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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없기만 하던 ATL 식 위트에 진심을 더할 때

Sahbabii / Saaheem 갈퀴생활

by 감상주의
RYM

타이틀: Saaheem

아티스트: Sahbabii

발매일: 2024.11.08

레이블: StreamCut

장르(RYM): Trap / Pop Rap / Cloud Rap / Gangsta Rap / Southern Hip Hop


리뷰어: Rae-Aila Crumble

Rating: 7.9

게시일: 2024.11.14

분류: Rap



The Atlanta-based rapper’s self-titled album bridges the silly and the deadly serious with fresh stylistic flair.

애틀랜타에 기반한 래퍼의 셀프 타이틀 앨범은 신선한 스타일적 세련됨으로 실없음과 한없는 진지함을 가교한다.


H. Silly(Sahbabii) & Deadly Serious(Saaheem)


흔히 개인의 일화나 정체성 등을 진솔하고 진지하게 풀어낸 작품일수록 '아티스트 (예명)으로서가 아닌 인간 (본명)으로서의 이야기'라는 표현이 자주 따라붙는다. "래퍼 이센스가 아닌 인간 강민호로서의 이야기"라는 평이 많은 <The Anecdote>의 커버 속 이니셜 KMH나 제이통의 <이정훈>처럼 이를 직접 의도하기도 한다.


논리는 보통 두 가지다. 하나는 예명으로서의 자신을 일종의 얼터-에고 및 캐릭터로 분리하여 인식하고 이번에는 캐릭터보다 본질에 더 다가서겠다는 의지. 다른 하나는 본래 에고 역시 캐릭터로 재해석함으로써 브랜드메이킹을 하겠다는 고도의 쇼맨쉽. 릴 웨인의 <The Carter> 시리즈나 영떡의 <Jeffery>는 내게 후자로 읽혔고, 에미넴의 <MMLP>는 그 중간에 걸치고 있다고 보는 게 정확하겠지만 전자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는 것으로 읽혔다.


그러나 Sahbabii의 <Saaheem>는 확실하게 전자인 것처럼 읽힌다. 만약 <Squidtastic> 시절의 그를 논하고 있는 것이라면 얘기가 달라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Do It for Demon> 이후의 거의 모든 행보는 전자로 기울도록 만들고 있다. 저술가 Rae-Aila Crumble의 "deadly serious"라는 표현은 친형의 안타까운 부고 및 진중한 헌정 이후 일련의 영향에 대한 함축으로 보여 더욱 마음이 무겁다.




아티스트가 진중해지고 솔직해질 때 대체로는 긍정적인 반응을 얻는다. 지나치게 교조적이거나 가식적인 것으로 받아들이지만 않는다면. 설령 오락적 측면을 희생하더라도 감정적 울림과 예술가의 인격적 성장을 위해서라면 감수할 만한 부분이라고 할 것이다. 흔히 성장이나 성숙함이란 키워드를 좋아하니까. 고로 본작의 방향성 역시 일단 기본 점수를 먹고 들어가는 쪽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혹자에게 이것은 그저 진부함과 피로감을 높이는 방식에 불과한 것으로 간주할 수도 있다. Charli XCX가 <Brat>을 통해 팝 시장에서 공식이 돼버린 '자기 고백적 서사' 코드에 대해 지적했던 것처럼 그것이 무조건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할 순 없다. 피치포크 역시 자신의 스토리나 사회적으로 필요한 메시지 등을 가감 없이 담아냈다고 해서 마냥 좋게 평가하는 단체가 아니라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피치포크가 본작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는 핵심은 그 진중함이 기존 Sah의 캐릭터와 작품의 고유한 매력을 효과적으로 가교하고 있다는 것이다. "Silly"는 곧 기존의 캐릭터성을 함축하는 표현일 테다. 본작에도 여전히 그것이 존재하고 있다. 캐릭터성은 곧 자신의 출신 애틀랜타 씬의 특성 및 이에 대한 그의 남다른 애정과도 직결된다.


결국 원문은 이때의 가교가 '감각'에 의해 성취된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with frest stylistic flair"라는 표현이 그것이다. 오케이, 그 감각의 면면에 대한 집요한 분석이 앞으로 논의될 모든 맥락들을 하나로 묶는 마스터 키가 되겠구나. 그렇다면 그 감각에 관한 양분과 형성을 추적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겠다.



I. He Kept the Momentum Going With ~, But After...


a) Pull Up Wit Ah Stick

RYM

Rae는 초기 Sahbabii의 커리어를 '기세(momentum)'로 아울렀다. 데뷔곡 "Pull Up Wit Ah Stick"를 첫 단계로 보고 있다. 기세를 추동하는 랩 마디(bars)와 취향(Perchant)에는 항상 재치(witty)엉뚱함(absurd)이 동반 돼왔다.


곡은 몹과 총기에 대한 과시라는 테마를 다루는 전형적인 거리 앤덤이다. 가사에서 그만의 유별난 재치를 찾고자 한다면, 글쎄... 오히려 수준급의 애틀랜타 트래퍼라면 흔히 다룰 법한 정도의 유머다. 조잡한 마이크로 짧은 시일 내에 첫 곡을 만든 풋내기가 이미 그들에게 뒤처지지 않을 만한 폼을 갖췄다는 점만으로 과대평가될 만한 곡은 아니다만.


그러나 분명 곡에는 그만의 엉뚱함으로 인정할만한 부분이 존재한다. 프로덕션의 전반적은 성질은 애틀랜타 트랩에 주요한 헤도니즘 뱅어에 가깝지만, 한 발 더 나아가서 몽롱하고 낙천적인 신스 멜로디와 내향성 십 대 소년이 샤워 중에 몰래 흥얼거리는 듯한 느낌의 후렴구는 플러그 뮤직에 가깝다. 그런데 플러그 특유의 천진난만함이 시카고에 더 어울릴 법한 폭력적인 콘텐츠에 의외의 시너지를 발휘한 것이다. 비유하자면 거대한 AK-47 소총이 정중앙에 있는 이미지에 아기자기한 이모지들이 뒤섞였는데도 그럴듯해 보이는 셈이다. 즉, 그의 엉뚱함은 '신선한 미스매치'에 있다.


Genius의 Verified 콘텐츠에서 곡의 멜로디컬함은 평소 그의 '취향'과 친동생으로부터의 영향에 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를 구태여 거리로 끌어들이고 완벽히 조립해 냈다"라는 코멘트를 자신 있게 덧붙였다. 처음부터 그가 작정하고 벌인 도전이었던 것이다. 영 떡의 리믹스와 더불어 플레이보이 카티가 당시 자신의 페이보릿 송이라며 극찬할 만큼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사베이비의 자찬은 뜬금없는 아이디어와 스타일을 절묘하게 조합해 내는 상상력에 공이 있다고 보는 것일 테다. 요컨대 상상력은 곧 감각을, 이윽고 기세를 이끄는 원동력이다.


b) Giraffes & Elephants

Apple Music
Gave her both of these balls, LaMelo and Lonzo


랩 마디에서의 재치를 본격적으로 확인할 차례다. 인용된 가사를 보라. 두 농구선수 형제는 과연 자신들의 이름이 이딴 식으로 예술에 이용될 것이라고 예상한 적이 있을까. 그러나 본인들도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쩔 수 없다. 그게 사베이비의 매력이니까. 바로 옆에서 들으면 속된 말로 실실 쪼개며 "이거 완전 도라이네 ㅋㅋ"라고 놀리기 딱 좋은 표현으로 라이밍을 한다.


그의 황당한 유머에는 일종의 코드가 존재하기도 한다. 주로 동물을 비유 소재로 쓰는 식이다. 기린과 코끼리를 곡 타이틀로 엮으며 이를테면 '성관계'를 '교미'로 바꿔버리는 짓을 한다. 플러그의 천진난만함을 더욱 부드럽고 순수하게 꾸민 이토록 동심 어린 프로덕션 안에서 말이다. 그러나 팬들은 그럴수록 더 빠져든다. 황당하긴 하지만 그의 위트에는 독창적인 상상력이 있으니까. 그에게 어떤 비트를 갖다 줘도 랩은 세련되게 하면서도 표현은 거리낌 없는 우스꽝스러움으로 도배할 것이다. 이번엔 어떻게 골 때릴지 기대하게 만든다.


C) Do It for Demon

그러나 2021년, 기대는 다른 의미로 벗어났다. 위트에는 웃음기 대신 상처가 담겨 있었다. 가족을 앗아간 적들을 향한 분노를, 잃어버린 가족을 향한 애도를 담고 있었다. 슬픔에 잠긴 그와 핏방울처럼 보이는 떨어진 꽃잎만이 커버를 장식하고 있었다. 운명이 그에게 실없는 농담을 던질 기회를 끝내려고 선고를 내린 것만 같았다.


그의 진지함은 <Die for Legend>의 Polo G를 연상케 한다. 그 역시 "Pull Up Wit Ah Stick"에서 그토록 예찬하던 거리, 애틀랜타의 Ninth Ward에서 나고 자랐으며 그 거리에서 비극이 일어났다. 시카고가 Polo를 진지하게 만든 것처럼, 애틀랜타는 그에게 언어유희를 즐기며 개성을 표현하는 법을 가르쳐 줬지만 동시에 웃음으로만 커리어를 이어나갈 수 없는 거리 출신 예술가의 현실을 일깨워 주기도 했다.


그러나 진심을 다해 누군가를 헌정하는 그의 모습은 그 자체로 성숙한 면모로 다가온다. 그에게는 음악에 새로운 동기가 부여된 것이다. "Do it for"이라는 문구는 Demonchild를 위한 다짐이기도 하지만 스스로의 변화와 약속을 암시하기도 한다. Rae의 발견처럼 그의 시선은 이제 달라졌다. 마치 <Die for Legend>에서의 아픔을 딛고 <THE GOAT>를 향해 나아가던 Polo처럼 말이다. 이는 곧 기세가 꺾인 것이 아닌 방향을 튼 것일 뿐이다. 감각도 전혀 훼손되지 않았다. 틀어낸 방향 <Saaheem>에서 그는 그저 앞으로 직진한다.



II. He Find Beauty and Humor in the Real-Time Struggle


Rolling Stone


a) Belt Boyz

<Saaheem>에서의 진중한 고백과 성숙한 변화는 <Do It for Demon>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트랙이다. 벌스 하나뿐이지만 상황에 대해 오히려 전작의 어떤 곡들보다도 구체적으로 진술한다. 'Belt'라는 단어는 차량을 훔친 적들을 응징하기 위해 출동한 삼총사들의 무장 상태를 지칭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안전벨트'를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그들은 위협에 대해 단단히 준비했으나 그들의 공격은 이어졌고, 참극을 막지 못했다. 정황상 Demon이 그를 보호하려는 과정에서 총살을 당한 것일 수도 있겠다. 이제는 언제 다시 들이닥칠지 모를 위협에 늘 긴장에 사로잡혀 있음을 알린다. 그는 트라우마에 의한 편집증과 연약한 모습을 숨기지 않는다.


b) Save iT 4 Me Babii

반면에 <Demon> 전,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그의 모습도 함께 있다. 이를테면 <Squidtastic>과 <Barnacles>에서의 변태(...)와 같은 모습 말이다. 그녀를 만나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달려가는 나름 순애적인 면모와 남성성을 곁들인다. 앞선 곡이 Saaheem으로서의 무거운 진술이었다면, 이번에는 Sahbabii로서의 유쾌한 농담인 것으로, 두 가지의 공존이 앨범의 핵심이다. 다른 말로 그는 더 이상 예전만큼 한없이 발랄하기만 하던 때로 돌아갈 순 없게 됐지만, 그럼에도 본연의 매력을 완전히 포기하지도 않았다는 뜻이다. Rae는 그의 농담이 앨범의 무거운 배경을 환기시키며 동시에 기존의 유머에 신중함이 더해지는 것으로 보았다.


c) Everyday

이로써 그의 플레이그라운드라 할 수 있는 플러그 사운드에 담아낸 농담은 한 층 더 깊이가 더해진다. 바닥에서부터 올라온 성장 과정과 일상에서의 크고 작은 분투를 그린다. 중요한 것은 진정성이 있다는 것인데, 설마 다른 누구도 아닌 그에게 이런 모습을 볼 수 있게 될 줄이야. 그의 변화가 너무나도 인상적이어서 그가 가장 차분한 순간임에도 화려한 변신처럼 느껴지며, 리얼-타임에 관한 이야기임에도 유례없는 마법처럼 느껴진다. 반대로 이토록 진중한 테마에 유머가 더해짐으로써 침잠─Rae의 표현에 의하면 끔찍한 순간들─이 아닌 사랑스러운 아름다움을 부여한다.




세 가지 곡으로 하여금 담론을 종합해 보자. 앞서 Sah의 고유 스타일로 지목했던 재치와 엉뚱함이라는 두 가지 코드에 집중하는 것이다. 우리는 재치에 깊음과 농밀함이, 엉뚱함에 성숙함과 진정성이 조화되는 순간을 보았다. 이는 색다른 그의 면모를 보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코미디와 드라마가 브래거도시오 및 스트릿 라이프에 화학적으로 어우러지는 현상을 보는 것이기도 하다.


지역을 특정하여 설명하자면, 그 스스로를 포함해 Ninth Ward을 바라보는 시각에 관한 입체적이고 유기적인 측면을 실시간으로 포착하게 된다. <Barnacles>까지의 커리어는 클럽 뱅어와 코데인, 헤도니즘 등의 이미지로 익숙해져 있는 애틀랜타 씬에 소위 개드립의 향연으로 코미디를 더함으로써 유희적인 매력을 극대화시킨 결과였다. 그러나 실상은 다른 게토와 다를 바 없는 씬의 이면을 상기시킨 일련의 사건으로 하여금, 그의 브라바도와 워드플레이에 경험과 서사가 부여되고, 최종적으로는 이 역시 분투(struggle)의 생생함을 조명한다. 예컨대 한 때 Lil Baby의 역할을 이번에는 그가 해낸 것으로 봐도 괜찮을 것이다.



III. a love and understanding of the city he comes from


HipHopDX

a) Viking

앨범의 타이틀 곡 "Viking"은 이와 같은 담론을 가장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례다. Sahbabii의 고유성과 변화, 브라바도와 분투, Rae가 지적한 애틀랜타를 향한 애정 등을 모두 압축한 셈이다. 그의 비유에는 여전히 황당함이 만연하며, 성적인 과시에 관해서 거침없다. "Anime World"에서 보았던 아니메를 향한 너드적인 열정 역시 포함돼 있다(My boy down the road cut a nigga neck, I swear he can knock down a Titan). 그러면서 사운드는 그가 좀처럼 하지 않았던 스타일임과 동시에 808 베이스가 저돌적으로 울리는 애틀랜타식 뱅어에 충실히 수렴한다. 구찌 메인을 향한 오마주는 덤으로 말이다(Tatted they face like they Gucci Mane, nigga went, "Burr," and I made 'em icy).


틱톡에서 바이럴된 이 곡이 댄스 챌린지용으로 소모되는 것 역시 유희적 성격에 대중이 반응하는 애틀랜타 트랩이 작금에 끼친 디지털상의 영향으로 받아들일 순 있다. "Pull Up Wit Ah Stick" 이후로 그가 여전히 충분히 화제를 모을 수 있는 랩스타임에 대한 반증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랩 콘텐츠로서도 곡이 그 이상의 가치를 함축하고 있다는 것은 Barter 시절의 Young Thug과 현재 MUSIC에서 보여주고 있는 Playboi Carti(*<Saaheem>은 <MUSIC>의 공식 발매 전에 공개됐으므로 정확히는 "I AM MUSIC" 스니펫 시절이라고 해야 할 것) 억양 및 스타일을 아울러 계승하고 있다는 Rae의 코멘트가 일러주고 있다. 감각이 어느덧 가족으로 묶여 있는 한 개인을 넘어 공동체 전체를 향한 헌사로 확장됐다.


b) 1095 Osborne St

애틀랜타 거리를 향한 헌사를 더 직접적으로 바치는 곡도 있다. 타이틀의 도로명은 그의 고향인 Sylvan Hills에 위치해 있다. 사운드에 자리 잡힌 노스탤지어는 Sah의 자수성가 스토리를 고향에서의 질기던 일상과 연관 지어 더욱 아련하고 드라마틱하게 포장한다. 몽롱한 분위기가 있으나 플러그에서 볼 수 있는 깃털 같은 가벼움과는 다른 이모셔널함이 있다. 부드럽고 진득하기 그지없는 오토튠 싱잉은 반 우스갯소리로 Luther Vandross와도 비견된다. 물론 힙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발라드의 일종이다. 감미로운 한편으로 절박하기도 하지만, 그 와중에도 마찬가지로 섹스에 대해 노래하는 노골적인 위트만큼은 그만둘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 얼마나 진지하고 애처롭든 심지어 옛 기억을 더듬는 순간마저 실없는 유머는 유효하게 작용할 수 있다.


그것이 곧 Saaheem과 Sahbabii가 합쳐진 모습이자, 그에게 무한한 영향을 끼친 본질적인 애틀랜타의 속성이다. Carti가 "ILoveUIHateU"에서의 멜랑콜리한 모습과 "F33l Lik3 Dyin"에서의 애절한 모습에서도 특유의 장난기 어린 랩 메이킹을 놓치지 않던 것을 생각해 보라. 혹은 <Beautiful Thugger Girls>에서 통기타를 잡고 고독한 남자의 모습을 풍기는 순간에도 여전히 엉뚱함을 감추지 않은 Young Thug을 생각해 보라. 그러나 Saaheem는 그것을 더욱 그 자신이란 인간의 휴머니즘을 올곧게 투영한 것처럼 보인다.



IV. with a new palette, and all the moving parts keep him focused


비트초이스와 프로덕션을 정돈하는 역량에 있어서도 Sahbabii는 약진을 이뤘다. Rae는 평소 믹싱에 관해 항상 아쉬움이 들곤 했나 보다. 한 때 Reddit의 r/Sahbabii 채널에서도 일부 팬들이 지적했던 부분이다. 물론 <S.A.N.D.A.S>의 경우 환경상 어쩔 수 없던 부분임을 감안해야 하겠지만. 그가 평소에 애착을 가지던 플러그 사운드와 보컬 싱잉 간에도 아주 약간의 부조화가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나처럼 둔감한 사람이라면 단번에 발견하지 못하고 마냥 즐기기에 바빴겠지만, 분명 이러한 피드백은 어딘가에서 꾸준히 존재해 왔다.


<Saaheem>에서의 약진은 첫째로 가령 <Barnacles>와 달리 StreamCut─<Do It for Demon>부터 손을 잡았다─에 의해 발매된 '스튜디오 앨범'이라는 점에 있다. Warner Records로 하여금 둥지에서 벗어난 이래로 그는 거의 DIY 식 제작에 의존했다고 봐야 한다. 이제는 그를 전적으로 서포트해 줄 새로운 그룹을 찾은 것이다.


둘째로 상당수 기존 플러그 뮤직으로부터 벗어난 비트들을 시도했다는 점에 있다. 훨씬 세련되고 다채로워졌다. 묵직하고 거친 드럼을 전면에 내세워 앨범이 전반적으로 더욱 역동적이면서도 믹싱의 발전 덕분에 오히려 대부분 깔끔하게 다듬어졌다. 말하자면 온전한 집중으로 감각을 극단까지 끌어올리기 위해 여러모로 새로운 팔레트를 마련한 셈이다.


a) Sylvan Rd Ridin Down Dill

Rae는 본 곡을 최고의 비트 중 하나로 꼽았다. 곡에서 Sah의 랩은 꽤나 타이트한 편이다. 둥둥거리는 808 드럼과 스네어가 이를 놓치지 않고 받쳐주는 모습이다. 서두르지도 뒤쳐지지도 않는다. 적당히 공격적이면서도 텐션의 정도도 일관적이며 적절하다. 연기처럼 꾸준히 피어오르는 신시사이저의 환각성은 전작들에서의 몽롱함을 대체한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Sylvan Hill에서의 생태와 드라마를 지독하게 표현하기 위해서 필요한 무대 세팅이다.


b) Anaconda Livin

마찬가지로 보컬 찹과 신사사이저로 조성된 환각적인 백그라운드 위에, 이번에는 드럼 패턴에 변칙성이 더해진 모습이다. 지지직 거리는 하이햇이 번개라면, 그 뒤로 묵직하게 꽂히는 808 드럼은 천둥이다. 그 사이에 이따금씩 교묘하게 혀를 날름거리는 뱀의 소리도 들린다. 불길한 분위기 속에서 은밀한 방식으로 위협을 주는 아나콘다의 이미지를 형상화하고자 한 듯하다. 나름 극적인 표현 방식이지만 역시나 절묘하게 조율돼 있다.


c) Don Quan Intro

그의 작품마다 항상 등장해 온 "Don Quan Intro"다. 그러나 이번에는 어떻게 다른지 보자. Rae는 곡의 무게감을 Drake의 <Nothing Was the Same> B-Side와 비교했다. 내게는 <Spider-Man: Across the Spider-Verse>가 보였다. 비장하면서도 처연하고 고독한 영웅서사의 스타트가 보인 것이다. 앨범 커버에서 듬직하게 가슴을 펴고 서있는 그의 모습이 모든 진실을 알게 되고 나서도 신념을 굽히지 않는 마일스 모랄레스의 긍지처럼 보여 사뭇 코끝이 찡해지는 순간이다. 그 역시 사촌을 위해 반드시 약속을 지키며 나아가기로 다짐한 것이지 않은가. 그토록 질긴 사명감과 성장담이 담긴 만큼 이보다 더 감동적으로 다가오는 "Don Quan Intro"가 있었는가.



V. Even the class clown has shit going on at home

SahBabii-Saaheem.jpeg Pitchfork

우스꽝스럽게 포장된 그의 랩에 이제껏 그를 거리가 낳은 개그 담당 캐릭터, 혹은 일본 애니와 희한한 동물을 애호하는 너드로 알고 있었는가. 그에게 가족과 동료를 지키기 위해 사투를 다짐하는 마일스와 똑같은 눈빛을 볼 수 있을 거라 기대한 적은 없었는가. 마치 평행 세계에 위치해 있는 것만큼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Sahbabii와 Saaheem. 그러나 이것은 멀티버스가 아니다. 현실을 겪고 나서 비로소 하나가 된 그의 진짜 모습을 보고 있을 뿐이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모습이 본래 그이며, Rae의 코멘트대로 그간의 실없는 농담은 남몰래 감추고 있던 비밀들을 털어놓을 때를 미루기 위한 방편이었던 걸지도 모르리라.


그러나 아무리 그가 변했더라도 기존의 음탕하고 엉뚱한 재치를 본작에서도 즐길 수 있던 것처럼, 유쾌한 면모는 그에게 맞지 않는 갑옷이었던 게 아니라, 그 역시도 그를 정의하는 태생적인 매력이자 아이덴티티다. 단지 이제야 두 가지가 균형을 이루는 법을 찾은 것일 뿐이다. 그가 애틀랜타 출신인 이상, 그리고 이를 부정하지 않으며 사랑으로 말미암아 결정해낸 이상 둘 중 어느 한쪽도 부정할 수 없다. 여전히 독특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평범한 인간으로서의 자신도 인정할 줄 아는 어른이 됐다. 반에서 얼마나 쾌활하고 웃기고 놀기 좋아하는 아이든, 집에서는 차마 꺼내지 못하던 각자의 일이 있는 법이지만 그렇게 어른이 돼가는 것이다.


Sahbabii로서의 면모를 마냥 브랜드의 일환으로만 취급할 필요도 없다. Saaheem도 Sahbabii의 이미지 중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이고, 진중하고 솔직한 모습 그 자체로도 멋진 브랜드가 될 수 있다. 가령 포크 싱어송라이터의 문학적인 자전성도 한 인간으로서의 성숙과 공감을 이끌어내는 한편, 뮤지션으로서도 음악성과 명성에 관해 일약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이 되기도 했다. 그러므로 Sah가 꾀한 변화 역시 관점에 따라 얼마든지 '브랜드의 재정립'으로 볼 수 있다. 새로운 태도와 접근법은 곧 새로운 퍼포먼스나 콘텐츠를 창출하기 마련이다. 벌써 우리는 본작을 신선한 콘텐츠 중 하나로 충분히 받아들이고 있지 않은가.


앨범으로부터 단순히 인간적 고백과 성숙 외에도 '음악적 가교로서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확장해서 보자면 또 다른 애틀랜타 식 헤도니즘의 입체적 면모를 새삼 깨달을 수 있는 지점일 수도 있겠다. 도시의 모습도, 클럽의 모습도, 그러나 거리의 모습도, 처절한 현장의 모습도 있는 곳이니 말이다. 어쩌면 진정한 의미로 그가 고향과 닮아가는 과정을 보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Genius

Long Live De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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