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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향기와 찬양Lim Sep 13. 2022

'마시멜로우' 수업이라고 하지만

- 달콤하기는 커녕, 교사도 학생도 그 수업을 싫어합니다

성적이 낮아서 과외 수업을 받아야만 하는 학생을 일컬어, '부진아', 혹은 '미도달' 학생이라고 했었다.  진단 평가를 실시하여 일정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 학생들에게 별도로 수업을 받게 해서 성취도 평가에서는 좋은 결과를 기대하는 게 바로 '미도달 보충수업'이다. 이 수업의 최대 난제는, 수업받을 대상자인 학생들이 보충 수업을 받고 싶은 마음이 1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교사도 그 학생들을 챙기는데 지쳐서 그 수업이 참 싫다. 하지만 정책상, 학생도 교사도 싫어하는 그 수업은 매년 실시된다.


15~16년 전에는, 대상 학생이 20명 정도나 되었던 것 같고, 겨우 1~2명 정도만 수업에 참여했었다. 그래서 수업에 빠진 학생들을 개별적으로 찾아가서 학습지를 나눠주고 이해하지 못한 부분을 체크하곤 했다.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을 활용하여 그 학생들을 챙기느라 진땀을 뺐다.


우리 학교는, 미도달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수업을 '마시멜로우' 수업이라고 부른다. 그 수업을 일컫는 말이 달콤하다. 다행히 본교는 미도달 학생 수가 적을뿐더러 그 수업을 하지 않고 집으로 가 버리는 학생은 한 명도 없다.


코로나 이전부터 강조되어 왔던 'ICT 활용 수업'이 이제는 화려하게 꽃을 피웠다. 교사는 물론 학생들도 어떤 형태의 플랫폼이나 앱을 만나도 척하면 척이다.


e 러닝, 스마트 학습, 언택 학습 등의 용어가 더 이상 생소하지 않다. 코로나가 막 들이닥쳤을 때는 우선 급한 대로, ZOOM을 통하여 비대면 수업을 했었다. 그리고 강좌 업로드는 EBS 플랫폼을 활용했다. EBS에서도 실시간 화상 수업을 할 수 있는 기능을 EBS 온라인 클래스에 가미했다.


등교 중지, 즉 비대면 수업이 실시되면, EBS 실시간 화상수업을 활용하고 과제는 '구글 설문지'나 '띵크벨' 등을 활용했다. 영어 부장을 통하여 그 링크 주소를 학급 단톡 공지사항에 올리면 학생들은 과제를 수행하고 '답안 제출'을 클릭한다. 교사는, 자동으로 채점된 학생들의 답안지를 한눈에 볼 수 있어서 참 편리했다.


대면 수업에서는, '카훗'이나 '클래스 카드' 앱을 잘 활용하면 단원 마무리 시간이 즐겁다. 카훗은 원어민과 수업할 때 자주 접했던 것인데, 앱을 통한 일종의 ○, × 퀴즈 게임이다. 이 앱은 장점이 많지만 공부를 못하는 학생에게는 주눅 들게 하는 폐단도 있다. 자신의 점수가 실시간으로 공개되거니와 정답이 아닐 때는 어느 번호를 체크했는지까지 다 드러나서 창피함은 자신의 몫이다. 그런 연유 때문에 나는 개인적으로 카훗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 편이다.


올해 마시멜로우 수업 첫 시간에, 해당 교실 복도는 시끌시끌했다. 종례 시간이 제각기 다른 데다가, 수업을 진행할 교실에 쑥 들어올 용기가 없어서 마시멜로우 반 학생들이 죄다 복도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수업이 시작되기 전에, 미리 해당 학생들의 번호를 저장하여 오픈 채팅방을 개설해두었다.


"지금 모두 1-6반 교실로 들어오세요."

마시멜로우 반 채팅방에 톡을 보냈더니, 대상 학생들이 해당 교실로 들어왔다.


"넌, 왜?"

엥? 중일이가 복도에 서 있다. 중일이는 영어를 곧잘 한다. 중일이가 학원용 교재, <Voca Power 22,000>을 펼쳐 놓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출석부에 니 이름이 없었는데?"

- 그냥 저,

중일이가 머뭇거린다.

중일이의 절친이 마시멜로우 수업 대상자인 듯했다. 마치면 함께 귀가할 모양이었다.


"시끄러우니 어서 집으로 가세요."

나는 복도에 있는 학생들을 모두 보내고 마시멜로우 수업을 시작했다.


마시멜로우 수업 진행은, '클래스 카드' 앱을 활용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마시멜로우 수업에 오는 학생들은 공부하는 것을 싫어하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일단 흥미가 있어야 할 것 같아서 미리 채팅방을 통해서 휴대폰을 챙겨 오라고 했었다. 바야흐로 학급 교실은 모두 와이파이 존이다. 학생들은 와이파이 연결하는 법을 대부분 다 알고 있다. 그러나 마시멜로우 반에 온 학생들은 그런 것 마저도 쉬운 게 아니다.


클래스 카드는, 영어 학습에 최적화된 앱이라고 여겨진다. 일단 한 단원의 모든 어휘를 미리 학습창에 세팅하고 마시멜로우 단톡방에 초대 링크를 보낸다. 학생들은 그 링크를 열어서 클래스 카드 앱으로 입장한 후에 단어장을 보고,  리스닝, 스피킹, 문장 학습, 문제 풀이, 매칭 게임 등으로 모든 단어의 뜻은 물론 어휘를 익힌다. 그런 후에 내가 준비해 간 단어 시험 학습지에 답을 다 쓴 후에 통과하면 귀가할 수 있다.

마시멜로우 반에서도 수준은 제 각각이다. 소민이는 왜 이 수업을 받는지 이해가 안 된다. 아마도 진단 평가 볼 때 답을 밀려 쓰지 않았나 싶다.  학습 속도가 빠를 뿐만 아니라 정확하게 단어를 다 쓸 줄 안다. 그러면 기본/발전/심화 단계의 어휘 학습지를 준다. 그래도 잘한다. 자기 학습이 끝나면 슬슬 힘들어하는 친구 옆에 가서 도우미가 되어서 친구를 도와준다. 그래도 시간이 남으면 칠판 청소를 하고 교실의 소품을 정리한다.


"소민이 참 착하네, 공부도 잘하고 교실 청소도 잘하네."

- 우리 교실이니 제가 해야죠.

소민이는 조용히 교실의 앞, 뒤를 잘 정리한 후에 제일 먼저 귀가한다. 소민이가 그렇게 하고 있는 동안에 채빈이는 안절부절못한다. 빨리 집에 가고 싶은 모양이다. 채빈이가 복도를 향해서 손짓을 한다. 헉, 중일이와 채빈이가 사귄단 말이었다.

"채빈아, 충분히 학습을 한 후에 도전해야지." 내가 핀잔을 주어도 채빈이의 눈길은 그냥 복도로 가 있다. 채빈이는 집중력이 매우 약한 것 같다. 저러다가는 제일 늦게 집에 돌아갈 게 뻔하다. 밖에서 기다리는 중일이가 학원 시간에 늦을 듯하다.

급한 마음은 택수도 마찬가지다. 학원시간이 이미 늦었다면서 자꾸 섣불리 도전을 외친다. 번번이 통과하지 못하면서...

예준이는 급하지도 느리지도 않다. 묵묵히 클래스 카드의 단어 연습과 매칭 게임 등으로 어휘를 익히고 있다.

민아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아직 와이파이를 열지도 못하고 있다. 어디서 잘못했는지 IP 내역을 보라는 멘트가 나온다. 민아의 폰은 와이파이로 열리지 않을 것 같다. 민아는 학력도 제일 낮을 것 같은데 와이파이 여는 단계도 제일 늦다. 아, 안타까운 민아... 그래도 민아의 장점은 서두르지 않고 하염없이 와이파이 여는 과정을 계속 시도하고 있다. 클래스 카드 앱에 언제 진입할 수 있을지.

상우는 아예 맨 뒷자리에 앉았다. 상우는 수업이 다 끝나가도 도전을 하지 않는다. 상우는 완벽주의인가 보다.

"상우야, 좀 틀려도 돼. 일단 시도해보고 모르는 것 있으면 다시 시도하면 되지. 완벽하게 끝내려고 하면 네가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을 것 같아."

내가 그렇게 말해도 상우는 부지런히 클래스 카드 앱으로 부지런히 학습 중이다.


잖아도 진도가 제일 느린 민아에게는 일이 생겼다. 마시멜로우 수업이 있던 날, 민아네 학급비로 피자 파티가 열렸다고 한다. 마시멜로우 첫 수업이 끝나고 교실에 가보니 교실에는 피자 냄새만 나고 민아 몫의 피자는 아무리 찾아봐도 없었다.

민아의 눈에 눈물이 글썽거린다. 도대체 누가 민아의 피자를 먹었을까?

담임께 연락을 해보니, 한 학생에게 민아의 것을 챙겨두라고 했는데 마지막에 청소하는 학생들이 쓰레기인 줄 알고 버린 것 같다고 한다.

"학급에서 피자 파티하면 피자 먼저 먹고 수업하러 오지? 민아야."

- 수업에 늦으면 안 되잖아요?


맞다. 민아의 말이 맞다. 설령 맛있는 피자가 눈앞에 있더라도 그것 때문에 마시멜로우 수업에 늦으면 안 된다. 마시멜로우 수업은 달콤하지는 않지만 중요한 것이다. 적어도 민아에게는.


'민아야, 너, 멋지다.'

[계속]

[메인 사진: 픽사 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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