다 복귀를 준비한 끝에 제돌이는 비로소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제돌이와 함께 바다로 돌아간 다섯 마리의 고래들은 현재까지도 푸른 바다를 누비며 아주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고 한다. 고래는 인간이 만들어놓은 네모난 수조 안에서는 결코 행복할 수 없다. 넓고 깊은 바다에서 파도와 함께 힘껏 헤엄치며 자연의 섭리 속에 있을 때 비로소 고래다운 삶을 살 수 있다. 세상의 모든 동물은 각자의 삶에 터전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는 사실을 우리 인간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다.


최재천 교수는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에서 동물들이 사는 모습은 알면 알수록 그들을 더욱 사랑하게 되는 것은 물론 우리 스스로도 더 사랑하게 된다는 믿음으로 글을 썼다고 다. 우리는 인간 중심이 아닌 동물의 관점에서 그들을 바라보고, 더 깊이 알기 위해 노력하는 동시에 그들의 삶을 존중해야만 한다.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을 진심으로 알고자 하는 노력이 있을 때 그들을 사랑하게 될 것이고 인간의 즐거움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지 않게 될 것이다. 이번 경험을 통해 생명을 가진 모든 의 삶을 존중해야겠다고, 인간의 웃음 뒤에 가려진 고래의 아픔과 상처를 외면하지 않고 꼭 기억해야겠다고 나 자신과 약속했다.




-사진 출처: 네이버 이미지

-참고 도서: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최재천 저 /효행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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