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방길에 흩날리던 벚꽃은 제철보다 일찍 내 맘속에 활짝 폈다. 뚝방길 근처에 있던 학교에는 꽃처럼 아름다운 학생들이 있었다. 학생들이 벌써 그립다. 만나면 비타민처럼 톡 쏘는 미소로 인사하던 학생들... 그들은 내가 없어도 그 웃음 그대로 흩날리며 새 학년 새 학기를 맞이하고 있으리라. 모두들 정신없겠지. 예년 같았으면 나도 이맘때쯤에 무척 바빴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평일인데도 출근하지 않고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다.
학교 옆 '꽃마루'는 사시사철 손짓을 해댔다.
그러나 앞으로는 그곳에 가 볼 용기가 나지 않는다. 누군가를 마주칠 것 같아서... 어떻게 그 학생들을 멀거니 마주 할 수 있겠는가?
꽃마루는 그랬다.
봄에는 유채꽃 향이 교실 안으로 풍겨 들어왔다.
가을에는 코스모스보다 인파가 더 많았던 곳이다. '사람 반, 꽃 반'이었다. 꽃마루 앞 칼국수 집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겨울에 하얀 눈이 꽃마루에 내려앉으면 그곳은 설국이 되곤 했다. 그 아름다웠던 꽃마루를 이제 쉽게 가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정들었던(7년 근무) 학교의 뜨락이기 때문이다. 그리움 속에 담아두기만 해야 할 곳이 되어버렸다. 학교를 떠나면서 정답던 뚝방길과 어여쁜 꽃마루도 잃은 셈이다.
서운한 마음에 '고향의 봄'에 맞추어 노랫말을 지어보았다.
나의 정든 학교는
꽃피는 마루
코스모스 유채꽃
벚꽃 개나리
사랑스러운 학생들이
뛰놀던 교정
그 속에서 지냈던 때가
그립습니다.
교내 곳곳도 참 아름다웠다. 꽃마루와 뚝방길을 배경으로 한 학교는 늘 정겨웠다.
[꽃마루/ 과학관 옆 데크에 핀 장미/ 학교 전경]
[뚝방길 / 학교 담장]
[뚝방길]
나는 학교를 영영 떠날 결심을 했다.
이제는 학교에서 물러가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다시 교단에 선다면 이전처럼 학생들을 품을 자신이 없다. 그게 가장 큰 이유다. 그리고 학생들과 나와의 세대 차이를 인정해야만 할 때가 됐다.
"선생님, 급하게 연락하면 와 주실 거죠?"
교감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는 이유를 나는 잘 안다. 어떤 교사가 갑자기 병가를 내거나 급한 일이 생기면 초 스피드로 강사를 구해야 한다는 것을... 학교의 입장에서는 이미 알고 있는 강사를 구하는 것이 최상이다. 그래서 교감 선생님이 넌지시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감사한 일이지만,
"아뇨, 아뇨. 제게는 연락하지 마세요. 저는 학교를 떠날 결심을 했답니다."
"아, 그러세요? 그러시구나."
교감 선생님은 내가 단단히 결심했다는 것을 아시는 눈치였다.
사실 나와 같은 날, 정년 혹은 명예 퇴임을 한 동료들은 대부분 학교로 돌아갔다. 기간제나 강사로 근무하려고... 나도 맘만 먹으면 학교로 돌아갈 수 있다.
그러나 잘 알고 있는 시처럼, 가야 할 때를 알아 제 때에 떠나는 아름다운 뒷모습이고 싶었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알고
떠나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제는 내가 학교를 떠나야 할 때인 것 같다.
그런데 올해부터<늘봄 교실>이란 것이 생겨 또 나를 유혹했다. 집 앞에 있는 초등학교에서 그 일을 한 번 해볼까나? 교사 자격증이 아깝잖아... 이런 생각에 몇 번 갈등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인근 학교 홈페이지를 둘러봤더니, 돌봄, 방과후 교실 등의 강사를 구하고 있었다.
집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청소년 수련관이 있다. 강좌 중에 영어 관련인 것도 있었다. 그런 일도 할 수 있겠다고 잠시 생각해 본 적도 있다.
"과외를 하세요. 그게 젤 나아요."
어떤 이는 과외를 하란다. 과외를 한다면 내신 성적을 단시간에 올려줄 자신도 있다. 그러나 그것도 신경이 많이 쓰일 것 같았다.
결론은 일단 학교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학생과는 굿바이를 하기로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학교를 영영 떠날 결심을 했다. 아쉬움은 남아 있지만...
그래서 노트북을 포맷했다.
코로나 팬데믹 때, 원격 수업을 해야만 했다. 그래서 모든 교사에게 노트북이 하나씩 지급되었다. 한 때 잘 사용하긴 했으나 이젠 무용지물이 됐다. 간간이 방학 때 긴급 업무 처리용으로 사용했다. 이제는 거기 있는 모든 자료를 미련 없이 삭제해야 했다.
노트북에 있던 모든 자료를 USB에 담기도 하고 집에 있던 일체형 컴퓨터로 이관했다. 노트북의 다운로드 기록이며 업무와 관련된 것은 모두 삭제했다. '내PC'의 문서에 저장된 자료도 모두 옮겼다. 그토록 소중했던 자료들이 <DELETE> 버튼을 한 번만 클릭하는 순간에 다 사라졌다. 그때의 기분이 참 묘했다.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도, 살아왔던 흔적을 이 노트북의 자료를 삭제하듯이 깨끗하게 정리하고 떠날 수 있을까?
학교 교무실의 컴퓨터도 깨끗하게 정리했다. 교무실에서내가 사용했던컴퓨터의 사용자 이름을 없애고 비번도 풀었다. 영어과 자료를 모두 폴더에 담아 동료 교사에게 넘겼다. 내게는 무척 중요한 것이었는데 이제는 더 이상 필요치 않다. 마치 화폐 개혁을 당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지극히 소중했던 것이 아무짝에도 쓸모없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 자료를 전달받은 동료에게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업무 관련 자료는 분류하여 컴퓨터의 바탕 화면에 폴더로 정리해 두었다. 연수/ 홍보/ 교원 평가 등등으로...
신발장 정리도 했다.
학교 중앙 현관을 들어서면 좌우에 칸칸이 교사용 신발장이 있다. 신발장에는 이름이 적혀있다. 내 이름은 7년간 그 자리에 있었다. 내 신발장에는 정작 신발은 없었다. 대신에 선글라스, 선캡, 축구화가 들어 있었다.
잠시 공강 시간에 산책을 할 때면 신발장에서 선글라스와 선캡을 꺼내곤 했다. 나는 한 때, 사제 축구 대회의 멤버였다. 환갑이 넘은 여교사가 홍일점으로 축구를 했던 것은 내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그래서 남달리 축구화를 신발장에 보관해 두고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