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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준혁 Jun 11. 2021

아빠의 품에서 나는 얼었지만, 가끔은 녹았다.

Chapter 1. 경기의 시작 - 탄생 誕生 [아홉 번째 이야기]

- 아빠의 품에서 나는 얼었지만, 가끔은 녹았다.


 만약 내가 유치원 때의 기억을 트라우마로 품고 살게 되었더라면 어떻게 자랐을까. 그때 내가 혹여라도 ‘나는 사람들과 쉽게 어울릴 수 없는 사람이야.’라며 스스로 섣부른 낙인을 찍었더라면, 나는 지금과 같이 외향적인 성격을 가지고 살아갈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나는 위험천만한 유년기를 보냈던 것 같다.


 괜히 나의 아픈 기억들을 여기에 담는 것이 아니다. 부모는 아이의 말과 행동을 주의깊게 관찰하고  언행 속에 숨어 있는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사실 부모가 아이의 결핍들을 찾아내지 못하는 상황은 흔하게 발생한다. 그리고  원인은 부모의 무능이 아닌 아이의 무능인 경우가 많다. 아직 감정을 디테일하게 전할  모르는 아이의 ‘당연한 무능탓이다. "엄마가 그러면 내가 이러한 감정을 느끼니 그러지 말아줘."라고 말할  있는 여섯 살짜리 아이가 세상에 얼마나 되겠는가. 모든 관계는 피드백이 오가면서 발전하는 법이지만, 아직 효과적 의사 표현 방법을 익히지 못한 아이와  부모 사이에는 피드백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는 아이의 언행에 담긴 의미를 신중히 헤아리고, 그렇게 파악한 바를 아이에게 확인받음으로써 아이의 의도를 분명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사람은 누구나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양의 자극을 받으면서 살아간다. 아이들도 사람인지라 마찬가지이다. 성인은 자신에게 입력되는 자극들 중 반응해야 하는 것들을 추려 수용하고 불필요한 것들을 걸러내는 능력을 갖추고 있으나, 어린아이들은 그러한 능력을 갖추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아이들은 자신에게 가해지는 자극 대부분을 그대로 수용하게 되고, 그 많은 자극들 중 일부는 시도 때도 없이 아이들을 괴롭히며 그들의 마음을 다치게 한다. 어렸을 때를 생각해 보면 이해가 쉬울 것 같다. 친구들과 다투고, 따돌림을 당하고, 좋아하는 친구에게 버림받을 때 느꼈던 ‘세상에 나뿐인 느낌’. 당시에는 정말 크게 느껴졌지만, 이제 와서 돌아보면 시시하게 느껴지는 감정들 말이다.


 자극을 걸러내는 능력 뿐 아니라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에서도 어린아이는 성인에 미치지 못한다. 그래서 아이가 느끼는 감정의 강도나 그 변화의 폭이 성인에 비해 클 수밖에 없다. 어린아이 역시 성인과 마찬가지로 시간이 흐름에 따라 감정이 무뎌지기는 한다. 그러나 아이들이 느끼는 감정의 강도를 고려할 때, 부모는 아이가 특정 감정에 고통받거나 거기에 휘둘리지 않도록 아이의 마음을 어루만져 줄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인격 형성기에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아픔들이 닥치고, 그것을 아이 혼자서 감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오면, 아이는 자신과 부모 사이에 보이지 않는 유리벽돌을 차츰 하나씩 쌓아나간다. 시간이 지나서 그 유리벽을 부수려 하면, 눈에 띄지도 않는 작고 날카로운 파편들이 집안 온 사방에 흩뿌려지는 상황을 각오해야 한다. 그러니까 여러분은 아이의 언행을 주의 깊게 관찰해 아이의 감정을 포착하고 그 감정 또한 성장하기 위한 밑거름이라는 사실과 더불어, 그 성장과정에 여러분이 항상 함께한다는 사실을 아이들이 느끼게 해 주기를 바란다.


 집에서는 강압적인 공부에 시달리고 밖에서는 철저한 따돌림에 시달렸던 나는, 자칫하면 한없이 소심하고 겁 많은 외톨이로 자랄 뻔했다. 나는 그때의 정신적 고통과 스트레스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나이에 맞게 살 수 없었던 것은 아빠의 강한 교육열 탓이었고, 유치원에서 쉽게 적응하지 못했던 것은 아빠와 할머니 두 분과 같이 살며 내가 스스로의 정체성을 온전히 정립하지 못했던 탓이다. 즉 아빠가 내 삶에 들어오면서, 하나의 문제가 연쇄적으로 다른 문제들과 꼬리에 꼬리를 물며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상황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도 아빠 덕분이었다.


 아빠의 채찍이 참 많이 아팠던 것은 사실이다. 내 마음은 경주마의 오른쪽 엉덩이만큼이나 부어오른 상태였고, 채찍이 또 언제 나에게 닥칠지 모르는 상황에 대한 부담감도 컸다. 하지만 내가 그 경주마들보다 나았던 점은, 내가 너무 아파할 때마다 말을 하지 않아도 매번 그 상처에 연고를 발라주는 부모가 있었다는 것이다.


 가끔 내가 방에서 조용히 눈물 흘리고 있을 때면 가만히 다가와 나를 다시 품에 안아주셨고, 내가 침울해 보일 때면 항상 “너는 최고가 될 거야.”라며 나를 다독여 주셨다. 너무 잦은 채찍질에 힘들었던 주의 주말에는 항상 아빠가 나를 데리고 나들이를 다녔다. 즐거운 추억들도 참 많다. 이처럼 사랑이라는 당근을 제공 받았기에 내가 갖은 스트레스를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이라 생각한다.


 아주 어린 나이에는 애초에 상처 입지 않는 것이 찢어졌다 아물기를 반복하며 단단한 굳은살이 자리잡는 상황보다 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상처 받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의 숙명을 고려할 때, 아물지 못하고 계속해서 환부가 넓어지는 상황이 오지 않은 것만으로 다행스럽다. 부족한 풋내기 아빠의 손에 항상 사랑이라는 ‘당근’이 들려있었고, 나의 마음을 헤아려 그것을 적시에 제공해 주었던 것은 나에게 참으로 축복과 같은 일이었다. 그리고 감사하다. 그 굳은살이 생기기까지의 과정은 너무나 힘들었지만, 요즘에도 가끔 그 과정의 결과들이 나를 괴롭게 하기도 하지만, 아빠의 그 위로마저 없었다면 나는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 감히 추측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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