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교사들이 우리 학교에서 근무하고 싶어 한다. 학교를 이동할 때필요한내신 점수를 산출하면 아무래도고경력자들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다.그래서나이 든 교사가 몰리는 우리 학교에서는 퇴임식이 매 학기마다 있다. 우리 학교를 '퇴임교'라고 우스갯소리로 일컫는 분들도 있다. 올해만 해도 정년 퇴임3명, 명예 퇴임5명, 총 8명이 우리 학교에서 퇴임을 맞았다.
지난해 8월에, 나는 이미 정년퇴임을 했다.
그런데 바로 이어서 내가 맡았던 자리에서 6개월 동안기간제로 더근무했다. 그리고 이제는 마침내 정든 학교에서 물러나야 했다.
퇴임하는 분들에 앞서,다른 학교로 이동하거나 학교를 떠나는 분들이한분씩 송별 인사를했다.그날 나는 퇴임자가 아닌 기간제 교사 자격으로 송별회에 참석했다.
가장 먼저 인사했던 선생님이 눈물을 글썽거리기 시작했다.
"제가 'F'라 감정을 추스리기 어렵네요. 죄송합니다."
이어서 다른 분도,
"우리 학교가 좋은 학교인게 맞네요. 다른 학교에서 이동할 때와 달리 너무 섭섭하네요."라고 울먹였다.
그다음은 내차례였다. 그 누구보다 내가 가장 서운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더러는 다른 학교로, 다시 기간제로, 시간 강사로 학교라는 곳에 여전히 남아 있게 되지만 나는학교에서아예 떠나기 때문이다.
나도 F가 있는 사람이다. MBTI를 검사하면 나는 ESTJ/ESFJ/ENFJ... 아무튼 나도 F가 있다.눈물샘이 터질 것만 같았다. 스스로 감정을 꾹꾹억눌렀다.
"8월에 퇴임식을했는데한 학기 더 근무하고 떠나니 연착륙이네요. 그래서 그나마 좀 낫네요."
라고 간단하게 말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자칫하면 엉엉 울 것 같았다. 몸속이 온통 눈물로 가득 찬 듯했다. 건드리기만 하면 금방 눈물이 쏟아질 판이었다.
이어서 명예 퇴임, 정년 퇴임하는 분들의 고별 멘트가 이어졌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라는 시가 있죠? 보세요. 제 뒷모습이 참 아름답죠?"라며 K샘이 뒤돌아서서 자신의 뒤통수를 가리켰다.
그 선생님의 위트넘치는 인사말에 눈물을 글썽거리던 선생님들까지 빵 터졌다.
"그리고 저를 명예 퇴임하도록 일조해준 우리 반 몇몇 녀석들에게 이 시간을 빌어 감사한 맘을 전합니다."
K샘은 농담을 섞은 송별 인사로 모두에게 큰 웃음을 선사했다. 그런 날에 감정 조절을 잘하며 멋진 송별사를 하는K샘이 대단해 보였다.말주변이 없는 나는그런 K샘이 참 부러웠다.
보통 우리가 송별회를 하는 뷔페는 3~4개의 학교가 각각 홀을 빌려같은 날에 진행한다. 그 뷔페 업체에서는 그렇게 하는 것이 이득인 모양이었다.
그러다 보니 한쪽에서는 큰 소리로 가곡을 부르는 홀이 있는가 하면 잠시 우리 홀에 와서 지인에게 안부 인사를 하는 분도 있다. 진풍경이었다.
몇몇 선생님께 정성스러운 선물을 전달받았다. 평소에 서로 바빠서 얼굴만 알고 지냈던 분들이 맘을 담은 선물을 건넸다. 헤어질 때가 되니숨겨두었던 속정을 보여주는 분들이었다. 그런 분들의 인성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그중에 한 분은 여자 체육 선생님이다. 평소에 대화도 제대로 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손뜨개질로 만든 목도리와 앙증스럽게 쓴 손 편지를 살며시 전해왔다. 그분은 편지를 쓰는 내내 배웅의 마음이 절절했을것 같았다.
그 편지에,
나 때문에 힘을 얻는 계기가 있었다고 적혀있었다. 내가 뭘 했을까? 그렇다면 내가 좀 괜찮은 사람이었을까? 아니야, 내가 복이 많아 이렇게 좋은 분을 만난 것이겠지... 만감이 교차했다. 이 정성스러운 편지를 읽는 동안에 나의 자존감이 나도 모르게 올라갔다.
앞으로 내가 사회에 나가서 이런 분을 또 어디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맘이헛헛해졌다.
떠나는 우리는 꽃다발 하나씩을 받았다. 칙칙한 겨울 끄트머리에 받은 프리지어 한 묶음은 심심한 위로가 되었다. 거실 장에 꽂아 두고 날마다 그 꽃을 보고 있다.
송별식이 거의 끝나갈 무렵에 교장 선생님이 조용히 내 옆으로 다가오셨다.
교장 선생님은 나의 두 손을 꼭 잡고 도무지 놓지 않으셨다. 마주 잡은 손에 온 맘을 다 담으신 듯했다. 아주 오래오래 내 손을 잡아 주셨다. 교장선생님 속에 있는 모든 맘을 내게로 전달하는 것 같았다. 그토록 따사롭게 손을 잡아 주는 분은 평생 처음이었다.
"그동안 참 고마웠어요."
"제가 뭘 한 게 있나요?"
"늘 따뜻한 언니 같았어요."
"교장샘, 사람 볼 줄 잘 모르시네. 저 따뜻한 사람이 아닌데요."
"말씀 안 하셔도 다 알아요."
교장선생님은 내가 학교를 떠나는 것도 섭섭하셨겠지만 중증환자인 내 아들 때문에 맘이 많이 아프신 모양이었다.
"교장샘, 걱정 마세요, 제가 퇴임 후에 할 일이 있어요."
"그래요?"
"네에, 제가 자리를 잡으면 꼭 말씀드릴게요. 나름의계획이 있어요."
"아, 그래요? 참 잘 됐네요."
교장 선생님의 손은 작고도 보드라웠다. 그렇게 여릿하고 여성여성 하신 분이 큰 학교 살림을 어떻게 척척 잘 해내시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