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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기혜 Jul 15. 2024

08 김밥의 재연

김밥의 기억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는 일이 수고가 아니라는 듯 김밥을 말고 있는 엄마의 입꼬리는 올라가 있었다. 부시시 일어나 마주 앉은 내게 이야기가 전해졌다. 어느 하루에 들은 이야기인지, 여러 세월 동안 뚝 뚝 나눠 들은 이야기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합쳐보면,

“옛날에 소풍 가서 할머니가 김밥 싸주면, 선생님 도시락까지 싸갔지. 계란 넣고, 어묵 넣고, 고기 넣고. 도시락 뚜껑 딱 열면! 캬-. 끝내줬다! 그때는 그런 도시락이 없었다.”     

그때의 엄마는 여덟아홉 살이었을까. 속 재료 가짓수가 많아 절로 화려해서 뚜껑을 여는 것만으로 이목이 쏠렸던 때. 친구들이 부러워 하고 선생님이 고맙다 했을 때, 혹시나 마음이 상할 친구의 점심이 눈에 들어오긴 일렀을 때. 둥실 뜬 느낌으로 온통 화사했을 엄마의 소풍날. 엄마의 유복했던 시절은 초등학교에서 끝이 났다 했으니 자식 돋보이려는 외할머니 욕심까지 그득 담았을 도시락은 그 후로 드물었을 거다. 아이가 느꼈을 선명한 보살핌, 우리 엄마 최고라서 아이도 최고였던 순간. 엄마는 그 순간을 물려주고 싶었던 것 같다.     

이제는 일제 벤또 아니라 일회용 도시락이고, 엄마가 아무리 여러가지 재료를 눌러 넣어도 김밥의 지름은 무한히 늘어날 수 없고, 친구들의 김밥도 제각각 예쁘고, 선생님 도시락은 여유 있는 집이 아니라 반장만 싸오면 되었다. 특별한 학생도 아닌 내가 특별해 보이지 않는 도시락을 들고 선생님 돗자리를 찾아가는 일은 난처했다. 이미 부페 저리 가라 차려진 돗자리 귀퉁이에서 담임선생님을 크게도 못 부르고 “저... 이거 엄마가 드시래요.” 하고 도시락을 내미는 일은 해마다 싫었다.     

집에 오면 거실 소파에서 쪽잠을 자던 엄마가 깨어서 내 소풍 이야기 끝에 꼭 물었다.

“선생님이 김밥 뭐라시대?”

“응, 맛있대. 아주 잘 드셨대.”

말 그대로 인사를 하신 분, 좀 더 세심하게는 감사하다는 손편지를 전하신 분도 있었지만, 그 시절 선생님 도시락은 당연하기도 해서 별 인사 없는 선생님이 더 많았다. 그래도 소풍날 아침에 도시락 두 개를 내 가방에 넣던 엄마의 표정을 기억하니까 듣지도 않은 인사를 전했다. 6학년이 되어서는 친구들 눈도 있고, 엄마의 기대만큼 잘나지 않은 내가 선생님께 도시락을 드리는 일은 도저히 못 하겠어서 양쪽으로 거짓말을 했다. 친구들에게는 “얘들아, 이거 먹어. 같이 먹으려고 두 개 싸 왔어.” 엄마에게는 “응, 맛있대. 선생님이 엄청 잘 드셨대.”     

엄마 성희와 엄마 기혜 사이, 세상에는 김밥의 외주화가 이루어졌다. 소풍날 아침에도 내 아이 도시락은 얼마든지 주문할 수 있다. 전화 한 통만 하고 나갔다 와서 도시락통에 김밥을 옮겨 담아 과일 몇 조각 더하면 끝이다. 평소에도 그리 사서 잘 먹이면서 소풍 앞둔 날은 꼭 고민을 한다.

‘이걸 싸? 말어?”

고민의 이유는 어쩐지 아이 인생에서 소풍에 필요한 준비물이 ‘도시락’이 아니라, 새벽에 진을 친 엄마의 퍼포먼스인 것 같아서다. 내 엄마가 이걸 해 주었다는 기억. 그러니 준비는 가정통신문이 아니라 기억에서 시작한다. 우리 엄마가 뭘 넣었더라? 오이도 들어가지만 시금치도 넣고, 맛살이 들어가는데 어묵도 넣고, 직접 채 썰어 졸인 우엉을 넣은 김밥을 만든다. 시절이 김영란법 이후이니 선생님 도시락은 없다. 두 아이 소풍 김밥을 매번 싸서 보냈다.     

선생님과 친구들의 찬탄을 기대했던 우리 엄마와는 다르게, 나는 아이가 엄마 도시락이 있는 만족스런 하루를 보냈는지가 궁금하다.

“오늘 김밥 어땠어?”

예상 답안지에는, ‘너무 맛있었어.’, ‘친구랑 바꿔 먹었는데 내 김밥 맛있대.’ 같은 최고 점 답도 있고, ‘김밥? 응 맛있었지 뭐.’ 같은, 소풍이 재밌어서 김밥 맛은 기억이 안 나더라는 무심한 답도 있다. 그런데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내껀 너무 집밥 같았어.”

“집밥?”

“그러니까 이건 소풍이잖아. 그러니까 좀 더 파티 같았어야 했어.”

언뜻 이해가 가질 않았다. 답을 못하는 나를 대신해서 아이가 마무리를 한다.

“하지만 괜찮았어. 잘 놀았어.”

파티 같은 소풍 도시락이 뭔가? 칵테일 우산을 꽂아야 했나? 과일에 힘을 주었어야 했나? 저녁부터 올라오는 이웃 엄마들의 SNS를 보고서야 아이의 말을 알아들었다. 메추리알에 검은 깨가 눈동자처럼 박히고, 유부초밥에 김으로 눈, 코, 입을 붙인 캐릭터가 등장하고, 흰 식빵이 딸기 쨈을 안고 돌돌 말려 화려한 달팽이 무늬를 담당하고, 비엔나 소세지는 하나같이 문어가 되어 다리를 뻗었다. 김밥은 거들 뿐.     

이젠 어디서나 살 수 있는 김밥만 채운 나의 도시락은 엄마의 도시락과 똑같이 시대를 쫓아가지 못했다. 엄마도 기억 속의 김밥을 쌌겠다. 엄마는 아이의 소풍에 따라갈 수 없고 그때는 SNS도 없었으니까.

내가 “선생님이 아주 맛있었대.” 하고 듣지 않은 인사로 엄마의 마음을 달래주었듯이 내 아이도 그러나 보다. 하지만 괜찮았다고, 잘 놀았다고. 어쩜 우리 엄마도 그 이후 단촐해진 도시락을 들고 나간 하루가 어땠는지 할머니가 물었다면 똑같이 답했을까. 

“네, 엄마 괜찮았어요.”

먼 훗날, 내 딸도 오려낸 김과 소세지 공예로 그 딸을 곤란하게 만들지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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