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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향기와찬양Lim Sep 10. 2022

들어봤니? 동명사?

- 에공, 오늘은 공부하지 말아야지

"들어봤니? 동명사? 중일아, 오늘은 딴짓하면 안 돼."

수업 시작 전부터 중일이가 얼마나 나댈지 걱정된다. 중일이보다 내가 더 많이 오버하는 수밖에 없다. 문법 파트 수업을 대부분의 학생들이 싫어한다. 


"오늘은 말이야...."

- 그거 왜 배워요?

시작도 하기 전에 중일이의 입이 댓 발이나 나왔다.

[동명사 초간단 설명 영상]

"오늘은 동명사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해요.

- 그게 도대체 뭔데요?

중일이가 미미한 관심을 보인다. 

'앗싸, 얏호.'


발표 순서인 학생에게 PPT 슬라이드를 읽어보라고 했다. 

 .....

말이 없다.

"저거 한 번 읽어볼래?"

대형 TV 화면을 가리키며 그 학생 옆으로 다가갔다. 여전히 학생은 눈만 껌뻑거린다.


- 걔는 말 안 해요.

중일이가 김현이를 대신하여 알려준다.

'김현이는 말을 하지 않는구나.'

김현이 대답을 하지 않으니 교실에 잠깐 침묵이 감돈다. 그래도 30명이나 되는 학생들이 웅성거리지도 않고 차분히 기다리고 있다. 

'이건 칭찬받을 일이다.'

친구의 핸디캡을 가만히 지켜보며 기다려주는 급우들이 멋있다. 그렇다고 해서 발표 순서를 패스하면 김현 자신이 섭섭할 수도 있고 다른 애들이, "쟤만 왜 봐줘요?" 할 수도 있다. 

'그러면 말하는 것을 대신해서 제스처라도 표현하게 해야지.'


"김현, 오늘은 동명사라는 것에 대해서 배울 거야. 니 생각은 동명사라는 것이 동사일 것 같아? 명사일 것 같아?

만약에 동사라고 생각이 되면 오른손을 들고, 명사라면 왼손을 들어서 표시해 줘."

김현은 고개만 몇 번 절레절레 흔든다.


성질 급한 중일이가 끼어든다.

- 아니면 두 손을 들고 × 표시를 해.

"중일아, 선생님이 김현과 얘기할 테니 넌 빠져줄래?"

- 죄송합니다.

중일이는 절대로 예의의 선을 넘지는 않는다.


김현이 양손을 슬며시 든다.

"어, 너, 잘 아네. 동사도 되고 명사도 된다고? 맞았어. 바로 그거야.

"아주 아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줄게. 「동사 +-ing 형태로 명사의 역할 동작의 의미를 가진 명사 ‘~하는 것으로 해석된다고. 김현, go는 동사지? 저 동사가 가만히 보니 명사가 앉아 있는 자리가 좋아 보이는 거야. 그래서 그 자리에 앉을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겠지? 어느 날 성형외과를 찾아갔어. 거기서 엉덩이에 ing를 붙이고 집에 왔어. 이제는 going이 된 거야. go였을 때 앉을 수 없었던 자리, 즉 명사의 자리에 앉을 수 있어. go라는 의미는 지니고 있는데 명사처럼 쓰여서 '가는 것'이라고 해석된다고."


김현이 고개를 끄덕인다. 

'아하, 김현은 말을 안 할 뿐이지 학력은 전혀 이상이 없는 학생인가 보다.'


그다음은 박경우의 발표 순서다. 슬라이드를 읽는 데, 심하게 말을 더듬는다. 다른 학생들은 조용한데 중일이가 손을 입에 가리고 박경우의 더듬는 말투를 따라 하며 키득거린다. 박경우는, 중일이가 그러든지 말든지 아무 상관하지 않고 끝까지 읽는다. 


"박경우, 샘이 질문할게. 동명사는 명사가 가는 자리에 이제 당당히 앉을 수 있잖아? 혹시 명사가 갈 수 있는 곳이 어딘지 알어?"

경우가 머리를 긁적인다.


"그러면 샘이 옵션을 줄 게 선택해봐. 주어, 동사, 목적어, 보어, 찌랭이 군식구, 이런 자리가 있어. 찌랭이 군식구라는 것은 문장의 주된 성분이 아니라,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것이야. 

①: 주어

②: 동사

③: 목적어

④: 찌랭이 군식구(친척 언니가 니네 집에 와서 살지만 너네 식구는 아닌 것과 같은 원리야.)


"저 문장에서 명사가 갈 수 있는 곳이 어디지? ①~ ④ 에서 골라 볼래?"

- 쩌쩌저기. 저,저 ③번,번이요.

"어, 잘하네. 그러면 명사가 갈 수 있는 곳은 목적어 자리구나. 그런데 또 있는데? 혹시 알겠어?"

박경우가 고개를 흔든다. 그런데 김현이 손을 든다. 김현의 자리에 가보니,

주어, 목적어, 보어 자리에 명사가 갈 수 있어요.라고 쓴 메모를 보여준다.


"얘들아, 김현이가 영어 달인이야. 언젠가 목소리가 나오면 영어도 참 잘 읽을 것 같아. 그날이 빨리 오도록 우리 김현을 위해서 박수 좀 쳐 줄까?"

- 맞, 맞아, 김, 김현언, 짜장이야. 

박경우가 가장 큰 소리로 김현에게 박수를 보내고 응원한다. 중일이네 반 수업은 늘 훈훈하다.


[계속]

[메인사진: 픽사 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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