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경기의 시작 - 탄생 誕生 [열두 번째 이야기]
- 엄마도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었구나.
모든 일에는 계기가 필요하다. 어떠한 일을 추진하는 데에 있어서도, 세상을 이롭게 하는 사업가의 성공에 있어서도. 하다 못해 매일 밤거리를 배회하던 고등학생이 ‘공부를 해보아야겠다.’라는 당연한 다짐을 할 때에도 말이다. 계기는 우리가 목표의식과 초심을 공고히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이는 곧 한 사람의 습관이 된다.
엄마의 무관심 속에 온갖 눈치를 보며 지냈던 15년 전 일주일 여의 시간은 그녀의 진심을 들여다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음과 동시에,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에게 응당한 정성을 기울이리라 다짐하게 되었던 강렬한 계기였다. 그 날 이후로 나는 엄마와의 갈등이 생길 때면 의도하지 않아도 그날 밤 엄마와 나눈 진솔했던 대화를 떠올리게 된다. 경솔함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나를 맹목적으로 사랑해주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기 싫어서 나는 한 번 더 신중하고 냉정히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여덟 살 때 내 방이 생겼다. 이전까지는 할머니 방에서 생활을 했는데, 아빠는 나의 자립심 함양을 위해 나만의 공간을 마련해 주었다. 방이 생긴 이후로 아빠는 내가 혼자 잠을 자도록 했다. 지금 생각하면 개인 공간을 보장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르지만, 당시에는 홀로 불 꺼진 방에 누워 잠이 드는 게 너무나 힘들었다. 귀신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았고 실제로 헛것을 본 적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매일 잠을 자는 척 침대에 누워 집안에 모든 인기척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살금살금 안방 문짝에 귀를 대어보고 두 분의 코고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할머니 방으로 내 매트리스를 옮겼다. 그 때는 싱글사이즈 매트리스를 가로로 눕힌 것보다 훨씬 키가 작을 때인데, 할머니 방에서 잘 수 있다는 안도감이 더 컸기 때문에 힘든지도 모르고 이를 옮기곤 했다.
하루는 자고 일어나서 엄마에게 발각되고야 말았다. 엄마와 아빠가 일어나기 전에 내 방에다 매트리스를 다시 갖다 놓았어야 했는데 늦잠을 자버린 탓이다. 엄마는 “왜 또 할머니를 힘들게 하냐.”며 나를 꾸짖었다. 하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엄마는 여전히 내게 매일 잔소리만 하는 사람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정말 이제는 엄마보다 30분 일찍 일어나서 제자리에 갖다두어야지.’
이쯤 되면 그만할 법도 하지만 엄마가 나를 벼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던 나는 그날 밤 또 침대를 옮겼다. 옮기기 전, 다른 날들보다 훨씬 조심히 ‘살금살금 발가락만을’ 사용해 안방 문 앞에 가서 귀를 대어보니 이번에는 절대 걸리지 않을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할머니 방에서 TV를 보다 잘 생각에 신나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침대를 세워 끌고 내 방을 반쯤 나온 순간, 눈 앞에는 나를 반쯤 포기한 듯한 표정을 하고 있는 엄마가 서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엄마의 행동은 무언가 이상했다. 분명 소리를 지르고 안방에 뛰어가 정신봉을 들고 와서 내 궁둥짝을 한 대 때려야 정상이다. 그런데 엄마는 그냥 힘이 풀린 눈으로 한참 나를 응시하다가, 마지막에는 내가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냉정한 표정으로 나를 훑고 방으로 다시 들어갔다. 안방 문이 닫힐 때도 이상했다. 문닫는 소리가 유난히 크다던가, 방 문 너머로 한숨소리가 들린다거나 해야 일반적인 사건의 전개다. 그러면 대처하기도 쉽다. ‘에잇! 내일 아침먹을 때 잘못했다고 해야겠다ㅋ.ㅋ’ 하며 매트리스를 마저 옮기고 할머니 옆에서 잠이 들면 그만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날은 매트리스를 다시 내 방으로 가지고 들어가 누웠다. 잠에 들기 어려웠다. 무언가 크게 잘못된 것을 느낀 채 뜬 눈으로 한참을 있다 잠에 들었다.
이튿날 아침, 내 예감은 맞아들었다. 평소 같았으면 밥을 차려주고 빨리 세수 안 하냐며 닥달도 하고, 양말을 삐뚤게 신으면 벗겨서 다시 신겨주던 엄마는 말 한 마디 없이 밥을 차려주고 방에 들어가버렸다. ‘제발 대꾸를 해주세요ㅜ.ㅜ’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현관에서 평소보다 크게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외쳐보았지만 내 외침에 반응해주는 사람은 할머니밖에 없었다.
이제 정말 엄마가 ‘나의 엄마’라는 역할을 관둔 거 같은 공포감이 나를 휘감았다. 너무 무서웠지만 엄마한테 가서 미안하다고 말을 거는 게 더 무서웠던 나는 일단 가시방석 위에서 3일 정도를 보냈다. 아무리 내가 일부러 바보같은 짓을 해도, 씻지 않고 소파에 누워있어 보아도, 장난을 치다 동생을 울려도 엄마는 나를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4일 째 되던 날, 나는 '엄마 없는 불쌍한 놈이 되기 싫으면, 이제는 엄마에게 용서를 구해야만 한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엄마에게 다가갈 타이밍을 잡으려 갖은 애를 쓰기 시작했다. 할까 말까를 수없이 고민하다 학원에서 돌아온 10시 경, 안방에 들어갔다.
“... ... 다녀왔습니다.”
나는 분명 눈 앞에 엄마가 있는 것을 확인하고 말을 꺼냈다. 하지만 엄마는 내가 아들이라는 것을 잊었는지, 내가 너무 긴장을 한 나머지 엄마의 환영을 본 건지 대답이 들리지를 않았다.
‘하...’
정말 이제 편부 밑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눈앞이 까마득해지고 막막했다. 하지만 대답도 않는 엄마를 앞에 두고 서있는 것은 더 막막하길래 얼른 내 방으로 복귀했다. 그렇게 또 용기를 내지 못하고 나와 엄마는 3일 정도 더 불편한 동거를 이어갔다.
그리고 사건발생 7일 째가 되던 날, 정말 이제는 이 불편한 관계를 끝내야만 한다는 생각에 책상에 앉아 그 때의 상황을 돌이키며 엄마에게 가서 사과하기 위해 필요한 말들을 종이에 썼다. 혹여나 가서 말이 헛나올까 두려워 쓴 내용을 거의 외우다시피 했던 거 같다. 심장은 고장난 것처럼 요동쳤고, 너무 긴장한 나머지 눈물이 찔끔찔끔 새어 나와 시야를 흐렸다. 떨렸지만, 오늘 해결을 짓지 않는다면 엄마를 잃을 수도 있다는 귀여운 추측은 내 발걸음을 곧장 안방으로 향하게 했다.
‘똑. 똑. 똑.’
평소에 한 번도 한 적 없던 노크는 단단히 화가 난 엄마를 향한 예의였다.
“엄마, 말 안 들어서 미안해. 엄마가 한 번 이야기할 때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엄마 말 무시해서 미안해. 엄마가 매트리스 옮긴 거 하나 때문에 이렇게 화가 난 게 아닌 거 알아. 이제 엄마가 하는 말들 잔소리라 생각 안 하고 진짜 진짜 말 잘 들을게. 미안해.”
잠깐의 정적 후 엄마는 나를 일주일만에 쳐다봤다. 그 무서운 눈초리가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한 주 내내 내 눈을 피한 채 허공만을 응시하던 엄마는 나에게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한참 나를 쳐다봤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의 눈시울은 붉어졌고, 엄마는 나에게 말을 건넸다.
“준혁아. 엄마는 너를 사랑해. 엄마는 너를 버릴 수 없어. 내 배 아파서 낳은 자식이니까. 그런데 네가 계속 엄마를 무시하면 가끔 너를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어. 엄마도 사람이야 준혁아. 엄마가 하는 말은 다 너 잘 되라고 하는 말이야. 이제 말 잘 들을 수 있지?”
엄마도 울고 나도 울었다. 짧은 대화였지만 꽤 많은 것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엄마가 나를 사랑한다.’, 진심을 느낄 수 있었던 말투. ‘엄마도 사람이다.’, 엄마는 그냥 엄마인 줄만 알았는데 엄마도 사람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엄마도 감정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생각하니 더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은 느낌. 내 삶에 엄마가 들어온 지 2년 만에 그녀의 진심을 알 수 있었다. 물론 그 이후로도 엄마의 말이나 조언을 백퍼센트 따르지는 못했다. 하지만 엄마가 나에게 왜 그런 말을 건넸는지에 대해 곱씹으며 내 행동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나를 가장 사랑해주는 사람에게 실망을 안기지 않기 위해서였다.
나를 못살게 굴기도 했고, 아끼는 것 같기도, 때로는 사랑하는 것 같기도 했던 엄마는 그 한 주동안 잠시 내게 남보다 못한 사람이었다. 그 때의 그 일주일동안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엄마에 대해 배웠고, 사람의 말을 무시하면 나 역시 무시당할 수 있음을 배웠다. 여덟 살의 나에게는 너무나 큰 충격이었고, 교훈이었다. 내가 지금까지 그 때를 기억하는 것을 보면 엄마의 전략 아닌 전략은 탁월했다.
+PLUS+
아이의 좋지 않은 습관을 교정해주기 위해 이러한 '충격요법'을 때에 맞게 적절히 사용하면 아주 괜찮은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를 남발한다면 아무 영양가 없는 단순하고 반복적인 갈등에 불과하겠지만 말이다.
특히 아이가 스스로 ‘난 이제 어느 정도 컸다.’라는 생각을 갖기 이전에 이 요법을 사용한다면 더욱 좋을 것 같다. 만약 사춘기 때의 내가 엄마와 이러한 갈등을 겪었다면 ‘아니.. 뭐 매트리스 하나 가지고 이렇게 심하게 반응한대?’ 하며 도리어 건방진 행동을 보였을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아이가 나이를 더 먹으면 이에 비례하여 요법의 강도를 올려야 하고, 강도를 올린다면 부작용 역시 커질 수 있기 때문에 아이가 어릴 때 일찍이 이러한 방법을 사용하여 나쁜 습관을 미리 교정해주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생각이다.
사람은 평소와 다른 상황에 직면할 때 이질감을 느낀다. 특히 그러한 상황이 본인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면 이질감을 느낌과 동시에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평소와 다른 감정인 '충격'은 뇌에서 중요한 정보로 인식되어 장기 기억 장치인 편도체에 저장된다. 감정이 동반된 기억이라면 더 그렇다. 만약 여러분의 아이가 꼭 고쳐야만 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면, 서둘러 아이에게 선의의 충격을 주어 더 나은 사람이 될 기회를 선물해주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