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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준혁 Jun 01. 2021

첫 번째 학교

Chapter 1. 경기의 시작 - 탄생 誕生 [두 번째 이야기]

- 첫 번째 학교


 엄마와 아빠는 가게 일로 매우 바빴다. 자연스레 나는 집에 계시는 할머니 손에 맡겨졌다. 그때 나는 모든 아이들이 당연히 할머니와만 함께 살아가는 줄 알았다. 끼니와 공부는 말할 것도 없었다. 잠에 들기 직전까지 할머니의 토닥거림을 느끼다 아침에 눈을 뜨면 나는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할머니의 품에 안겨 있었다. 딱 다섯 띠, 육십 년 차이가 나는 나와 할머니는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였다.


 할머니는 새벽의 어둠이 걷히기 전에 나를 유모차에 꽁꽁 싸매고는 산책을 나가셨다. 일찍이 잠에서 깬 내가 할머니의 눈을 피해 엄마와 아빠가 자는 안방에 들어가기라도 하면, 일을 마치고 새벽에 귀가해 곯아 떨어진 두 사람이 깰까 걱정하신 탓이다. 그렇게 우리 둘은 매일 아침 따뜻한 이불 속 아늑함이 채 가시기도 전에 새벽의 한기를 맞으며 하루를 시작했다.


 어둠이 오롯이 가시고 해가 떠오르면 할머니가 힘들다면서 잠시 쉬시던 우리 집 옆 뒷동산 벤치, 그곳이 내가 다녔던 최초의 학교다. 사람은 살면서 알게 모르게 수없이 배우는데, 그곳이 내가 거쳐온 ‘배움의 터전’ 중에서 내 기억력이 미치는 가장 먼 과거의 장소이다. 네 살 때의 장소가 지금도 어렴풋이 머릿속에 그려지는 것을 보면 우리가 얼마나 꾸준히 그곳을 갔는지 짐작할 수 있다. 


  “아이고 허리야!” 하며 할머니는 벤치에 털썩 주저앉는다. 그리고는 나에게 말씀하신다. 
  “준혁아, 저기 밤색 돌 주워온나~!”


 할머니가 유모차 안에서 혼자 나올 수 없는 나를 꺼내주면, 나는 할머니가 말한 밤색 돌을 찾으러 풀숲을 헤친다. 그곳에는 유난히 딱딱한 황토 덩어리가 많았는데, 그게 바로 밤색 돌이었다. 주워서 가져다드리면 할머니는 그 돌을 가지고 보도블럭에 글자를 쓰셨다. 그러면 나는 할머니가 불러주는 대로 따라 읽었다. 내가 받침 없는 글자를 잘 읽으면 그 다음에는 받침 있는 글자를 알려주셨다. 그것도 익히면 겹받침, 쌍받침을, 그 다음은 쌍자음을 읽게 하셨다.


 때로는 내가 직접 써보는 시간도 주셨다. 항상 내 손은 할머니 손에 들려 있었지만 내가 쥔 돌로 바닥에 크게 쓰인 글씨를 보며 나는 항상 기뻐했다. ‘글자쓰기’보다는 ‘글자 그리기’에 가까웠지만 할머니는 획순, 자음과 모음의 위치, 글을 예쁘게 쓰는 방법까지 하나하나 천천히 내게 알려주셨다.


 엄마와 아빠가 잠에서 깰 때쯤 우리는 집에 돌아와 아침을 먹었다. 식사 후 엄마와 아빠가 출근을 하면 잠시 쉬다 또 다시 수업이 시작된다. 오후 시간에는 할머니가 만드신 단어 카드로 명사의 의미를 익혔다. 가까이에 있는 물건들의 명칭부터 시작하여,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것들을 나타내는 명사까지 알려주셨다. 그 카드 안에는 할머니가 손수 그리거나 스크랩해 놓은 그림들도 담겨 있어 내 이해를 도왔다. 이렇게 나는 또래들보다 일찍 글을 배웠고, 그들보다 일찍 배움의 즐거움을 알아갔다.


 6ㆍ25 전쟁 때, 초등학교를 겨우 졸업하시고 부모님의 농사를 도운 분이 짜놓은 커리큘럼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제법 체계적이었다. 물론 할머니는 지금도 쌍자음, 겹받침, 쌍받침 따위의 문법 용어는 하나도 모르신다. 하지만 오래된 삶에서 묻어나는 지혜와 젊을 적 여러 명의 조카를 키워 낸 경험이 있었기에, 할머니는 젖을 갓 뗀 문맹에게 글자를 가르치는 방법을 알고 계셨다. 태어나서 네 살 때까지, 나는 그 어떤 저명한 노교수보다 더 실력 있는 분께 한글 이상의 지혜와 열정을 배웠다.


 할머니의 교육열은 이것으로 가시지 않았다. 근검절약이 몸에 배어있는 할머니에게 서점에서 파는 교재나 문방구에서 파는 공책은 모두 사치였다. 뒷동산 벤치에서의 아침 공부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현관에서 집어 오는 신문이 나의 한글 교재였고 속에 끼워져 있는 광고 전단지의 뒷면 여백이 바로 우리의 연습장이었다. 요즘 광고 전단은 빳빳한 코팅지에 글씨를 쓸 공간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모양이지만 그때만 해도 투박한 B4 단면 광고지가 참 많았다. 나는 신문 사이에 끼인 그 종이를 찾기만 하면 “할머니, 글씨 쓸 거 왔다!” 하고 소리치며 소파 위를 방방 뛰어다녔다. 즐거웠나 보다. 그것은 스물셋의 내가 아직까지도 기억하는 어릴 적의 소소한 추억 가운데 하나이다.


 아직도 내가 그 옛날을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까지 근 3년간을 매일 똑같은 루틴으로 살았기 때문인 것 같다. 참 행복했던 시기였던지라 나도 모르는 새에 뇌리에 깊이 자리했을 수도 있다. 세세한 기억은 차츰 흐려져 가지만, 확실한 것은 웃음이 끊이지 않았던 나날의 연속이었다는 사실이다. 지금도 아침에 현관에 놓인 신문을 가지고 들어갈 때면 15년 전 옛날, 신문 사이에 끼인 투박한 전단지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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