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a향기와 찬양Lim May 03. 2024

그 '흔한' 호야가 '희귀한' 꽃을 피우다니

- 꽃 이야기를 들려 드릴게요

[호야와 군자란]

아들*이 기거하는 방 앞 베란다는 작은 정원이다. 원래 화단이었는데 지저분하여 흙을 파내고 허드레 짐을 넣어두는 창고로 만들었다. 그 위에 송판으로 덮는 대대적인 공사를 했다. 판자 마루 위에 화분을 가지런히 올렸다. 군자란과 호야 화분을 두었다. 아들이 고개를 돌렸을 때 순간이라도 꽃을 보라는 심산이었다. 아들을 돌보는 활보샘들도 꽃을 보며 힐링하기를 바라는 맘이었다. 군자란과 호야를 제외한 다른 화분은 거실 베란다에 두었다. 




언젠가부터 나는 꽃에 관심이 생겼다. '반려식물'이라는 말이 있다. 꽃과 친해지니 그 말이 이해가 된다. 꽃을 가꾸는 중에 힐링을 적잖이 받고 있다. 그 이야기를 <어쩌다 '꽃집사'>라는 브런치 글로 발행한 적이 있다. 


https://brunch.co.kr/@mrschas/246




[금전수와 안스리움]

지난해 겨울에 세컨 하우스에서 키우던 식물을 동사시키고 말았다. 지인이 세컨 하우스 입주 기념으로 사 왔던 화분이었다. 금전수와 안스리움이었다. 

[금전수와 안스리움]

가을쯤 되니 그 식물들이 훌쩍 자라 있었다. 그 화분을 실내에 두기에는 거추장스러웠다. 그래서 '전실'*에 내다 놓았다. 거기 두고 들면날면하면서 보니 좋았다. 그곳이 딱인 듯했다. 그런데 지난해 갑작스러운 한파가 몰려왔다. 어느 날 전실에 내놨던 금전수와 안스리움이 뭔가에 한 방 맞은 듯했다. 그래도 잠시겠거니 했다. 별일 아닌 줄 알았다. 



[긴기아난]

한편, 긴기아난은 세컨 하우스의 큰 방 베란다에 두었다. 그곳은 오전에 햇살이 비치는 곳이다. 긴기아난 향이 끝내 준다며 지인이 보내준 것이었다. 집으로 오자마자 그 꽃은 낙화가 진행됐다. 그렇게 좋다던 향도 제대로 맡지 못했다. 아쉬웠다. 그래도 해가 바뀌면 다시 꽃이 피겠지,라는 미미한 희망을 품고 있었다. 엄동설한에 한 번씩 물을 주며 무심한 척, 그러나 관심은 놓지 않으면서 긴기아난을 키웠다.



[꽃의 죽음]

겨울 끝자락에 결국 금전수와 안스리움은 버릴 수밖에 없었다. 식물이 얼어 죽었다. 그토록 야들하고 어여뻤던 식물을 의도치 않게 죽이고 만 셈이다.


그즈음에 남편은 <꼬마 어사, 쿵도령>이라는 만화를 자주 보곤 했다. 내가 전형적으로 싫어하는 타입의 애니메이션이었다. 그러나 남편은 틈이 날 때마다 그걸 켜놓고 보고 있었다. 남자들이 때론 아이 같다는 말이 맞았다. 그런 남편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쿵도령의 고함소리가 환청으로 들렸다.


"꽃집사, 네 죄를 알렸다."

'헉, 저 쿵도령이 금전수와 안스리움의 죽음을 지켜봤단 말인가?'


쿵도령이 탐관오리를 혼내는 엄한 호령 소리를 하도 들었더니 그런 환청이 들렸다.




요즘은 반려견이 죽으면 화장터에 가서 장례 절차를 치른다는 말을 들었다. 비용도 만만치 않다고 했다. 그렇다면 반려식물도 그런 절차를 거쳐야 하는 시대가 오려나? 하여튼 나는 죽은 금전수와 안스리움을 화분에서 뽑아냈다. 금전수 뿌리는 감자 모양이었다. 금전수 화분에서 얼어 죽은 수많은 알뿌리가 나왔다. 그것을 종량제 봉투에 버리지 말고 산속에 가서 묻어주며 울어야 하나? 반려식물 장례를 치러야 하나? 혼자 잠시 고민했다.


'헤이, 쿵도령, 내가 식물을 죽이기만 하는 사람으로 아느냐?'


나는 쿵도령에게 중얼거리며 말했다. 알고 보면 나는 죽어가는 꽃을 살린 적이 꽤 있다.



[군자란]

아들이 지내는 본가의 베란다에 있는 군자란 화분이 처음에는 하나였다. 그런데 해가 더할수록 군자란이 쑥쑥 자라 종내는 화분이 깨질 판이었다. 어느 날, 군자란 화분을 분갈이했다. 무척 힘든 작업이었다. 군자란 뿌리는 실타래처럼 얽힐 대로 얽혀 있었다. 뿌리가 서로 엉켜 절대로 떨어지지 않겠다고 몸부림치는 듯했다. 뿌리가 흙을 다 먹어 치웠는지 화분 속에는 흙이 한 톨도 없었다. 그것을 5개의 화분에 나누어 분갈이를 했다. 여러 개의 화분에서 순서대로 꽃이 피었다. 뾰족이 꽃대가 올라오는가 싶으면 예쁘고 고고한 군자란 꽃이 화들짝 웃었다. 아들의 동공에 해마다 피어났던 군자란의 웃음이 각인되었을 것이다.



[긴기아난]

긴기아난이 마침내 이른 봄에 꽃망울을 맺기 시작했다. 그때의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어이, 긴기아난! 대단한데. 너 기어이 살아냈구나. 겨울을 이겨냈구나. 올 겨울에는 내가 안고 지내더라도 너를 꼭 실내에 둘게. 바깥 추운 곳에 두지 않을게."


나는 긴기아난에게 진심으로 사과했다. 긴기아난은 내 맘을 알기나 한 듯이 화려한 꽃을 피웠다. 온 집안에 긴기아난 향이 가득한 봄을 보냈다.


[본가, 아들의 방 베란다에서 꽃핀 군자란/ 세컨 하우스 큰 방 베란다에서 겨울을 이겨내고 꽃을 피운 긴기아난]




[다시 살아나 꽃을 피운 꽃기린]

[꽃기린]

또 한 번 꽃을 살려냈다고 쿵도령에게 자랑하고 싶은 심정이다. 


나는 꽃가지를 꺾어 물꽂이를 하곤 한다. 로즈 허브, 꽃기린, 호야 등등... 내가 물꽂이 하여 키우던 꽃기린을 딸내미에게 준 적이 있다.


"집안에 꽃이 있으면 한결 기분이 좋아. 반려식물이란 말도 있잖아."

"나, 꽃 같은 거 못 챙기는데, 그래도 가져갈게요."


어느 날, 딸내미네 집에 갔더니 꽃기린 물꽂이 병에 물이 한 방울도 없었다. 바싹 말라 있었다. 꽃기린 가지는 말라비틀어져 있었다. 안쓰러웠다. 그것을 1회용 컵에 잘 담아서 챙겨 왔다. 집에 오자마자 산삼 다루듯 꽃기린 가지를 꺼내어 물에 꽂았다. 그 꽃기린은 죽은 것이 아니었다. 생명이 남아 있었다. 생명은 눈에 보이진 않지만 위대하고 숭고한 것이다. 꽃기린 잎사귀에 서서히 생기가 돌아왔다. 그렇게 달포 정도 지났다. 다시 촉촉해진 꽃기린을 예쁜 화분에 옮겨 심었다. 꽃기린이 뿌리내리기를 잘했는지 며칠 전에 예쁜 꽃이 피기 시작했다. 앙증맞은 꽃기린 꽃이 피었다. 아무 데서나 볼 수 있는 그런 꽃이 아니다. 죽었다가 살아난 꽃이다.


꽃집에 가면 꽃이 무수히 많다. 그러나 내가 기른 식물에서 보는 꽃은 또 다른 느낌이다. 게다가 다 죽어가던 식물이 되살아나서 피우는 꽃을 보면 감동이 배가 된다.  


12년째 병상을 지키는 아들 생각이 났다. 말라비틀어져가던 꽃기린이 살아나는 것은 내게 의미심장한 메시지였다. 아들도 우주보다 귀한 생명을 품고 누워 있다. 생명은 보이지 않지만 그 가치는 우주보다 귀한 것이다.



[호야]

어느 해 가을, 학교 축제 때 미니 화분을 나눠준 적이 있다.

그때 호야를 받았다. 그럭저럭 자랐다. 1회용 화분에 있던 호야를 아주 큰 화분에다 분갈이하여 심었다. 마땅한 화분이 없어서 어울리지 않게 큰 화분에 옮겨 심었던 것 같다. 큰 화분에 심긴 호야와는 쑥쑥 자랐다. 어느 날이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꽃봉오리가 송알송알 맺혔다. 호야꽃이 있다는 소리도 들어보지 못했다.


 호야는 한 해에 몇 번씩 꽃이 핀다. 한 번 핀 꽃은 꽤 오래간다. 그 꽃은 너무 앙증스럽고 예뻐서 조화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내가 키운 꽃이 세상에서 제일 예쁜 꽃 같다. 다른 사람이 차려주는 밥상이 제일 맛있다는  말과 얼핏 상통한다.

[호야꽃 봉오리/ 커다란 화분에 심기운 호야꽃/ 다양한 각도에서 찍은 호야꽃]




[아보카도]

[아보카도]

아들이 지내는 본가의 베란다는 빛이 좋아 꽃이 잘 자란다. 그래서 활보샘들은 비실비실한 꽃을 가져다 두기도 한다. 그렇게 하면 그 꽃이 생기가 돌고 다시 살아난다. 


아보카도 씨를 심으면 싹이 난단다. 키우던 아보카도가 시들해진다며 우리 베란다에 가져다 둔 활보샘이 있다. 그런데 그 아보카도가 옆에 있는 다른 꽃들한테 기운을 받았는지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다. 지금은 여릿하고 시원찮아 보이지만 어느 날 우리 베란다에서 아보카도 열매를 따먹게 될지도 모른다.



[꽃집사의 독백]

식물을 일단 커다란 화분에 심으면 그 식물은 당당해지고 뿌리가 든든해진다. 그 흔한 호야를 처음 받아 온 그대로 미니 화분에 두었더라면 진작에 죽었을 것이다. 큰 화분에 심었더니 좀처럼 보기 드문 호야꽃을 피웠다. 호야 화분이 몇 개 더 있긴 하다. 그런데 작은 화분에 있는 다른 호야는 잘 자라지 않고 꽃도 피지 않는다. 


사람도 그렇다고 본다. 든든한 뿌리가 있으면 당당해질 수 있으리라. 마치 식물이 커다란 화분에서 뿌리를 든든히 내리고 화려하게 꽃을 피우듯이...


또한 적절한 햇빛과 공기도 한 몫한다. 우리는 틈나는 대로 환기를 한다. 그것이 죽어가던 꽃도 되살아나게 한 것 같다. 공기는 보이지는 않지만 생명을 살리는 원동력이다. 결국 꽃이 자라는 환경이라면 사람에게도 좋다는 의미다.


나도 호야꽃처럼
뿌리를  깊이 내리고 싶다.
예쁜 꽃을 피우고
향도 내고 싶다.

* 내 아들은 12년 전에 자전거 사고를 당하여 의식을 잃었다. 6년간 병원 생활을 했고 지금은 6년째 재택 케어 중이다.

*전실: 현관 앞에 추가로 있는 공간을 뜻하는 말로 아파트 세대 간 소음 방지와 프라이버시 확보를 위한 목적으로 만든 곳이다(출처:구글 검색)

#호야꽃  #긴기아난  #안스리움  #꽃기린  #아보카도   #군자란  #쿵도령  #금전수  # 반려식물

매거진의 이전글 '애비'를 불렀던 가수 '린'(feat. 한일가왕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