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연경 감독이라고 해서 반드시 우승하는 것은 아니다
며칠 전이었다. 딸내미가, 대화창에서 말을 걸었다.
-엄마 예전에, 어렸을 때, 배구 좋아했다고 그러지 않았었나요? ㅎㅎ
-배구? 중학교 때 잘했지. 그리고 몇 년 전, 교회 대항 체육대회 때 한 팀에 반드시 여자가 들어가야 했는데 우리 팀은 내가 들어갔었지. 여자 선수가 한 번은 서브를 넣어야 하는 규칙도 있었는데 내가 서브를 넣으니 상대팀이 자꾸만 받아내지 못하더라. 서브에이스로 점수가 많이 올라간 적이 있어. 그건 아마, 여자 선수는 네트를 넘기지도 못할 거라고 여겼는데 예상치 못한 볼 속도와 엉뚱한 방향으로 서브가 들어오니 상대팀 리시브가 계속 흔들린 거지.
-지난주에 저희 교회 체육대회를 했는데 한 분이 다음에 배구 한 번 하자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엄마가 했던 얘기가 생각나서 물어본 거였어요.
-그랬구나. 오래전에, 중학교 후배가 연락이 왔더라. 내가 배구하던 모습에 반해 내 팬이 됐다더라. 근데 지금은 공이 무겁게 느껴지고 안 해본 지 오래되어 배구공만 봐도 무서워. 대신에 스포츠 채널에서 여자부 V리그를 챙겨 보는 편이야. 여자 배구 선수 이름은 거의 알아. 그리고 김연경의 열렬한 팬이기도 해.
-아, 그래요? 그러면 MBC에서 하는 <신임 감독 김연경>이라는 방송 보시면 되겠네요. 한 번 보세요.
그 프로를 한번 봐야지 하는 생각을 품고 있었는데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가 MBC <신임감독 김연경>을 봤다. 바로 알토스와 언더독스의 시합이었다. 알토스에는 30년 경력을 지닌 IBK 기업은행 김호철 감독이었고 언더독스에는 0년 차 김연경 감독이었다. 지난달에 있었던 경기를 보여주는 재방송 편이었다.
그래도 쫄깃하게 봤다. 2세트가 절정이었다.
언더독스는 1세트에서 진 뒤에 2세트에서도 끌려가는가 싶더니 주장 표승주의 활약과 문명화의 서브에이스로 역전에 성공하는 저력을 보였다. 20:24에서 경기는 끝나는가 싶었는데 계속 득점이 이어졌다. 언더독스는 슈퍼 디그로 멋진 수비를 해냈다. 상대팀은 숨겨둔 비밀 병기로 교체된 에이스의 치명적 범실까지 이어져 결국 26:28로 언더독스가 2세트를 따냈다. 세트 스코어는 1:1이었는데 접전 끝에 3세트는 알토스에게 넘어갔다. 4세트에서는 언더독스 세터 이진은 디그와 토스로 팀 득점에 기여했다. 그렇지만 25:18이라는 점수로 프로팀 알토스의 벽을 넘지 못했다.
결국 세트 스코어 3:1로 김연경이 이끄는 팀 언더독스는 패배하고 말았다. 이때 김연경 신임 감독은 안타깝고 속상한 맘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본인이 코트에서 직접 뛸 수 없는 일이라 더욱 아쉬웠을 것이다. 선수였다면 한 발 더 뛰고 해 내려고 하는 그 어떤 것이라도 했을 텐데 그녀는 그 경기를 지켜보며 낯선 무기력함을 느꼈다고 했다.
0년 차 감독이 나갈 길이 승승장구만은 아닐 것이다. 선수 때 느끼지 못했던 패배감을 많이 느끼게 될 것이다. 그녀는 이제 어떤 유형의 감독으로 남을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야 할 것이다.
김연경은 이미 존재만으로도 카리스마가 넘치니 선수들에게 무서운 감독 이미지보다는 영차영차 기운을 불어넣어 주고 칭찬하는 감독으로 자리매김한다면 좋을 것 같다. 그러면 전설이요, 레전드인 감독의 한마디 한마디가 선수들의 맘에 닿아 자신들의 기량을 맘껏 펼칠 것 같다.
그래서 지난 16일에는 늦게까지 <신임감독 김연경> 본방을 사수했다. 원래는 저녁 9시에 방송되기로 되어 있었는데 K-베이스볼 한일전 2차가 중계되면서 시간이 흘렀고 밤 11시가 돼서야 방송이 시작됐다.
프로팀 정관장 레드스파크스와 김연경이 이끄는 언더독스의 경기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1세트는 25 : 23으로 아쉽게 패했고, 주장 표승주의 공격 성공률은 고작 14%에 불과했다. 김연경은 표승주를 뺄 생각을 잠시 하다가 한 번 더 믿어 보기로 했다. 또한 공격수에 몽골 출신 타미라를 투입하여 팀 분위기를 바꿨다. 2세트 초반에 이나연으로 교체하니 표승주의 공격이 살아났다. 게다가 아무도 미처 생각지 못한 비디오 판독을 요청한 김연경의 판단은 정확하게 맞았다. 과연 달랐다. 매의 눈을 가진 김연경이었다.
김연경 감독 특징은 선수들이 미처 보지 못하는 상대팀의 빈 곳을 알아채 선수들에게 알려주는 것이었다. 클립보드로 얼굴을 가린 채 알려주는 깨알 같은 코칭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2세트, 3세트를 내리 이겼다.
인쿠시는 '힘쿠시'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강한 공격을 했다. 결국 4세트도 언더독스의 승리였다.
김연경이
멋진 배구 역사를 쓰는
레전드 감독이 되길...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https://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3183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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