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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규만 Mar 22. 2024

벙거지를 쓴 남자크로키 1 -7

1 데생 1 -7

그녀는 맑은 눈으로 날 바라봤다. 아마도 이 눈빛 때문에 범준이 훅 갔나. 그녀가 쳐다보자마자 얼마 버티지도 못했다.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매력 앞에서는 나로서는 불가항력이었다. 웃다가도 금방 심각해지는 무미건조한 미소와 눈에 마음이 흔들렸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미술부에 처음 입문하는 것같이 주말에 교회를 다녔어요.” 

아하. 교회 오빠였구나. 오빠는 아니었다. 같은 또래였다. 그리고요. 교회에서 만난 어떤 여자분이었나요? 경화는 계속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고 시선을 마주칠 수 없어 앞쪽을 주시하는 상태였다. 그러다 힐끔 그녀에게 곁눈질했다. 경화가 날 바라보는 눈은 마치 마법이었다. 홀려서 얼이 빠졌다. 

  이상하게 범준보다 소치나 이련의 이야기하고 싶어 안달을 낸 사람처럼 상세히 그려 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련한테 미안한 감정을 가지는 나를 이야기했다. 이련을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섣불리 편지를 썼다고.-      

 

 고등학생 1학년에 소치를 처음 봤어요. 친구 따라 강남 간다더니. 제가 딱 그쪽이었어요. 저는 성국이란 친구와 항상 같이 다녔어요. 성국이랑 저는 늘 예배가 끝나고 각자 집에 곧장 갔었어요. 

 그러던 여느 주일에 교회 행사가 있었어요. 체육대회같이 잠깐 공을 차는 행사였던 거 같아요. 교회는 상대원 밀집 지역에 있었던 터라 운동장이란 것이 따로 없었거든요. 거기서 제일 가까운 초등학교가 단남초등학교가 나았나 봅니다. 거리상으로 보나 시간상으로나 장소가 제일 적당했나 봐요. 어른들이 하는 행사라 잠깐 구경만 했었죠. 

 행사가 끝나니까 미리 약속된 것도 아니었고 우연히 뭉치게 됐죠. 고등학생 1학년 생이 거의 없었거든요. 분위기 때문이었을 거예요. 사춘기 때 남 학, 여 학으로 엄격하게 나뉘던 때에 접할 수 있는 곳은 교회밖에 없었거든요. 경화 씨 같은 경우나 범준이 같은 경우에는 학교 이외에 화실을 다니게 되니 남녀 따로따로 엄격하게 나뉘지 않고 다녔던 것으로 압니다. 저는 달랐거든요. 화실을 다닐 형편도 안 되었고 여자를 접하게 되는 곳이 교회뿐이 없었거든요. 아무리 신앙심이 두터워도 대학 가는 공부를 위해 고2 때부터 교회에 안 나오는 선배들을 많이 봤으니까요. 

 나와 성국이가 편했는지 그녀가 쫓아왔어요. 한 손에는 찬송가와 두꺼운 성경책 두 권을 들고. 소치는 그때 청치마에 흰 블라우스 차림이었어요. 예뻤습니다. 그때가 오월이었죠. 주로 학교생활과 고등학교에 관한 이야기만 셋이 주고받았습니다. 내가 배정된 송림고등학교는 성국이 다니는 풍생고등학교보다 못하다, 했었습니다. 소치가 다니는 숭신여고는 분위기가 어떤가, 물어봤습니다. 그런대로 성남에 속한 인문계 중에서 제일 나은 것 같다. 선배들을 보니 서울에 있는 대학도 많이 간 것 같다. -라면서 요. 

 교회는 상대원고개 부근인데 우리 집은 금광동이었습니다. 새로 지은 이층 양옥집에 터를 잡은 지 얼마 안 된 상태였어요. 높은 구릉지대에 있었던 단남초등학교에서 몇 발짝도 안 되는 거리였죠. 고등학생끼리 대화를 나눌만한 곳이 마땅하지 않았습니다. 겨우 분위기가 형성되었는데 각자 헤어지기가 참 아쉬웠습니다. 저는 곧바로 성국에게 말했습니다. 집에 누가 있는가, 없는가, 확인할 테니 소치 좀 붙잡아 두라. 가보니 집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랬었죠. 일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와 어머니, 두 분 모두. 보이지 않았어요. 형은 대학생이라 학교에 갔는지 없었어요. 저는 그때 너무 경황이 없어서 가족이 있나, 없나 확인하기 바빴어요. 

 급작스레 초대가 이루어졌습니다. 여자가 남자 집에 왔다. 그것도 혼자서. 당시로서는 좀 파격적이었죠. 소치도 나와 성국이 눈치를 많이 살피더니 잠깐 망설이고 주춤한 상태였어요. 제가 집에 아무도 없음을 강조했고 가족이 급작스레 올진 모르겠지만, 지속해 있을 것도 아니다, 행여 오더라도 교회 친구라 밝히면 그렇게 부정적으로는 보지 않을 것이다, 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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