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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향기와 찬양Lim May 02. 2024

선생님이 앞치맛바람을 일으키다

- A로 시작하는 Apron(에이프런:앞치마)

중학교에 입학해 보니 다른 세상이었다. 인근 세 군데의 국민학교에서 학생들이 모였다. 그래서 새로운 친구들을 알게 됐다. 새로 만난 그 친구들과 함께 큰 소리로 중학교 교가도 익혔다.


가야 영봉 정기받은 복된 이 땅에

거룩하게 이루어진 배움의 전당

슬기와 용맹을 힘껏 뽐내는

그 이름 아름답다 OO중학교~


나의 세상은 좀 더 넓어졌다. 그리고 교과 과목도 확 달랐다. 영어, 가정, 기술, 물상, 한문, 이런 과목을 새롭게 접했다.


여학생은 '가정'을, 남학생들은 '기술'을 배웠다. 가정 과목을 가르쳤던 분은 짧다막한 키에 통통했던 석봉이 선생님이었다. 그분은 혀가 짧았다. 혀짤배기였다. 우리는 석봉이 선생님의 흉내를 내곤 했다. 내 친구, 희순이가 석봉이 선생님 성대모사를 가장 잘했다.


"여러분 이짜나요? 이게 말이쬬, 요렇게 해써 조렇게 되는 거라고, 그게 바로, 내 말씀이야."


가정 수업이 시작되기 전에 희순이는 교탁 앞으로 재빠르게 나가서 석봉이 선생님 흉내를 냈다. 낙엽이 구르는 것만 봐도 웃는다는 사춘기 시절이었다. 희순이가 교탁 앞으로 나갈 때부터 우리의 웃음보는 미리 터져버리곤 했다. 희순이는 석봉이 선생님으로 빙의된 듯했다. 우리는 희순이의 그 모습을 보려고 가정 수업을 기다렸다.


"도대체 왜 이리 방방 떠 있나? 쪼용히 하라고, 이게 바로, 내 말씀이야."


수업 준비를 하지도 않고 웅성거리던 우리를 보면 석봉이 선생님은 참나무 봉으로 교탁을 탁탁탁 내리치곤 하셨다. 우리는 고개를 일제히 숙이고 서로의 눈을 쳐다보며 키득댔다. 세상에 그런 재미가 또 있으랴? 석봉이 선생님이 푸르락누르락 화를 내시면 우린 더 오졌다.


석봉이 선생님은 수업을 가르칠 때보다 가사 실습 시간에 더 어설펐다. 가사실에서 석봉이 선생님은 항상 앞치마를 둘렀다. 석봉이 선생님의 하얀색 앞치마에는 여러 가지 앙증맞은 자수가 놓여 있었다. 허리 부분을 질끈 매는 반 앞치마였다. 치마라고는 입지 않던 석봉이 선생님이 앞치마를 두르면 숨겨 두었던 여성미가 드러나 보였다. 그분이 앞치마를 입으면 말소리도 나긋나긋해지고 걸음도 사뿐사뿐 걸었다.


"아이코, 이게 왜 그래? 발이 있나?"


선생님은 가사 실습 시간에 걸핏하면 주방 기구를 떨어뜨리셨다. 그러면 학생들은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석봉이 선생님이 실수를 하시면 학생들은 더없이 신났다.


"이건 말이야. 에이프런이라고 하는 거야. 즉 다시 말해서 앞치마... 여러분도 가사 실습이 있는 날은 반드시 앞치마를 준비해 오세요. 아셨죠? 이게 바로, 내 말씀이야."


우리는 수예점에서 앞치마를 하나씩 구입했다. 가사 실습을 하는 날은, 천둥벌거숭이처럼 뛰어다니던 야생미를 접어두고 우리도 조신해지곤 했다.


"오늘은 마요네즈를 만들 거예요. 식초랑, 계란 노른자랑, 식용유를 넣고 요렇게 요렇게 계속 저어 주면 되는 거야. 이게 바로, 내 말씀이야."


석봉이 선생님은 가사 실습이 끝나면 앞치마를 입은 채로 살금살금 걸어 행정실 쪽으로 가셨다. 그곳에는 행정실 직원, '황상' 주사님이 있었다. 석봉이 선생님은, 가사 실습으로 샌드위치를 만들었던 날도 그걸 들고 행정실로 가셨다. 그런 날은 희순이가 앞장서고 우리들은 희순이를 뒤따랐다. 우리는 숙직실 담벼락에 바짝 붙어서 석봉이 선생님의 뒤태를 구경했다. 볼록한 엉덩이는 걸을 때마다 씰룩댔다. 앞치마 끈으로 묶인 뒤태를 보는 스릴이 가관이었다. 그러다가 석봉이 선생님이 잠시 멈추기라도 하면 우리는 일제히 구운 오징어처럼 담벼락에 바싹 오그라들었다. 그리고 덜덜 떨며 희순이의 손끝만 봤다.


"모두들, 나를 따르라."


희순이가 침착하게 백만 대군을 이끄는 장수처럼 우리를 지휘했다. 단 한 번도 우리는 석봉이 선생님한테 들킨 적은 없었다. 혹시 석봉이 선생님이 뒤돌아 보면 희순이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얘들아, 우리 모두 운동장으로 가서 놀자."라며 능청을 떨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석봉이 선생님이 두른 앞치마 속이 조금씩 볼록해지고 있었다.


"옴마야, 옴마야, 석봉이 샘과 황 주사님이 그렇고 그런 사이래."


희순이는 실눈을 뜬 채 웃으며 석봉이 선생님에 대한 얘기를 교탁 앞에서 했다. 그것은 우리들에게 톱 뉴스였다.


그 때부터 석봉이 선생님이 펑퍼짐한 임부복을 입고 출근하기 시작하셨다. 가사 실습이 있는 날은 임부복 위에 앞치마를 둘렀다. 바지 위에 앞치마를 둘렀을 때보다 더 어울렸다. 바람이 불 때면 석봉이 선생님의 임부복이 살랑거렸다. 풀을 먹인 선생님의 하얀색 앞치마도 서걱댔다.

 

이듬해, 석봉이 선생님은 황 주사님과 함께 아기를 안고 장터거리에 나오셨다.


"우리 애기가 이 신발이 예쁘다고 하네요. 그치? 자기야."


석봉이 선생님은 아기의 신발을 사거나 점빵에 들러 과자를 사기도 하셨다. 아기가 방실거릴 때마다 석봉이 선생님은 손을 입에 갖다대며 까르르 웃으셨다. 멀리서도 석봉이 선생님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수업 시간에는 본 적 없던 표정이었다. 무장해제된 모습이었다. 석봉이 선생님이 가족과 지내실 때는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우리는 공회당 뒤편에서 석봉이 선생님 가족이 시골 장터 나들이하는 것을 훔쳐보았다. 세상에 그렇게 쫄깃한 볼거리는 없었다. 당장에라도 석봉이 선생님이 우리를 향하여,


"도대체 뭐 하는 거야. 모두들 학생부로 데려갈까? 이게, 내 말씀이야."라고 호통치실 것 같았다.




그 쯤에 우리는 러브레터 쓰느라 바빠졌다. 예쁜 편지지와 펜촉을 사서 시(詩)도 적고 편지도 썼다. 친구들과 어울리다 보니 석봉이 선생님에 대한 관심이 점점 줄었다.


석봉이 선생님이 다른 학교로 이동하셨던가? 아니면 황 주사님이 떠나셨던가? 그 시절의 모든 일이 아물거리기만 한다. 50년 전 일은 안갯속과 같다. 그러나 앞치마 바람을 일으키며 행정실로 향하던 석봉이 선생님의 뒷모습은 눈에 선하다.




첫 발령을 받은 시골 중학교에서 석봉이 선생님은 그렇게 인생의 반려자를 만나셨다.


오늘 내가 앞치마를 걸치다가 문득 석봉이 선생님 생각이 났다.

지금 쯤 살아 계실는지...


살다가 뒤돌아 보니

 세월(歲月)이 유수(流水)와 같다


* 글에 나오는 모든 이름은 가명입니다.


[사진:픽사베이]

#가정 교과 #앞치마 #에이프런 #치맛바람 #반려자 #혀짧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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