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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준혁 Jun 08. 2021

아빠랑 나 둘 다 행복했다면 좋았을 텐데.

Chapter 1. 경기의 시작 - 탄생 誕生 [여섯 번째 이야기]

- 아빠랑 나 둘 다 행복했다면 좋았을 텐데...


 부모가 다른 사람의 힘을 빌리지 않고 꾸준히 자식을 가르쳐 성과를 내는 것은 양쪽 모두에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부족한 학생과 이를 대하는 스승 사이에는 금전적 관계나 직업 정신이 개입되어 있기 때문에 스승이 쉽게 낙담하거나 포기할 수 없다.

  

 하지만 부모가 스승의 역할을 맡아 자식을 가르치는 상황 속에서, 둘의 사이는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가깝기 때문에 ① 답답함은 배가 되고, 이에 따라 ② 거친 소리가 나온다. 또 계속해서 이것이 반복되면 ③ 서로에게 상처를 안길 수 있고 이 상황이 계속된다면 ④ 결국은 포기에 이르게 된다. 

 

 [① → ② → ③ → ④]의 과정을 거치면, 이제 자녀는 부모가 일임한 다른 교육자에게 맡겨지는 것이 보통인데, 나에게는 곤란한 일이 벌어졌다. 일반적이라면 아빠가 [① → ② → ③]을 경험한 후 [④]를 당면해야 하는데, [③]이 지나고 [④]에 이르기 직전에 아빠는 성취감과 희열을 먼저 느끼게 된 것이다.


 꼬여버렸다. 크고 작은 상처와 부담감은 고스란히 나만의 몫이 되어버렸다. 구구단의 원리를 갓 이해한 다섯 살짜리 아이가 방정식을 공부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였을 때, 한글 맞춤법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미취학 아동이 이천삼백삼십 개나 되는 한자를 꾸역꾸역 의무적으로 외워야 했을 때 느끼는 어려움에 공감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어린이의 학습이라기보다는 딥러닝을 공부하는 알파고의 느낌이었다. 그날그날 쪽지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틀린 개수만큼 발바닥을 맞는 경우도 있었고, 힘들어서 울기라도 할 때면 “아빠는 남자가 우는 소리를 제일 싫어해!”라고 하며 얼른 뚝 그치지 못하냐고 했다.


 만약 그때 아빠가 나에게 일기 쓰기의 효과나, 수학과 한자가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이유를 명료하게 이해시켜 주었다면 나는 로봇과 같지 않을 수도 있었다. 비례식을 실생활에 적용해 볼 기회를 마련해 주고, 한자는 낱말의 뜻을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는 예를 명확히 보여 주었다면 나도 배움에 대한 동기와 보람을 가지고 공부할 수 있지 않았을까.


 당시 나는 “수학은 논리적인 학문이야.”, “한국말의 70%는 한자로 이루어져 있어.” 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다. 물론 지금은 논리력이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 알고, 한자가 한글과 불가분의 관계라는 것도 역시 안다. 하지만 그때는 너무 어려서 논리라는 말의 뜻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논리는 한자로 대충 論理 이렇게 그리면 되는 것이다.’ 정도의 생각밖에 하지 못하는 아이였는데 어떻게 그런 추상적인 말로 동기 부여가 되었겠느냐는 말이다. 동기 부여는 커녕 성취감과 보람을 느끼는 일도 매우 적었다. 간간히 아빠가 준비한 쪽지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았을 때 느낀 안도감이 대부분이었다.


 아쉽게도, 이 시간들이 내가 자라나는 데에 있어 아주 큰 양분이었다는 생각을 견지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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