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겨울 방학 때, 일요일 오후마다, '1박 2일' 여행을 떠났다. 우리 부부의 삶에 창을 열어주는 듯한 일이 생겼다. 10년간은 아들의 간병으로 짬이 나지 않았다. 아들이, 활동 보조사들의 도움을 받게 되었다. 일, 월요일 이틀간은, 오후에 3시간 동안 두 명의 활동 보조사가 동시에 근무하는 때라서, 아들의 재활운동을 위해서 휠체어에 싣고 내리는 일의 전담이었던 남편의 손길이 필요치 않았다. 아들의 곁을 잠시 떠나도 되었다. 이 평범한 여유로움이 우리에게는 숨통을 틔우게 하는 큰 힐링의 시간이었다. 우리는 마치 금광을 발견한 자들만큼이나 신이 났다. 남편과 함께 동네 주변 산책로를 걸었다. 추운 겨울이었는데도 훈훈했다.
"이럴 게 아니라 매주 1박 2일 여행을 떠나세. 모든 것에는 다 때가 있는 법이야"
어딘가로 훌훌 떠나고 싶어 하는 남편의 마음이 이해가 됐다. 그렇게 말하는 남편이 그동안 얼마나 숨이 막히고 답답했을지 짐작이 갔다. 간병에다 코로나 때문에 갇혀 지내게 되니 그야말로 숨이 막혀서 질식할 것만 같았다.
젊을 때는 돈 걱정으로, 나이 들어서는 다리에 힘이 없어서 못 떠나는 게 여행이다. 그나마 이만할 때 틈나는 대로 여행을 가자는 게 남편의 주장이었다. 중학교 교사인 나는 오히려 방학 동안에 아무 데도 안 가고 뒹굴뒹굴 쉬고 싶지만 남편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일상을 벗어나니 숨겨져 있는 감성과 문학성이 슬며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글을 쓴다는 것을 잊고 살았는데 느낌이 솟는 대로 1일 1작의 시나 글을 썼었다.
그즈음에 '내일은 국민가수'라는 오디션 프로가 한창이었다. TV만 켜면 그들이 보였다. 그중에 '이솔로몬' 가수에 대한 이력을 우연찮게 알게 되었다. 산문집을 한 권 낸 작가였다. 별다르게 산문에 관심이 있지는 않았는데 그 가수의 산문집을 읽어보고 싶었다. 전자책이었다. 그 책을 사서 단숨에 서너 번 들었다.(전자책은 글을 읽기보다는 이어폰을 끼고 듣는 것이 제격이었다.) 그렇게 하고 났더니 글쓰기가 뭔지 알 듯했다.
사진처럼 사물을 찍어서 독자에게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사물에 대해 인식하고 그것을 작가의 시선으로 깊이 들여다본 후에 작가만이 느꼈던 관념들을 넌지시 독자에게 던져주는 것이라는 걸 처음으로 깨달았다. 맞는지 모르겠으나... 나의 글은 신문기사처럼 사실을 전달하는 데 급급했던 것 같다. 그런 것은 뉴스를 보면 될 일이었다. 나도 이제는 글을 써야겠다는 맘이 들었다. 고고학자들이 귀중한 역사적 보물들을 붓으로 조심스레 먼지를 털며 살펴보듯 나의 시선도 조심스럽게 현상을 보는 연습을 하기로 했다.
잘난 조카, 통·번역사
[2022년 1월 말, 조카와의 대화]
여동생의 딸, 내 조카에게는 한국땅이 좁을 것이다. 조카는 지방 특성화고를 나왔으나 영어에 대해서는 남다른 재능이 있었다. 신학교 영어과에 입학하는가 싶더니 K대학 통·번역학과에 편입했다. 마침내는 E여대 대학원까지 쭉쭉 가는 게 아닌가? 그러더니 순수 국내파인데 평창 올림픽 대회 때 전문 통역사로 떡하니 뽑혔다. 간간이 조카와 서로 카톡을 주고받는다. 어느 날, '브런치'라는 말을 꺼냈다. 나는 '브런치'라는 것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없었다. 역시 잘난 조카다. 그게 뭐냐고 물어봤더니 블로그의 일종이라며 몇 개의 링크를 보내왔다. 그리고 이모가 브런치 작가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내가 써둔 몇 개의 글을 보냈더니 깨알 같은 리뷰를 보내왔다. 이모는 브런치에 적격자라고 했다. 검색을 해보니 브런치는 접근성이 좋고 간편하게 글을 읽고 싶은 자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좋은 매개체인 것 같았다. 내게는 글 무대가 될 듯했다. 가수 이솔로몬 같은 자들은 노래의 무대가 그리워서 어려운 오디션 과정을 통과하는데 나도 한 번 브런치라는 것에 문을 두드려 봐야겠다고 맘을 먹었다. 당장에, 소소한 일상의 감상을 적은 몇 개의 글을 준비하여 도전했다. 한 시간 만에 불합격의 메일이 왔다. 충격이었다. 브런치 등단은?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만만한 것도 아닌 듯했다. 갑자기 오기가 생겼다.
'될 때까지 해보자.'
라고 생각하고 두 번째 도전을 했다. 당연히 될 줄 알았다. 생때같은 아들이 하루아침에 전적 무능자가 되어 10년간 무의식으로 지내고 있는 이 기막힌 이야기는 그냥 합격일 거라고 생각했다. 아들이 투병하는 동안에 있었던 이야기들이 산더미 같이 많으니 이보다 더 좋은 글 소재가 어디 있겠나 싶었다. 그러나 또 고배였다. 2022년도의 버킷 리스트를 '브런치 등단'으로 하고 세 번째 도전을 했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물었다.
'왜 도전을 하는가?'
'등단하면 돈이 생겨? 밥이 나와?'
삶을 일단 한 번 정리하고 싶었다. 어떤 발자국을 남기고 살아왔는지 돌아보고 싶었다. 그리고 글을 통하여 사람들과 만나고 싶었다. 특별한 과정을 거치고 영어교사로 임용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게 먹혔을까? 글 솜씨가 좀 늘었을까? 아니면 자꾸 도전하니까 합격을 시켜준 것일까? 뭐라도 괜찮다. 일단 나는 등단이 되었다. 글을 쓸 수 있는 기본이 되었다고 공적으로 인정을 받은 것이다. 이제 누가 뭐라 하겠는가? 그 무대에서 내 글들을 틈나는 대로 발행해 나가면 될 일이었다. 어? 그런데 나의 세대들은 일단 '브런치'를 몰랐다. 앱을 깔아야 하고 접근하기도 쉽지 않은 분들이 대분분이었다. 꽤 많은 분들이 내 글을 읽기 위해서 어려운 관문을 통과하여 브런치 마당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그래서 나의 구독자는 작가가 아닌 나의 글을 읽기 위해서 난생처음 브런치 앱에 와보신 분들이다. 그래서 그분들은 프로필에는 '작가 소개' 탭이 없다.
리뷰 해주는 문학 박사님
나도 나를 믿을 수가 없었다. 내가 잘 쓰고 있는 것인지? 문학적으로 작품성은 있는 것인지? 그렇게 내가 스스로 내 글에 대하여 의기소침해진다는 푸념을 전해 들은 지인이 있다.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그분은 내 브런치의 '구독자'다. 그분마저도 "브런치"를 몰랐단다. 그분은 문학 박사이며 출간도 여러 차례 했던 분이다. 내가 글이 발행될 때마다 어김없이 그 글을 읽고 '라이킷'을 눌렀다. 발행된 내 글을 '브런치북'으로 묶어서 작품으로 발행하니 또다시 읽고 있다고 한다. 읽은 글에 대한 리뷰를 메신저로 보내오니 참 감사했다. 그분이 쉬지 않고 응원의 박수를 보내온다.
글쟁이 수준 이상이니, 그건 염려하지 않으셔도 될 듯합니다.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아도, 선생님은 그 이상이니, 그것도 염려 놓으셔도 될 듯합니다. 떠오르는 글감을 가지고 일필휘지 써 내려가는 선생님의 글은 충분히 공감됩니다. 글에 힘과 진실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힘내시고 쓸 수 있을 때, 힘껏 쓰세요. 응원합니다.
구독자, NO.46
[파릇한 새순]
일주일에 1~2편의 글을 발행하고 있다. 한 선배는 바쁜 일상 가운데 그건 너무 무리한 것이니 텀을 조금씩 두면서 글을 쓰라며 애정 담긴 잔소리를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등단 두 달 만에 34편의 글을 써냈으니 내 머릿속이 많이 가벼워진 느낌이다. 불타는 남녀 간의 사랑도 세월이 지나면 시들한 것처럼 나의 글쓰기 활동도 점점 횟수가 줄어 들 줄은 알고 있다. 그러나 물들어 올 때 노 젓는다는 말처럼 쏟아 내고 싶을 때 맘껏 글을 쓰고 싶다. 시들해지면 쉬어가더라도 지금은 아무래도 글을 써야 할 때인 것 같다. 살아보니 모든 게 다 한 때였다.
'라이킷'(일명, '좋아요')을 눌러주는 분들의 프로필을 한번 후루룩 보게 된다. 첫 번째 글부터 빼놓지 않고 라이킷을 누르는 사람들은 어떻게 내 글이 발행되는 순간을 캐치하는지 궁금하다. 그분들 중에는 2800명 정도의 구독자를 가진 분도 있다. 프로급 브런치 작가들이었다. 왜 누르는지? 혹시 '좋아해 주기'라는 암암리의 풍토가 있는 것인지? 나는 이제 막 글쟁이가 된 풋내기라서 다른 사람들의 글에 '라이킷'을 눌러보지 않았다. 돈이 드는 것도 아닌데 그거 하나 누르는 것도 맘이 쉽지 않았다. 그런데 '뉴스포털 1 기자'분이 '구독하기'를 눌러 주셨다. '라이킷'과 '구독하기'는 전해져 오는 마음의 농도가 사뭇 달랐다.
그런데 "팔찌가 사라졌다"라는 내 글에 라이킷을 누르신 분의 프로필을 보니, KBS 드라마 PD라고 소개되어 있다. 재빨리 검색해보니 연출한 작품이 한두 편이 아니었다. 그분의 글을 한 편 읽었다. 팔에 있는 솜털이 살며시 일어섰다. 미세하게 온 몸에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감동이란 이런 것이고 좋은 글이란 이런 거구나. 참 기가 막히게 글을 잘 쓰는구나. 잠시 동안 글이 주는 매력에 빠졌다. 가수 이솔로몬의 글을 읽을 때와 또 다른 묘미가 있었다. 자기를 다 드러낸 인간미, 텐션, 드라마틱한 구성 등이 흥미진진했다. 바닥까지 체험하면서 마음의 고통 등을 글로 잘 승화해나가신 듯했다. 깊은 동굴에서 빛을 향해 빠져나가는 탈출자의 모습 같았다. 그래서 그 값비싼? '라이킷'을 하나 눌러 드렸다. 그리고 난생처음으로 브런치에 댓글을 달았다.
[빛이 들어오다]
- 저는 이제 브런치 등단 50일 된 풋내기 글쟁이입니다. 그래도 조금씩 글을 구성하고 글을 쓰는 재미를 '취미'로 삼고 있어서 요즘 신이 납니다. 아참, 작가님의 글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사건을 전달할 게 아니라 마음을 전달하면 좋은 글이 된다는 것이었어요 ㅎㅎ
어? 댓글에 답장이 왔다.
- 저번 글도 뵈니까 필력이 굉장히 좋으신 것 같은데 브런치에 인재가 오신 것 같아서 제가 다 기쁘네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그러더니 '구독하기'를 누르시는 게 아닌가? 나의 46번째 구독자는, 필명 "초이스"다. 그분의 성함은 최윤석 님. 그는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및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KBS 드라마 사업국 드라마 PD 공채 35기로 입사했다. KBS 대하드라마 [전우] [대왕의 꿈] [정도전]을 조연출 했으며, TV 소설 [일편단심 민들레] [내 마음의 꽃비] 프로듀서로 일했다. KBS 수목 미니시리즈 [어셈블리] [김과장], 드라마 스페셜 [즐거운 나의 집] [당신은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다]를 연출했다. <출처: 알라딘>
또 '초이스' 작가님의 글을 한 편 더 읽었다.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혼잣말처럼 댓글을 달았다.
- 주위를 둘러보니 온통 글감이네요. 한낱 사금파리 마저 ㅎㅎㅎ열심히 쓰다 보면 작가님의 경지 흉내라도 낼 테죠 ㅋㅋㅋ 글로 선한 영향력의 날갯짓이라도 한다면 브런치 등단 값은 하겠죠.
어라? 또 답장이 왔다.
- 작가님이 저보다 훨씬 잘 쓰시던데요.^^ 앞으로도 작가님의 선한 영향력으로 많은 분들에게 날갯짓해주세요. 좋은 글 많이 부탁드립니다. 오늘 날씨 맑네요.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이제는 댓글은 적지 말아야겠다. 그 바쁘신 분이 한 낱 댓글에 팬 관리하듯 답장을 하려면 얼마나 힘이 들까? 마음으로 읽고 '라이킷'이나 하나 꾹 눌러 드려야겠다. 그분은 나의 글 무대에 파릇한 새순 같은 향그러움으로 다가왔고 창을 통해 집안 깊숙이 들어와 준 남녘 햇살 같았다.
손편지가 사라진 지 오랜데 글 속으로 전해오던 서로를 향한 응원은 진지했다. 나는 그분을 모른다. 그분도 나를 모른다. 그런데 글을 읽어가는 동안에, 어쩌면 내 맘에 쏙 들게 표현할 수 있을까 하며 마음으로 스파크가 팍팍 튄다. 이것은 글을 통해서 하는 일종의 신나는 게임이며 브런치가 주는 큰 매력이다. 감히 만날 수 없었을 분을 브런치를 통하여, NO.46. '초이스' 작가님을 만났다. 요즘 덜 피곤하다. 신이 나는 모양이다. 내가...
나의 46번째 구독자를 만난 후에,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방송계의 삶을 생각해봤다. 연예인들도 마찬가지 일 것 같다. 시청률에 속이 타 들어가기도 하고 또한 그것 때문에 한껏 신나기도 하는 삶일 것 같다. 군중들이 합쳐진 마음은 어쩌면 허상일 수도 있는데.. 시청자들의 관심에 '동반 의존'하여 자존감이 널뛰기를 할 듯하다. 그들이 칼자루를 잡고 있다고 하면 너무 논리가 비약된 것일까? 곧장 싫증을 내고 심히 까다로운 시청자들의 구미를 맞추는 것이 참 힘들겠다. 하지만 이 코로나 시대에 '집콕'으로 시간을 보내야 하지 않았는가? 안방에서 방송을 보며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고 있는 모든 시청자들에게 방송은 큰 일을 해내고 있는 것이다.
이제 겨우 46명의 구독자가 있고, 토털 조회수 4700회이지만 행복하다. 구독자가 만 명이면 더 행복할까? 그것도 아닐 것이다. 조회수가 백만이 된다고 부자가 되나? 그건 더욱 아니다. 소소한 일상에서 따뜻하게 사물을 들여다 보고 이웃을 챙겨보는 시선을 가지게 된 것이 큰 수확인 것 같다. 브런치를 알게 해 준 조카, 발행될 때마다 '라이킷'으로 응원해주는 독자들이 고맙다. 문학 박사님의 리뷰가 등을 떠밀었고 NO.46 구독자, '초이스' 님이 브런치 작가로서의 존재감을 부추겼다. 글이 발행되자마자 맞춤법과 어법상 어색한 것을 최소한 5~6개 정도는 캡처하여 부리나케 알려주는 분, 내 글의 최초 독자인 남편이 있어서 글 쓰는데 도움이 많이 된다. 이만하면 쓸만하다. 이제 막 날기 시작한 '브런치 비행'은 안전 운행인듯하다.
사는 것이 피곤하고 코로나로 지쳐 있지만 브런치를 통해서 색다른 재미를 느끼며 글을 통해서 소통과 사랑을 챙겨나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