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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향기와 찬양Lim Sep 08. 2022

너, 나 좋아해?

- 아뇨, 저는 영어를 좋아해요

중일이네 교실에 들어가면, 한 사람이 앉아 있는 것처럼 조용하다. 수업 시작하기 2분 전에 울리는 예비령에, 학생들은 영어책과 학습지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각자의 자리에 앉아있다. 오래전에 방영되었던 개그 콘서트의 <봉숭아 학당>처럼 "모두 제 자리에 앉아!" 이런 말은  필요 없다. 준비된 수업을, 보따리 풀어놓듯이 시작하면 된다. 중일이는 그 반의 영어 부장이다. 올해 첫 수업시간에 영어 부장을 뽑았기 때문에 중일이가 어떻게 영어 부장이 되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사실 중일이는 너무 나댄다. 그런다고 해도 중일이가 자기가 해야 할 영어 부장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썩 잘하는 편도 아니다. 하여간 중일이는 영어 부장이라는 것 대단하게 여기는 듯하다. 반 친구들한테 자기가 큰 감투를 쓴 것처럼 거들먹거린다. 그래도 얌전하고 착한 그 반 학생들은 중일이의 깝죽거리는 모양새를 다 받아준다.

 중일이네 반 학생들은 마음속으로는 영어와 영어 선생인 나를 참 좋아하는 모양이다.  스승의 날에, 몇몇 학생들이 깨알같이 적은 손편지를 들고 왔다.

[중일이네 반 학생들이 들고 온 손편지]

중일이네의 교과과정 운영은 자유학기제 수업으로 진행된다. 대체적으로 오전에는 교과 수업이 이루어진다. 월, 수, 금요일 5,6교시에는 자유학기제 수업이 진행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학생들은 자신의 진로를 탐색하고 소질을 계발한다. 자유학기제 운영은, 사이트를 이용하여 자신이 수강할 강좌를 선택하여 수강 신청하는 방식으로 시작된다. 2학기에 접어들면서, 영어 교과는 자유학기제 운영 시스템에 따라 움직였다. 일부 교과는 1학기에 그 과정을 거쳤다.


주제 선택, 자유학기제 동아리, 예·체능, 창체 동아리 등 4개 분야에 다양한 강좌가 개설된다. 내가 개설한 강좌는 미스터 맨 영어 동화 읽기(주제 선택), 타이포셔너리(자유학기제 동아리), 캘리그래피(예·체능), 스크린 영어(창체 동아리) 등이다.


그런데 내가 개설한 자유학기 강좌마다 중일이가 와 있다.


"어, 중일이 너? 여기도 수강 신청했네? 도대체 어떻게?"

- 제가 뭐 좀 하잖아요.

"그거 쉬운 일이 아닐 텐데 어떻게 내가 개설한 강좌에 다 신청 성공했지?"

- 제가 뭐 좀 잘하니까요.

" 혹시, 너, 나 좋아해?"

- 아뇨, 저는 영어를 좋아하는 데요?


여기저기서 수군대는 소리가 들린다.

- 중일이 쟤, 사회생활할 줄 모르네, 일단, 샘이 그렇게 물어보시면, '네'하고 대답하지.

- 그러게, 마음을 숨기냐?


중일이 대답에 어폐가 있다. 캘리 그래피는 내가 개설하고 강사를 초청하는 것이다. 그것은 영어와는 상관없는 강좌다.


내가,

'캘리그래피는 영어가 아니잖아?'

이렇게 물어보면,


- 그건, 그냥 제가 하고 싶어서 신청한 거예요.

이렇게 말할 게 뻔하다.


중일이는 진짜 영어만 좋아하는 것일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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