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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준혁 Oct 26. 2021

내 애는 그럴 애가 아니야; 일탈의 유형

Chapter 2. 경기 중 - 탈피 脫皮 [여섯 번째 이야기]

 당연하다. 그럴 리가 없다. 여러분의 아이는 원래 착했다. 어렸을 때부터 엄마 아빠의 말이 법인 줄 알며 따랐고, 유치원에 다닐 때는 한 손은 엄마 손에, 한 손은 번쩍 들어 귀에 딱 붙인 채로 횡단보도를 건너곤 했다. 노래를 틀어주면 엉덩이를 양쪽으로 흔들어대며 재롱을 떨었고, 드러누워 “엄마 아야 해.”하고 아픈 척 시늉을 하면 걱정 어린 눈물을 흘려주던 그런 아이였다. 그런데 이런 아이가 어떻게 갑자기 변해서 친구들과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며 향락을 즐길 수 있단 말인가?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내 아이만큼은 그럴 일이 없다.’. 대부분의 부모는 입을 모아 이렇게 말하고는 한다. 그렇다면, 밤 10시에 집 앞 동네 길거리에만 나가도 널려있는 앳된 얼굴의 폭탄들은 대체 누구의 아이일까.


 힘주어 말하지만 부모님들은 정신을 바짝 차리셔야 한다. 그런 부류의 아이들의 부모님 대부분은 아이가 어릴 때의 모습만을 보고, 집에서 조용히 생활하는 아이의 모습만을 보고 난 후에 쉽게 의심을 거둔다. 이처럼 본인을 맹신하는 부모를 둔 자녀는 일탈을 위한 완벽한 조건을 갖추게 된다. 


 아이들은 한 번에 나락으로 치닫지 않는다. 긴장 반 설렘 반을 품고 하나둘씩 못된 짓을 배워가다 서서히 그 행동에 무뎌지며 문제아가 된다. 겉으로 보면 평범하고 바른 학생과 길거리를 배회하는 폭탄 사이에 큰 차이가 있는 것 같지만 사실 그들이 일탈을 갓 시작하던 시점으로 돌아가 보면 두 부류는 한 끗 차이에 놓여있다. 

바름과 어긋남 사이의 열차


 [시점 P]에는 이정표가 없다. 청소년기의 어린아이들에게 ‘무엇을 타면 어디로 향하는가?’에 대한 정보는 매우 부족하다. 따라서 한 순간의 선택으로 어떤 학생은 상행선에 몸을 싣고, 다른 학생은 하행선에 몸을 싣는다.


   하행선을 타고 있는 아이가 짧은 시일 내에 정신을 차리면 바로 다음 역[시점 Q]에 내린 다음 반대편 기차를 타면 된다. 그보다 시간이 더 지나면 조금 더 먼 다다음 역[시점 R]이 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다음 역은 멀리 떨어져 있다. 늦게 정신이 들수록 목적지로 향하는 시간은 오래 걸린다. 따라서 부모는 오래전에 [시점 P]를 먼저 겪어본 사람으로서 자녀에게 [시점 P]가 다가왔는지에 대한 여부를 판단하고 그들의 이정표가 되어야 한다.


  자녀가 [시점 P, Q, R...]에 놓여있고, 자칫하면 더 나락으로 가는 열차를 탈 수도 있는 상황임을 나타내는 단서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 몇 가지만 이야기를 해보자면, 

- 외출 시 행선지를 알리지 않고,

- 행선지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못하거나,

- 보고하는 행선지가 매일 같은 경우,

- 집에 사다 놓은 적이 없는 섬유탈취제 냄새가 나는 경우,

- 집 앞 소화전이나 방수 기구함 안에 담뱃갑이 들어있고,

- 패딩 주머니나 가방에 있는 듯 없는 듯 달린 조그마한 수납공간에서 담배가루가 나오는 경우,

- 유행 품목에 과도하게 민감해지고,

- 사달라고 부모를 설득하려 하는 것을 넘어 강요하거나,

- 용돈으로는 절대 살 수 없는 옷이나 물건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이외에도 수상한 기색이 보인다면 면밀히 관찰하여 아이의 현 상황을 짐작하고 대응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다시 돌아와서, [시점 P]에 당면한 아이들이 비행을 일삼는 이유는 다름 아닌 ‘어른처럼 보이고 싶은 과한 욕구’다. 화장만 하면 사람들이 자신들을 어른으로 볼 것이라는 앳된 착각을 하고, 웬만한 어른들과는 주먹을 섞어가며 싸워도 본인들이 제압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집단을 형성해 친하지도 않은 친구들과 하루 종일 무리를 지어 다니며 힘을 과시하려 하고, 시종일관 모든 어른에게 날 선 태도로 대하는 그들은 이미 하행선에 몸을 올린 상태다.


 나는 그들을 나락에서 건지려면 그들의 자세한 속내나 일탈 유형, 그리고 세부적인 전개를 파악해 보아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했다.


일탈의 유형
(집단화, 폭력, 흡연과 음주, 도박, 불건전한 이성교제, 그리고 게임중독)

 알다시피 이들은 일반적인 학생이 하지 않는 몇 가지를 한다. 
 집단화, 폭력, 상습적 음주와 흡연, 도박, 불건전한 이성교제 그리고 게임중독이 대표적인 일탈의 유형이며, 그 이외의 범위로는 잘 벗어나지 않는다. 금전적인 부분에 한계가 있는 학생 신분인지라 더한 짓을 할 엄두를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의 일탈은 뻔하디 뻔하다. 다만 사회에서 지능형 범죄가 성행하듯, 그들의 일탈도 날로 이상해져 가는 상태이기 때문에 그 뿌리 유형에 따른 자세한 분석이 필요하다.


 첫째, 집단화.

 집단화는 모든 일탈의 시발점이다. 앳된 미성년자가 혼자 힘을 과시하기는 힘들다. 제 아무리 ‘강해 보이는 패션’과 ‘험한 말투’와 같은 카드들을 꺼내 든다고 하더라도, 세상은 이들을 보고 귀엽다는 듯 비웃는다. 사실 집단을 형성한다고 하더라도 그들을 향한 비웃음이 사그라들지는 않지만, 그들은 이상할 만큼 어떻게든 스스로가 주류라고 판단한 또래 집단에 속하려고 한다. 흔히 초등학생 때부터 친하게 지내던 동네 친구들 몇 명이 집단의 뿌리를 형성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후로는 필요에 의해 한 명씩 그 집단으로 유입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한 학교당 보통 한 팀 많게는 두 팀 정도 형성되는 이 무리들은, 스스로를 학교의 중심이라고 여긴다. 초기에 두 팀 이상이 형성되었다면 이들은 서로 세력을 다투며 이내 한 팀으로 합쳐진다. 한 학교에 두 세력이 존재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집단의 여론에 맞게 뉴페이스가 영입되기도 하고 기존의 친구를 내치기도 한다. 집단 여론이 영입하고 싶어 하는 아이, 싸움을 잘할 것 같은 아이, 잘 생기고 예쁜 아이, 같이 있기만 해도 웃긴 아이, 그 집단에 속하기 위해 기존 구성원을 향해 아낌없이 주는 아이(흔히 말하는 ‘호구’)들이 뉴페이스가 된다. 반면, 본인의 위치를 확보하기 위해 집단 내 이간질을 하는 아이, 갖가지 이유로 집단 구성원 대부분의 미움을 받는 아이, ‘아낌없이 주는 나무’ 역할을 다 수행하고 더 이상 집단의 이익을 위해 힘쓸 수 없는 아이들은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아 버려진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여러 사건사고들을 맞닥뜨린다. 그리고 그들은 이것을 추억이라 이름 짓고 공유하며 단단한 결속력을 갖춘다. 하나의 내집단이 완벽히 형성되는 모습이다. 


 마음 맞는 또래들끼리 모인 것뿐인데 이것이 왜 일탈의 시발점일까. 그 집단이 구성된 목적을 들여다보면 확실한 문제점이 드러난다. 그들은 보통 적게는 8-10명, 많게는 25-30명의 육박하는 집단 규모를 자랑한다. 단체 사진을 SNS에 포스팅하고, 복도를 걸을 때도 10명에 가까운 아이들이 벌떼처럼 움직인다. 그 어떤 곳을 가더라도 그들은 함께다. 겉으로만 보면 모두가 죽고 못 사는 죽마고우들인 것 같지만 실제로 그 속에는 두세 명 정도로 구성된 작은 집단이 여러 개 존재한다. 따라서 나는 그 거대한 무리를 ‘강해 보이고 싶은 작은 집단들의 집합체’로 규정하고 싶다. 결국 그들은 힘을 가지기 위해 모인 아이들이다. 이들은 또래들에게 위화감을 조성하고 면학분위기를 해치는 등 다른 친구들에게 많은 피해를 끼친다. 또한 이후에 설명할 다양한 일탈의 기반이 된다.


 덧붙여, 힘이 목적인 이 아이들 집단은 서열 관계도 뚜렷하다. 또한 대장질을 하는 한 아이를 필두로 하여 집단 내 개인의 역할도 암묵적이지만 명확히 정해져 있다. 집단 내 힘이 강한 아이들의 시중을 드는 아이, 나이 들어 보이는 얼굴로 아이들이 살 수 없는 것들을 사서 공급하는 아이, 싸움을 잘하는 아이, 사고가 생길 때 책임을 지는 아이, 외모가 출중해 이성을 꾀는 아이, 집단의 재미를 담당하는 아이 등 여러 아이들이 제 역할을 수행한다. 그들의 니즈에 따라 역할의 종류는 천차만별이다. 정말 웃긴 것은, 그들에게 명확히 보이는 이 역할에 대해 물으면 더러 화를 내며 “그런 거 없어. 다 친구야!”라고 말을 한다. 그렇게 죽고 못 사는 친밀한 집단 안에서 프로스포츠 시장에서나 나올 법한 영입과 방출이 계속되는 이유는 뭘까. 방출되는 아이는 힘과 학업 그리고 친구, 어느 하나도 내세울 것 없는 상태로 또 다른 세상에 내던져지는 데 말이다.


 둘째, 폭력

 힘의 집합체를 구성했다면 그다음은 그 힘을 과시하는 일이 뒤따른다. 이들의 폭력 행위는 집단의 구성이 불건전한 의도에서 이루어졌다는 나의 주장을 완벽히 뒷받침하는 근거가 된다. 폭력행위는 그들의 목적과 상황에 따라 여러 유형으로 나뉘는데 크게 ‘집단 간 폭력행위’(일명 ‘패싸움’), ‘집단 내 폭력행위’, ‘집단 대 개인 폭력행위(일명 ‘다구리’)’, ‘집단 소속원 개인의 폭력행위’로 구분된다.


 1. 집단 간 폭력행위(일명 ‘패싸움’)

 집단 간 폭력행위는 각 학교마다 존재하는 ‘일진’으로 일컬어지는 무리 간의 대립이다. 대개는 무리 안에 나서기 좋아하고 시비 걸기를 취미 삼아하는 중증 사춘기 환자 하나가 다른 학교 아이와 갈등에 휘말린다. 갈등이 발생한 원인을 물으면, ‘길을 가는데 꼬나봤다.’, ‘본인 여자 친구가 올린 SNS 게시물에 댓글을 달았다.’와 같은 우습지도 않은 대답이 나오므로 갈등 발생의 원인은 ‘사춘기 아이의 반사회적인 사고 회로’ 정도로 해두는 편이 낫다.


 이렇게 A학교 철수와 B학교 민기가 서로 대립한다. 둘이 전화 한 통 하고 오해를 풀거나, 둘이서만 만나 피 터지게 싸우고 이긴 놈이 아이스크림 하나 사주며 화해하면 다 해결될 일이지만 이들은 99퍼센트의 확률로 본인이 속한 집단의 친구들을 끌어들인다. 철수와 민기의 사소한 기싸움에서 시작된 사사로운 감정 다툼은 어느새 A학교와 B학교의 대립으로 직결된다. 무리 중 한 명이라도 나서서 “야, 이러지 말자. 잘 풀고 넘어가자.” 하며 성이 나있는 친구들을 어르고 달래면 될 일이지만 양측의 여론은 이미 ‘패 죽이자.’로 통일되어있는 상황이다.


 각 무리 대장들 간의 전화통화를 통해 말로만 듣던 ‘패싸움’ 스케줄이 잡힌다. 마침내 그날, 학교가 끝나고 약속 장소에 엄청난 수의 인파가 모인다. 위압감을 가미하기 위해 세워놓은 각 측의 덩치 여러 명, 치어리더도 아니고 매니저도 아닌 동네 ‘일진’ 여자아이들, 구경하러 온 아이들. 그리고 후배의 싸움을 보기 위해 모인 선배 무리들이 주를 이룬다. 보통 경비가 허술한 아파트나 상가 옥상, 인적이 드문 공터나 공사판이 인기 만점 장소다. 선호하는 시간은 당연 해가 저문 이후다.


 ‘엄마에게 이르지 않기’, ‘얼굴이 피떡이 되어도 계단에서 넘어졌다고 하기’는 암묵적인 합의다. 싸우는 과정은 그리 특별하지 않다. 영화에 보면 악을 지르며 떼로 싸우는 장면과, 싸움에 참여한 모든 아이들의 얼굴에 엄청난 상처가 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하지만 그것은 영화일 뿐이다.


 적당히 싸우다 한쪽이 패배를 인정하면 수많은 인파들은 잠깐의 리액션을 보이다 이내 흩어진다. 이긴 쪽은 그때부터 전투에서 승리한 사실을 온 동네에 알리고, 진 쪽은 함구한 채 다시는 도전하지 않는다. 패배한 측이 절치부심하여 재도전을 한다거나, 다른 집단과 힘을 합쳐 재차 협공을 하는 일은 당연히 없다. 이 역시 영화나 역사책에나 나올 법한 모습이다. 엄청 대단할 것 같지만 이렇게 끝이 난다.


  다시 말하지만 아이들이 까불어봤자 상식 선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벗어나야만 뉴스에 나온다. 뉴스에는 ‘아주 가끔’ 발생하는 상식 이하의 미친 행동들만 등장하니, ‘요즘 노는 아이들은 다 저렇구나.’라는 성급한 일반화가 이루어지는 것인데, 모든 말썽쟁이들이 다 그 정도는 아니기에 충분히 갱생의 여지가 있다.


 2. 집단 내 폭력행위

 살벌한 정도는 1. 보다 이 유형이 훨씬 강하다. 사실 1. 과 같이 다른 집단과 대립하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 아닐뿐더러, 한 번 보고 다시는 보지 않을 이들과의 싸움인지라 지더라도 큰 스트레스가 없다. 하지만 집단 안에서 벌어지는 힘겨루기와 서열 정리는 어쩌면 졸업하기 전까지 계속 반복되는 일이다. 안을 들여다보면 그들의 다툼은 굉장히 치열하다. 그러다 보면 폭력행위는 자연스레 발생한다.


 집단 내부에서 발생하는 폭력행위는 대부분 서열과 관련이 깊다. 누가 더 강한가를 가리기 위해 맨 주먹으로 스파링을 하기도 하고, 높은 서열에 위치하기 원하는 아이가 본인보다 서열이 높은 아이를 의도적으로 건드리면서 서로 주먹을 섞게 되기도 한다. 나에게 가장 신선했던 서열 정리는, 한 집단의 서열 1위가 그 밑의 아이들의 서열을 정해준답시고 본인이 승패를 판단할 테니 둘씩 짝을 지어 싸우라고 명령하는 모습이었다. 참으로 우습지만, 그 상황에 처한 아이들이 그 악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그러한 집단이 대개 대단히 폐쇄적이고 이단 종교와 같이 맹목적인 집단 애착 성향을 띤다는 것에 있다.


 때로는 단순히 서로 마음에 들지 않아 다투는 경우도 있다. 청소년기의 아이들에게 당연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일탈 청소년 간의 다툼은 높은 확률로 무력이 개입된다는 점과, 부당한 일을 당해도 아이들은 법과 제도에 대한 이해가 전무하기 때문에 집단 내에서 사건이 묻힌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집단 안에서 절도 행위를 했다거나, 다른 아이의 이성친구를 꼬인 경우, 돈을 상습적으로 빌려 갚지 않은 경우 등, 그들의 입장에서 폭력을 정당화할 여러 명분이 발생한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들은 하이에나 마냥 달려들어 무력을 행사하고 본인의 강함을 알리기 위해 힘쓴다. “나 오늘 얘 조질 거야.”라는 식의 말로 그들은 기획, 홍보, 실행의 전 과정을 수행하며, 절대 일대일로 만나 둘만 있는 곳에서 싸우지 않는다. 항상 싸움의 장에는 구경꾼들이 즐비하다.


 3. 집단 대 개인 폭력행위 (일명 ‘다구리’)

 집단 대 개인 폭력행위는 피해자가 집단 내부의 인물인 경우와 집단 외부의 인물인 경우로 나뉜다. 


 피해자가 집단 내부의 인물인 경우에 폭력행위는, 2. 의 마지막 문단에서 언급한 ‘폭력을 정당화할 여러 명분’에 집단 구성원 다수가 공감하며 이루어진다. 불과 몇 주 전까지만 하더라도 함께 웃고 모여 다니던 아이들은 일련의 이유로 표적이 된 아이에게서 등을 돌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표적의 과거 행적까지 들추며 ‘그 아이가 이 집단에서 함께 어울릴 수 없는 이유’를 만들어가기 시작한다. 이 과정이 끝나면 표적이 점차 소외감을 느끼게 하다, 그를 불러내어 위해를 가하기에 이른다.


 한 명이 다수와 대치하는 상황은 큰 화를 부른다. ‘집단 대 개인 폭력행위’ 과정에서 표적이 된 아이는 심하게 다칠 확률이 높고, 수치심과 친구를 잃었다는 상실감을 못 이겨 학교를 떠나기도 한다. 소위 ‘다구리’라 일컬어지는 이 행위가 극도로 심해지면 자살하는 아이가 발생하기도 하고 어느 한 곳이 불구가 되어 언론에 등장하기도 한다.


 한편 피해자가 집단 외부의 인물인 경우, 통상 한 살 내지 두 살이 어린 후배이거나 힘이 약한 동급생, 인기가 없는 아이와 같이 ‘쉽게 제압할 수 있는 아이’나 ‘친구가 없는 아이라 괴롭히더라도 가해자 본인이 여론의 뭇매를 피해 갈 수 있는 아이’가 타깃이 된다. 가해의 이유로는 ‘버릇이 없다.’, ‘아니꼽다.’와 같은 가당치 않은 이유가 주로 언급된다. 다행인 점은 이 경우, 피해자가 사안을 공론화시키는 것이 상대적으로 쉽다. 위에 언급했던 집단 내 폐쇄성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대개 이 상황에서 피해자는 본인의 피해사실을 알리며, 가해자는 학교와 경찰에서 제시한 응당한 징계나 처벌을 받고 폭력행위를 멈춘다.


 4. 집단 소속원의 독단적 폭력행위

 이 유형은 사회에서 신종 문제로 대두되는 ‘묻지 마 범죄’와 맥이 닿아있다. 정말 아무 이유 없이 순간적으로 이루어지는 완력 행사다. 나는 이 유형을 가장 좋지 않은 사례로 꼽고 싶다. 정말 평범하고 성실하게 학교생활을 하는 선량한 아이가 예기치 않게 피해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발생하는 폭력행위의 피해자를 관찰하면 ‘친구들이 싫어하는 아이’, ‘성격이 원만하지 않은 아이’와 같이 유형을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하기 마련인데, 이 경우는 예측 자체가 불가능하다.


 사건은 이유 없이 발생한다. 예를 들어보자. 
 ‘일진’에 속한 소속원 하나가 수업시간이 시작하기도 전에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다. 선생님이 들어오셔서 “쟤 깨워.”라며 손짓하고, 그 주위에 있던 선량한 학생 한 명은 자는 아이를 건드리면서 “00야 일어나.”라고 한다. 그러면 오만상을 쓰고 일어나서 깨운 학생을 노려보고, 그 수업이 끝나자마자 그는 본인을 깨워준 아이에게 “야 이 XXX야. 왜 깨웠냐?”하며 머리통을 한 대 치며 위협한다.


 힘 있는 집단에 속해있는 아이들이 본인의 친구들을 등에 업고 기고만장할 때 벌어지는 일이다. 북한 주민을 향한 공산당원의 횡포도 이 정도로 억지는 아니다. 학년이 오를수록 이러한 형태의 폭력 행위는 확연히 잦아들지만 못된 아이들에 의해 흐려지는 면학 분위기는 심각한 문제이다. 


 셋째, 상습적 음주와 흡연

 모두가 알다시피 청소년의 음주와 흡연은 ‘어른처럼 보이고 싶어 하는 심리’에서 비롯된 가장 보편적이고 널리 알려진 일탈이다. 물론 정말 힘들고 인생이 고달파 술과 담배를 찾는 경우도 있겠지만, 정작 어렵게 사는 아이들은 술과 담배에 돈을 쓸 여유조차 없다. 어떻게든 악착같이 공부를 해서 본인의 처한 환경을 극복할 생각에 여념이 없고 아르바이트를 통해 생활고를 모면하기 바쁘다. 따라서 제공해야 하는 반대급부 없이 양육자에 의해 맛있는 밥과 따뜻한 잘 곳을 제공받는 그들의 인생이 술과 담배를 달고 살만큼 고달픈 경우는 거의 없다.


 역시 알다시피 술은 담배와 달리 쉽게 중독되지 않는다. 학생에게는 알코올에 중독될 만큼의 술을 먹을 시간적 여유도 없을뿐더러 경제력 역시 허락되지 않는다. 그래서 상습적 음주는 흐트러지고 싶은 마음, 막연히 술을 마신 후 해보고 싶었던 일련의 행동들에 대한 환상을 실현하기 위해 택하는 일탈 방식으로 볼 수 있다.

 문제는 역시 기존에 형성된 집단에서 발생한다. 일탈 집단은 보통 미성년자 구매 금지 품목을 사는 것이 가능한 노안인 친구를 곁에 두는데, 항상 이들을 통해서 술과 담배를 구한다. 통상 야간에 인적이 드문 공원에서 꼭 집단을 형성하여 술을 마시는 ‘노상’이라고 불리는 이 행위는 학생 신분에서 술을 마실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본인의 주량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채, 건전한 음주 문화에 대한 일말의 학습도 하지 못한 채 위장에 들이붓는 술은 큰 화를 부른다. 위 세척을 위해 야밤에 응급실로 실려가고, 바람 빠진 에어벌룬과 같은 형상을 하고 몸이 접힌 채 바닥에 딱 붙어 사경을 헤매는 아이, 이유 모를 대성통곡을 하는 아이, 취기를 빌려 유사성행위를 하기도 하는 아이들, 길가는 사람에게 온갖 추태를 부리다 신고를 당하는 아이들도 있다. 그들의 ‘미친 짓’은 상상을 초월한다. 내가 직접 보고 들은 것들만 이 정도가 되니 그 속을 들여다보면 얼마나 더 심각할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한편, 흡연은 음주와 달리 쉽게 중독된다. 한두 번 호기심에 피우다 보면 본인도 모르는 새에 계속해서 담배를 찾게 된다. 빠르게는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시작되는 그들의 흡연은 부모의 담배를 슬쩍 훔쳐 피우고 길에 누군가 무심코 떨군 몇 까치의 담배를 우연히 주워 피우는 것처럼 예상치 못한 경로로 시작한다. 또한 친구의 권유나 상급생의 강요에 의해 반강제적으로 이루어지기도 한다. 물론 혼자 피우는 아이들은 없다. 이 역시 ‘그’ 집단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담배를 태워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태어나서 피우는 첫 담배는 향과 맛이 매우 고약하다. 처음 피울 때 머리가 핑 돌고 토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그들도 매한가지일 테지만, 그들은 ‘가오’를 위해 역함을 극복한다. 어떻게 구하고 구해서 꾹 참고 두 갑 정도를 피우면 그들은 완벽히 니코틴의 노예가 된다.


 주머니에 오천 원만 있으면 담배와 라이터 하나를 손쉽게 살 수 있는 성인들과는 달리, 그들은 담배를 피우기 위해 많은 비용을 지불한다. 마음이 맞지 않더라도 ‘담배를 살 수 있는 친구나 선배’와 친해져야 하고, 담배 구매가 가능한 슈퍼나 편의점을 찾으려 발품을 팔아야 한다. 만약 어찌어찌 구했다면 어른들에게 걸리지 않고 피울 수 있는 장소를 찾으러 헤매야 하고, 피울 때도 냄새가 배지 않도록 바깥에서 일정 시간을 배회하다 집으로 들어가야 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그들의 인생에서 ‘가오’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다.


 그들에게 담배는 어른들의 돈과 같다. 있을 때는 여유롭지만 없을 때는 상황이 한없이 어려워지는 것이 담배다. ‘담배 난’이 오면 그들은 길에 버려진 장초를 주운 다음, 친구들끼리 돌아가며 한 모금씩 피우기도 하고, 꽁초를 주워 마저 타지 않은 담뱃잎들을 모은 다음, 수제 담배를 자체 제작하기도 한다. 이렇게 비위생적이고 비상식적인 행위들도 그들에게는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회자된다. 가짜 주민등록증에 깜빡 속아 담배와 술을 판매한 것에 따른 영업정지 명령에 고통받는 업주의 서러움은 그 추억을 그리는 도화지다. 


 넷째, 도박

 어른들의 예상 가장 밖에 있는 유형. 하지만 발을 들인 아이에게 엄청난 화를 부르는 일탈이다. 경제관념이 형성되기도 전에 감당할 수 없는 정도의 경제적 압박을 겪게 되고, 다양한 채무관계에 얽히게 되며, 심하게는 어두운 지하세계에 발을 들이게 만드는 이 무시무시한 도박은 본인 명의의 계좌만 있으면 술과 담배보다 훨씬 쉽게 발을 들일 수 있다.


 초기에 아이들이 도박의 세계로 유입되는 유일한 경로는 ‘온라인 사설 도박 사이트’다. 사이트의 주소는 SNS나 온라인 광고로 계속해서 노출되는데, 그 주소를 검색창에 입력하고 회원가입(본인 계좌 필요) 후 사이트 관리자의 승인만 얻게 되면 즉시 가입이 가능한 구조다. 


 사이트에는 여러 종목들이 마련되어 있는데, 대개 아이들은 스포츠베팅으로 첫 발을 들인다. 대부분의 남자아이들은 축구와 농구, 야구 같은 운동 종목 하나에 푹 빠져 살기 마련인데, 운동 경기 시청을 훨씬 재미있게 만드는 스포츠베팅은 그들에게 꽤 매력적인 분야다.


 사이트에 기재되어 있는 계좌로 돈을 보내고 ‘입금 신청’ 버튼을 누른 후 5분 정도만 기다리면 보낸 돈의 액수만큼 포인트가 업데이트가 되며, 그 돈으로 아이들은 베팅하고 싶은 경기들을 골라 두 경기 이상을 묶어 걸면 끝이다. 국민체육진흥공단이 합법적으로 운영되는 프로토 복권보다 높은 배당률을 제공하는 이 사설업체들은 다양한 이벤트와 고객 유치 마케팅으로 멋모르는 아이들을 유혹한다.

사설 도박 사이트 화면


 아이들은 처음 1-2만 원 정도의 푼돈으로 시작한다. 별생각 없이 본인이 응원하는 팀이 승리하면 이기는 쪽에 돈을 걸기도 하고, 많은 경기를 한 번에 묶어 일확천금을 꿈꾸며 무분별하게 베팅하기도 한다. 물론 명백한 불법행위이지만, 이렇게 만 원짜리 하나로 친구들과 함께 공유할 이야깃거리가 하나 생겨나는 것은 크게 우려할 정도의 심각한 일탈은 아니다. 보통의 아이들은 몇 번 돈을 잃다가 ‘인터넷 도박은 절대 돈을 딸 수 없는 구조로 설계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만두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떠한 분야든 발을 똑같이 들여도 적절한 시기에 손을 털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은 항상 존재하는 법이다. 몇몇의 아이들은 꿈을 펼쳐보지도 못한 그 어린 나이에 도박의 나락으로 빠진다.


 [몇몇의 아이]의 대표 유형

 - 푼돈으로 베팅을 하다 운이 좋게 큰돈을 딴 아이
  스포츠베팅사이트는 보통 10경기까지 묶어 돈을 걸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한 경기를 맞추면 1.5배의 금액을 획득한다고 할 때, 만약 10경기를 걸어 적중한다고 가정하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지만) 57.6배, 즉 만원을 걸었다면 576,000원이라는 돈이 통장으로 들어온다. 정말 말도 안 되는 확률이긴 하나, 일 년에 한둘 씩은 꼭 주위에 등장한다. 엄마를 조르고 졸라 받아내는 만원이 단숨에 오십 배가 불어나는 기적. 도박으로 돈을 땄을 때의 그 희열은 웬만한 마약을 할 때보다 훨씬 더 짜릿하다고들 한다. 


 그때부터 아이의 머릿속에는 ‘십만 원 걸었으면 오백칠십육만 원인데.’라는 생각으로 가득 찬다. 본인이 종전에 당첨되었던 확률이 최소 1/1000에서 크게는 1/100000의 1이었다는 사실은 생각조차 하지 못하면서 다시 한번 현실성 없는 확률에 도전장을 내민다. 


 한 번 맛본 그 쾌감에 중독되어버린 아이의 거는 돈, 따는 돈, 잃는 돈의 액수는 갈수록 커진다. 돈은 잃는 이유에 대한 서술은 의미가 없다. 그냥 잃고 만다. 절대다수의 도박꾼의 말로가 비참한 것처럼 그들도 마찬가지다.


 - 본전에 계속 집착하는 아이

 한 번에 크게 따지도, 잃지도 않았지만 계속해서 아름아름 잃다 보니 마이너스 총액이 수십만 원이 넘은 아이들이 이 유형에 속한다. 큰돈을 딴 아이를 도박의 장 안에서 옴짝달싹도 못하게 하는 족쇄가 ‘강렬한 쾌감’이라면 이들이 찬 족쇄는 ‘오기’다. ‘얘도 이렇게 따는데, 나도 언젠간 얻어걸릴 거다.’라는 소망은 아이를 병들게 한다.


 - 스포츠베팅 외의 것으로 영역을 넓혀 다른 도박에도 손을 대는 아이 

  사이트의 배너를 보면 ‘스포츠’ 뒤에 있는 여러 게임들을 볼 수 있다. 사다리(홀짝 게임, 1/2), 달팽이(달팽이 세 마리의 경주를 보고 1등을 맞추는 게임, 1/3), 바카라(뱅커와 플레이어 둘 중 한쪽의 승리에 베팅하는 게임 1/2), 룰렛 등이 그것인데 이 종목에 뛰어드는 순간 아이의 청소년기는 돌이킬 수 없는 망조의 길로 들어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게임을 하는 아이들은 친구들의 돈을 상습적으로 빌리고, 갚지 못해 믿음을 잃고, 스포츠베팅으로 돈을 잃는 빈도보다 훨씬 더 자주 돈을 잃는다. 또한 하루 24시간 내내 매 5분마다 한 번씩 시행되는 게임을 보아야 하기 때문에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시간을 잃는다.


 아이들이 이 영역에 손을 대는 이유는 앞서 말했듯 5분에 한 번씩 10~20초짜리 플래시로 결과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기다리지 않아도 되고(스포츠는 중계 여부도 확실하지 않고 결과를 보기 위해서 몇 시간을 가슴 졸이며 경기를 시청해야 한다.), ‘어차피 똑같은 도박인데 간편한 게 낫다.’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인생을 33% 혹은 50%에 태우는 게임. 따더라도 불법 사이트 측에서 내 계좌로 돈을 입금해준다는 보장도 확실하지 않은 게임이다. (미성년자가 큰 수익을 낸 사실을 사이트 측에서 파악하면 돈을 환급해주지 않을 확률이 높다. 학생은 제3의 호구를 유치할 수 있는 힘도 없고, 해봤자 만 원짜리 몇 장밖에 입금하지 않는 진상이기 때문에, 사이트 측에서도 돈을 들일 이유가 없다. 또한 학생 스스로도 켕겨서 신고하지 못하는 입장에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돈을 순순히 주지 않는다.) 그들은 그렇게 시간, 돈, 인생을 모조리 낭비하며 “아 오늘 얼마 땄다.” 혹은 “후.. 오늘 얼마 잃었다.” 따위의 한심한 무용담이나 늘어놓으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한편 아이의 도박 적중률이 높거나 돈을 많이 잃어 사이트에 공헌한 정도가 높은 경우, 50-100명 정도의 불법 도박 사이트 회원으로 구성된 단체 카톡방의 ‘방장’ 역할, 일명 ‘픽스터’라고 불리는 자리를 제안받기도 한다. 극단적인 케이스로 보이겠지만 ‘픽스터’들은 학교에 예상외로 많다. 이들은 졸업 후에 대부분 그 길로 발을 들이게 되며, 본인이 학창 시절에 속했던 집단보다 몇 갑절은 더 폐쇄적인 집단에 속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다시 태어나지 않고서야 헤어 나올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다른 일탈 유형은 아이가 부모의 눈을 확실히 피한다면 부모에게 별다른 수가 없겠지만 도박과 같이 금전과 결부된 일탈은, 대부분의 아이들이 경제적으로 완전히 부모에게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 있기 때문에 발각하기 쉽다. 사주지 않았는데도 아이가 그들의 용돈으로 구매할 수 없는 물건을 소지하지는 않는지, 용돈을 요구하는 빈도와 액수가 늘어나지는 않았는지, 아이의 계좌 출금 내역에 ‘XX유통’, ‘(주) XX’와 같이 말이 되지 않는 거래내역이 보이지는 않는지(보통 불법 도박 사이트의 예금주명은 평범한 사업체를 가장한다.), 얼핏 보이는 아이들의 핸드폰 속에 시커먼 배경을 뒤로한 사다리나 포커카드가 보이지는 않는지 항상 예의 주시하여야 한다.


 다섯째, 불건전한 이성교제

 몸과 마음이 점점 커가고 남녀가 서로를 이성으로 바라보는 첫 시기. 사춘기 이전에 제대로 된 성 관련 교육을 받지 않았거나, 비정상적인 부부관계(아버지의 가부장적 면모, 부모의 심한 다툼, 어머니의 의부증 etc..)를 보고 자란 아이들의 이성교제는 매우 어둡고 불건전한 확률이 높다. 서로에게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무리한 요구를 하고, 진심 없는 인스턴트식 만남으로 서로에게 상처를 입힌다.


 사실 학창 시절 연애로부터 느꼈던 감정들, 그때 당시의 상실감과 가슴앓이를 돌이켜보면 한없이 시시하고 유치하다. ‘뭐가 그렇게 좋았길래 그때 그토록 힘들었을까.’, ‘왜 그때는 내가 다 큰 줄 알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어린아이들이 서로 좋다고 사귀어도 뭘 알겠냐고, 설마 무슨 일이 있겠냐고 하지만 그 시기의 첫 연애는 가장 순진하고 가장 본능적이며 가장 ‘나’인 연애다. 그래서 무섭다.


 순진해서 무서운 이유는 본인의 모든 것을 다 바치는 연애를 해서다. 서로 행복하기 위해 하는 것이 사랑이지만 맹목적인 헌신과 순종은 한쪽의 많은 것을 앗아간다. 대개 어린 여자아이들이 처음으로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이러한 모습을 보이는데, 이를 악용하는 남자아이들은 본인의 성욕을 채우고 ‘도움’을 가장한 ‘시중’을 요구하기도 한다. 순진하면 순진할수록 아이가 받는 상처의 깊이는 깊다.


 본능적이어서 무서운 이유는 어렸을 때부터(매체나 부모로부터) 보고 자라 어느새 그들 속에 체화된 잘못된 남녀관계에 관한 관념들을 실제로 구현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상대방에게 실례인지도 모르고, 양측 모두를 다치게 하는 어리석은 사고인지도 모르고 일단 실행에 옮긴다. 본능을 손볼 기회가 충분치 않았고 그 본능에 대한 여과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는 사실조차 인지하기 이전이기 때문이다.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소리를 치고 손지검을 하며 상대의 마음을 다치게 하더라도, 혹은 친구들과 본인의 연인에 대한 성적인 험담을 늘어놓으며 시시덕거려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사려 깊지 않기에 매우 무섭다. 


 ‘나’인 연애가 무서운 이유는 ‘우리’를 생각하지 못하는 연애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은 서로에게 의지하고 힘들 때 돕는 건전한 관계를 이어가겠지만 소수의 불순한 아이들의 연애는 ‘나’를 위해 잠시 스스로 ‘우리’의 일부가 되는 모습을 띤다. 내가 목격한 그들의 사리사욕이 개입된 연애는 전혀 정상적이지 않았다. 


 [CASE 1] 

 학교에 한 여자아이가 성적으로 굉장히 개방적이라는 소문이 돌자 그 아이와 한 번 만나보고 싶어 혈안이 된 남자아이들은 줄을 섰다. 줄에 있던 몇몇은 그 여자아이와 사귈 기회를 얻었는데 그들의 연애는 하나같이 한 달을 넘기지 못했다. 그리고 하나같이 남자 측이 그만하자는 말은 먼저 꺼내는 연애였다. 여자아이는 가슴이 아파서 다른 아이를 다시 만나는 악순환의 고리 안에 있었다. 남자아이들은 본인이 속한 집단 안에서 그 아이와 사귀었을 때 둘 사이에 있던 일들을 무용담인 양 소문을 냈고,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여자아이에게는 ‘걸레’라는 수식어가 붙어버렸다. 그렇게 여러 번을 이용당하다 여자아이는 전학을 택했다. 의지할 벗을 찾아 헤맨 가녀린 여자아이의 손에 들린 결과치 고는 매우 혹독했다.


 [CASE 2] 

 부잣집 아들이라 받는 용돈의 금액이 어마어마하다는 소문이 자자한 남자아이가 하나 있었다. 이 시기는 물욕이 성욕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시기라 [CASE 1]의 여자아이처럼 이성이 줄을 서지는 않았다. 하지만 한 여자아이는 이 친구에게 접근해 마음을 주는 척하며 많은 것을 얻어갔다. 남자아이는 등교할 때마다 간식과 선물 같은 것을 그 아이에게 사다 바치고 성탄절과 같은 특수한 날에는 학생의 선에서 감당이 되지 않는 선물을 건넸다. 놀랍게도 그녀는 사귀자는 확실한 합의 없이 그것들을 다 얻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한창 그 둘의 관계를 수상히 생각하던 나는 우연히 그 여자아이의 말을 들었다. 

  “아이 이제 적당히 빨아먹고 버려야지~”

태어나서 처음 순수한 사랑을 하는 그 아이에게 나는 차마 이 말을 알릴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남자아이는 좋아하던 여자아이가 떠나고 정신을 차리는 데 2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들이 과연 양육자로부터 ‘누군가의 마음을 이용하여 얻고자 하는 이익을 꾀하는 방법’에 대해 배웠는가에 대해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다. 그들이 이토록 이기적일 수 있는 이유는 양육자가 ‘누군가를 이용하는 행위’의 그릇됨에 대해 충분히 교육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과거에 본인이 누군가에게 이용당해본 적이 없던 탓에 이러한 행위가 상대방의 가슴을 얼마나 아프게 하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직간접적인 경험의 부족과 성숙하지 못한 태도가 청소년기의 연애에 대입된다면, 앞서 제시한 케이스들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다. 


  마지막, 게임중독

 이전에 열거했던 일탈은 집단화에서 비롯되는 경향이 짙고 주위에 피해를 끼친다는 점에서 공통적이지만, 게임중독은 스스로 빠져서 스스로를 망치는 일탈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어떠한 게임도 하지 않는지라 게임에 중독된 모습을 ‘넥슨과 라이엇 게임즈(LOL)와 같은 기업의 밑거름 역할을 자처하는, 슈퍼 부르주아를 위한 프롤레타리아의 아낌없는 헌신’ 그 이상으로도 이하로도 생각할 수 없다. 하지만 스스로 절제해 가며 건전하게 게임을 하면서 친구들과의 친목을 도모하고 즐거움을 느끼는 아이들을 비판하고 싶은 마음 역시 추호도 없다. 사람들 저마다 몇몇의 취미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분명히 게임도 아이들의 취미활동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도를 넘는 게임이다. 게임중독은 그 어떤 일탈 유형보다 조용하고 천천히 아이의 유년기를 좀먹는다. 컴퓨터 앞에서 마우스와 키보드를 두들긴 것에 비해 잃는 것은 너무나 많다. 건강을 잃고, 시간을 잃고, 추억을 잃고, 학업을 잃고, 대화를 잃는다. 그리고 관계를 잃는다. 유년기에 절대 잃지 말아야 할 수많은 것을 잃어가며 얻는 것은 친구들의 입에서 나오는 탄성과 게임 레벨뿐이다.


 한편 자녀의 게임중독에 부모들이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자녀의 학업성적과 성향을 불문한 일탈이기 때문이다. 놀기 좋아하는 아이들이 서로 모여 집단을 구성하고, 이러한 집단화를 통해 나쁜 행동에 발을 들이며 시작되는 다른 일탈들과 다르다. 학업성적이 매우 뛰어나고 교우관계도 빼어난 아이들도 의외로 많이 게임중독이라는 굴레에 빠지곤 한다. 머리가 좋은 아이들이 게임도 훨씬 잘하기 때문이다. 빠르게 버튼을 두들겨 대기만 하면 되던 옛날 옛적의 비디오 게임을 떠올려서는 절대 안 된다.


 근래 들어 E-sports는 축구나 야구에 견줄 만한 프로스포츠가 되었다. 매년 열리는 게임 월드컵이 존재하고 수많은 젊은이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승리를 위해서는 전략을 세워야 하고, 머릿속으로 모든 경우의 수와 시간을 계산해야 하며, 내가 가진 기술과 상대의 기술 모두를 완벽히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당연히 머리싸움이다.


 대학에 와서 느낀 것인데, PC방에서 하루의 반나절 이상을 보내는 나의 동네 친구들의 게임 레벨 평균치는 서울 상위 대학교로 꼽히는 내 모교 학우들의 평균치보다 한참 낮았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지적능력이 우수한 아이가 게임을 시작하고, 친구들의 감탄을 자아낼 정도의 두각을 나타낸다, 그러다 게임에 중독되어 헤어 나오지 못할 수 있다’는 추론은 무리가 없다. 실제로 공부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아이만 입학할 수 있다는 과학고에 다녔던 나의 친구는 고등학교 2학년 때 게임에 빠져 며칠 전에 4수를 마쳤다. 극성 엄마의 케어 하에 공부를 곧잘 하며 바르게 자라던 또 다른 친구는 고등학교 3학년 때 뒤늦게 게임에 빠져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채 군대로 떠났다. 그리고 그들은 그 당시의 어리석음을 후회하지만 오늘도 역시 무엇에 홀린 듯 PC방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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