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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쿡크다스 Apr 21. 2024

이스터, 황금연휴.

호주 37 주차(24. 3. 29.~24. 4. 4.)

3월 29일(금)

오늘부터 달콤한 부활절 연휴가 시작된다. 멀리 로드트립을 갈 정도로 시간 여유가 있는 건 아니라 집에서 30분 정도 떨어진 곳으로 하이킹을 하러 갔다. 하이킹 명소로 유명한 곳은 몇 곳 다녀왔지만 갈 때마다 실망스러웠는데 그럴 만도 한 것이 산이 없는 호주에서 딱히 등산 코스라고 취급할 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었다. 한국으로 따지면 동네 동산 정도도 안 되는 수준이니까. 아니나 다를까 오늘 다녀온 곳 역시 뒷마당 산책하는 수준의, 하이킹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동네 야산만도 못 할 정도였다. 하이킹 장비란 장비는 모조리 들고 온 호주 사람들 하이에서 청바지에 밑창 다 떨어져 가는 운동화 신은 채로 유유자적 여유롭게 걸으니 이건 뭐, 등산 고인 물 느낌이 물씬 나는 거였다.


짧게 끝난 하이킹을 끝나고 이대로 집에 돌아가긴 아쉬우니 근처 공원에 가서 커피 한 잔과 전 날 가게에서 싸 온 브라우니를 먹으며 당 충전을 했다. 오늘은 공휴일이라 커피 값을 평소보다 더 내야 했다. 예전 같았으면 기어코 안 먹었을 텐데 요즘은 즐길 땐 즐기자는 쪽으로 마음이 바뀌어 밖에서도 잘 사 먹는다.


공원은 아이들 노는 데 최적화되어 있어 아이를 동반한 가족이 많았는데 온통 백금발의 백인들이라 마치 영화 겟아웃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이들이 신나게 웃고 뛰노는 것을 보니 마음이 편안하고 기분이 좋아져 계속 그 자리에 있고 싶었다.


집에 돌아와서는 어제 사 온 냉동 오징어로 해물 로제 파스타를 해 먹었다. 원래는 새우 사고 싶었는데 새우가 너무 비싸 아쉬운 대로 오징어로 대신했다. 돈 많이 벌어서 새우 왕창 사 먹어야지.


3월 30일(토)

두 달 전인가 매니저가 그동안 고생했다면서 50불짜리 기프트카드를 선물해 줬다.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는 의미였겠지. 아무튼 기프트카드를 어디다 쓸까, 슈퍼마트 상품권으로 주지 등의 생각만 하고 마땅히 사용할 곳을 찾지 못하다가 오늘 드디어 남편 운동화를 사는 데 사용했다. 남편 운동화는 2년 된 운동화인데 첫 해는 거의 신지 않다가 작년 무렵부터 매일같이 신은 탓에 밑창이 닳고 닳아 스펀지(?)가 보일 지경까지 되었다. 그런데 신발을 사려니 호주에는 abc마트가 없고, 나이키 정식 매장을 가자니 비쌀 것 같아 미루고 미루다 오늘까지 온 것이다.


아침 일찍 동네 공원에서 누워 책 읽다가 쇼핑센터 문 여는 시간 맞춰 도착했는데 부활절이라 그런가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가장 친숙한 브랜드인 나이키 매장에 먼저 가 마음에 드는 신발을 찾았는데 전시 상품만 남아있다고 해서 사지 않았다. 순간 나도 모르게 전시 상품이면 더 할인해주는 거냐고 물어볼 뻔했는데 이 나라에선 그런 말 하는 것조차 실례일까 봐 간신히 입 꾹 닫았다. 한국에서는 가끔 물어보기라도 했는데 남의 나라에선 어느 정도가 적정선인지 잘 몰라 항상 말 조심 하고 있다.


나이키에서는 실패하고 Jb였나 이름은 기억 안 나는데 abc마트 같은 곳이 있어서 구경하다가 마음에 드는 신발을 구매하는 데 성공했다. 마침내 기프트카드를 그곳에서도 쓸 수 있어서 50불 적은 가격으로 남편의 새 신발을 장만할 수 있었다. 그동안 밑창 떨어진 신발 신느라 알게 모르게 고생했을 남편의 발에게 드디어 에어 빵빵한 운동화를 신겨줄 수 있어서 참 행복했다. 호주에서의 첫 운동화 구매 성공이다!


3월 31일(일)

오늘은 마땅히 할 게 없지만 대중교통이 무료인 날이라 대중교통을 타고 시내에 나갔다가 왔다. 생각보다 햇빛이 강렬해 공원 걷다가 금세 지쳐서 벤치에 주저앉았다. 사과 먹으며 당 충전하는데 지난번 남편이 맥도날드에서 사 먹은 초코 소프트콘이 먹고 싶어 맥도날드로 자리를 옮겼다. 남편이 맥도날드 포인트를 꽤 모아 라지 사이즈 감자튀김을 무료로 먹고 나는 아이스크림을 1.5불 주고 먹었다. 지난번 갔던 지점보다 감자튀김도 아이스크림도 훨씬 맛있었고, 심지어 아이스크림에는 초콜릿을 꽂아줬다. 이게 웬 횡제야. 가뜩이나 당 떨어져서 초콜릿이 당기던 차에 아주 운이 좋았다.


맥도날드를 마지막으로 집에 돌아왔고, 책 읽고 만화 보고 놀다가 유튜브에서 본 야매 짬뽕을 만들어 보았다. 바지락은 없어도 오징어는 있으니 미약하나마 해물 짬뽕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배추도 당근도 없어 시원한 맛이 덜 했지만 그래도 얼큰한 국물에 속이 확 풀리는 기분이었다. 가끔 쉽게 쉽게 밀키트로 해 먹었던 곱창전골이 그립다. 쿠팡에서 구매해 참 잘해 먹었는데. 음식도, 그 음식을 먹었던 그 시기도 그립다.


4월 1일(월)

황금 같은 부활절 휴일의 마지막 날이다. 대망의 연휴 마지막 날 첫 번째 목적지는 이름하야 호주 당근. 공학용 계산기가 필요한 남편이 페이스북 마켓 플레이스에서 저렴하게 팔리고 있는 공학용 계산기를 구매하기로 해 북동쪽 동네로 출발했다. 무슨 계획 신도시처럼 말끔하게 다져진 도로와 집들을 보느라 정신없는 사이 한 집 앞에 도착해 거래를 마쳤다.


두 번째 목적지는 유명한 카페였다. 9시에 문을 열고 우리는 9시 10분쯤 도착했는데 내 앞에 10여 명의 사람이 주문 대기 중이었을 정도로 오픈부터 문전성시를 이루던 카페였다. 기념품, 커피콩 등 자체 상품까지 판매하는 대규모 카페였고 밖에서는 드라이브 스루도 운영 중이었다. 야외 좌석에 앉았는데 바람이 너무 많이 불어 커피가 빨리 식은 게 아쉬웠지만 풍경이 정말 아름다워 한참을 넋 놓고 풍경만 바라봤다.


세 번째 목적지는 초콜릿 공장이었다. 공장이라고 해서 투어를 한 건 아니고 그 안에 있는 초콜릿 샵에서 무슨 초콜릿 파나 구경만 했다. 클래식한 초콜릿 바(bar) 보다는 견과류, 각종 과일, 생강, 고추 등 무언가를 초콜릿과 결합한, 내게는 아주 생소해 도전할 용기조차 나지 않는 초콜릿이 많았다. 호주 사람들은 이런 걸 먹는단 말이지? 겨우 찾은 초콜릿 바를 여러 개 구매해 하나는 내가 먹고 나머지는 코워커들 주기로 했다.


4일 내내 돌아다니느라 몸이 꽤나 피곤하다. 오랜만에 출근하려니 싫은데 돈 벌 생각 하니까 기운 난다. 만화나 몇 편 보고 자야겠다.


4월 2일(화)

월요일 같은 화요일이다. 아침에 해가 늦게 뜨는 바람에 알람소리를 듣고도 일어나기 힘든 요즘이다. 간밤에 악몽 꾸다가 깬 바람에 다시 잘 못 자서 피곤함은 덤. 무서운 음악까지 생생히 들렸던 탓에 잠깐 깼을 때 너무 무서웠다.


코워커들에게 어제 산 초콜릿 선물도 하고 바쁜 오전 시간을 보냈다. 부활절을 시작으로 약 2주 간 학교 방학이라 그런가 길에서 학생들이 자주 보이고 아이들을 데려 온 손님들이 꽤 많았다. 다 같이 어디 놀러 가려는 건지 샌드위치 여러 개 사 가는 사람들이 확실히 많아졌다. 그동안 고요한 나날들도 많았는데 동네가 조금 활기를 띄는 것 같다. 물론 아르바이트하는 입장에서는 손님 적은 게 좋다.


남편은 이번 주 tuition free week라고 한 주동안 수업이 없다고 한다.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짧은 방학이니 참 좋겠다, 싶었는데 다음 주가 중간고사라 공부하느라 바쁘다고 한다. 첫 대학원 중간고사, 얼마나 떨릴까. 열심히 노력한 만큼 좋은 결과 있었으면 좋겠다.


4월 3일(수)

가게 커피 머신이 갑자기 망가졌다. 뜬금없는 시간 대에 11잔 단체 주문이 있었고 그 주문을 끝낸 직후부터 시끄러운 소리를 내기 시작하더니 그 소리가 너무 커져 커피를 만들 수 없는 지경이었다. 카페에서 커피를 못 만든다니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싶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매니저에게 말했더니 어디 전화해본다고 하는데 맨날 말만 하고 실행은 안 하는 사람이라 해결이 될는지 모르겠다.


지난주 장을 넉넉히 봤는데도 왜 먹을 게 없는지 냉장고가 텅텅 비었다. 남아있는 재료로 간신히 저녁 해 먹고 나서 남편이 급하게 건전지를 사야 한다길래 근처 타깃으로 출발했다. 쇼핑몰 안에 있는 카페를 보니 마감 30분 전에는 디저트만 팔고 커피 머신은 이미 마감한 것을 볼 수 있었다. 오, 그렇다면 우리도? 우린 매니저랑 보스 눈치 보느라 최대한 오픈하고 있다가 부리나케 마감하는데 다른 카페들은 어떻게 하는지 잘 관찰하고 좋은 건 따라 해야겠다.


그런데 건전지 문제인 줄 알았던 남편의 계산기는 건전지를 바꿔 끼워도 여전히 작동이 잘 안 된다. 5달러의 새 건전지로 남편의 웃는 얼굴을 좀 보려나 했는데 오히려 더 시무룩해졌다.


4월 4일(목)

오전에는 멀쩡하던 커피 머신이 오후가 되니 다시 굉음을 내기 시작해 작동을 멈췄다. 언제까지 이러려나. 매니저는 여전히 감감무소식인데 재촉하지 않으려고 한다. 귀찮으니까.


부활절 및 학교 방학으로 월요일부터 점차 손님이 줄어서 그런가 갑작스럽게 내일 최소인원만 근무하라는 연락이 왔다. 내일 안 바쁠지 바쁠지 어떻게 아냐고 한 마디 하고 싶었는데 그냥 문자에 대답 안 하는 것으로 혼자 분을 삭였다. 당일에 안 바쁘면 한 명 집에 가라고 하면 되지, 최소 인원으로 일 하는 게 얼마나 힘든데. 일단 내일 안 바쁘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


요즘 보고 있는 만화가 너무 재미있어서 좋은데 힘들다. 아직 완결 안 났는데 다 끝내면 어떻게 기다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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