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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준혁 Jun 29. 2021

방은 다섯 개, 사람은 셋.

Chapter 1. 경기의 시작 - 탄생 誕生 [열세 번째 이야기]

- 방은 다섯 개, 사람은 셋.


 그럭저럭 이리저리 살다 보니 몸도 마음도 조금씩 커져갔고 나의 세 양육자들은 적절히 조화를 이루며 나를 만들어나갔다. 할머니의 사랑도, 아빠의 강함도, 엄마의 밀착 케어도 시간이 지나니 모두 너무 당연한 것이 되어버렸고, 모든 것이 마음에 들 수는 없었지만 원만하고 행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것에 감사하며 하루하루를 잘 지내고 있는 중이었다. 그때 당시 열둘, 오 학년.


 그러던 찰나, 아빠가 천안으로 떠났다. 어느 날 학교를 다녀오니 현관 앞에 박스테이프로 칭칭 감긴 라텍스 매트가 놓여있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아빠는 내게 “이제 아빠는 주말에만 집에 올 거야. 엄마를 아빠라고 생각하고 말 잘 듣고 주중에는 네가 가장이니까 엄마랑 민혁이랑 할머니까지 잘 지켜야 해. 아빠는 아들을 믿어!”라는 말씀만 남기고 출발하셨다. 주말마다 올 거면서, 실제로도 주말이면 어김없이 왔으면서 말은 왜 저리 비장하게 하시던지, 그날 저녁에 나는 아버지를 잃은 것마냥 한참을 울었다. 3-1=2.


 몇 달 지나지 않아 고모 댁에서 할머니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생업에 부쳐 집에 붙어있을 시간이 없는 고모네 부부를 대신해 집에 홀로 남겨질 사촌동생을 돌보아줄 수 있겠냐는 것이 요지였다. 딸의 애환에 어쩔 도리가 없던 할머니는 몇 날을 고민하다 떠나시기로 결정했다. 할머니는 세 달에 한 번 꼴로 집에 잠시 오셨다가 이내 금방 고모 댁으로 돌아가셨다. 공허한 집, 싸늘한 분위기, 텅 빈 방. 3-2=1


 내 인생에서 가장 늦게 접한 엄마라는 양육자는 졸지에 나의 유일한 양육자가 되었다. 항상 엄마는 집에 상주했고 우리의 뒤치다꺼리로 하루를 시작하여, 무릎을 부여잡고 ‘아이구’ 소리를 연신 내뱉으며 잠자리에 들었다. 힘들다는 내색은 우리 앞에서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지금 와서 돌이켜 생각해봐도 엄마라는 사람은 매우 강했다. 힘든 조건과 상황 속에서도 굴하지 않았고, 항상 본인의 자리를 우두커니 지켰다.


 해가 세 번만 바뀌면 모두가 제자리로 돌아올 것이라는 어른들의 말은 들어맞지 않았고, 우리 다섯 식구는 더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옛 모습을 갖출 수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총 7년. 멀쩡하던 아이가 사춘기를 겪으며 미친 자가 되고, 그 미친 자가 미친 시기를 다 보낸 후 정신을 차리는 시간.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격언을 보기 좋게 무시하고 마치 파충류의 변태 마냥 여러 모습을 거치는 그 대혼란의 시기에 나를 케어할 사람은 엄마 하나밖에 없었다. 그리고 두 분이 잠시 떠난 7년 동안 나는 방황과 혼란, 불안에 휩싸인 못난 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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