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이란 무엇인가
“식사는 김밥으로 간단히 하죠.”
여러 사람 모여서 끼니를 정할 때 종종 나오는 소리다. 바삐 일하는 와중이나 집 밖에 자리를 펴거나 이동하며 밥을 먹어야 할 때 적절하다. 여기서 ‘간단히’는 식사를 차리기 간편하고 손쉬운 장면을 가리킨다. 이 표현을 다른 대화에 놓아보자.
“밥은?”
“응, 김밥으로 간단히 먹었어.”
“뭐 좀 더 먹을래?”
김밥을 먹은 속이 든든할 리 없다는 전제가 쫙 깔린다.
우리는 주어에 목적어에 보어까지 생략하고 말해도 '알아서 알아듣는' 눈치 백단 민족이라 ‘간단한 김밥’이란 표현은 아무런 이의를 받지 않고 잘도 쓰인다. 김밥은 안 간단한데.
‘간단’과 ‘김밥’ 사이 숨은 뜻을 살살 꺼내보자. 간단한 것은 김밥이 아니라, 끼니를 한입에 쏙 집어넣는 품새이고, 한 줄로 여민 포장이고, 김밥 마냥 한 줄로 앉은 사람들이 한 끼 식사를 줄줄 전달받는 장면이고, 야무진 김밥이 들어앉은 뱃속이고, 뚝딱 끝나버린 점심시간이다. 이 모든 장면은 둘둘 말려 ‘간단한 김밥’이 되어 버렸다. 이른 시간 펼쳐놓은 가지가지 재료가 구절판이나 비빔밥이 아니라 김밥으로 축약되었듯이.
그러니 ‘살찌는 치킨’ 같은 표현의 오류가 김밥에도 있다. 치킨은 살 안 찌고 살은 내가 찌는 것처럼 간단한 김밥은 원래 간단하지가 않다. 검고 동그랗게 마침표가 된 김밥을 손에 쥘 때면 사라진 문장을 생각해 보자.
‘너 간단하게 먹으라고 내가 안 간단한 김밥을 쌌어.’ 혹은 '하나도 안 간단한 김밥이 간단히 느껴질만큼 나는 오늘 대단한 하루를 보내겠군.'하고. 싼 김밥 아니라 산 김밥도 마찬가지다. 아침부터 김밥을 싼 한 사람의 하루를 이어받은 바톤이 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