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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명 Jun 22. 2021

런던의 그리움을 잊지 못하는 이유 #1

수많은 도시 중 왜 런던일까?


 사람이라면 누구나 '처음'에 대한 설렘을 가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영국은 내 첫 해외여행 국가는 아니지만, 내가 처음으로 유럽에 발을 내딛게 된 나라다. 16개국을 여행해본 내게 가장 기억에 남는 도시를 묻는다면, 언제나 1순위로 런던을 꼽을 것이다.


 처음이라는 것은 막상 돌이켜보면 별 것 아니면서도, 당시에는 앞으로 지니게 될 어떠한 방향성을 결정짓는 것 같은 중대한 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내게는 히드로 공항과 런던이 그러했다. "신사의 나라, 영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와 같은 안내방송을 들으며, 허공에서 런던을 내려다보면서, 영어권은 처음 와보는데 인종차별을 당하면 어떡하지? 내 영어를 못 알아들으면 어떡하지? 와 같은 실체 없는 걱정들이 먼지처럼 머릿속을 부유했다.


 까다롭기로 정평이 난 히드로 공항 입국심사도 의외로 간단하게 통과한 후, 7일 트래블카드를 충전하고 미리 예약해놓은 숙소로 향하는 튜브를 탔다. 태연하게 앉아가는 현지인들 사이에서 커다란 캐리어를 손에 쥔 내 모습이 뭔가 이 일상에서 혼자만 동떨어진 이방인같이 느껴졌다.


 지하철 출구로 나온 후에 비슷하게 늘어져있는 건물들과 골목 사이를 빙빙 돌았다. 휴대폰을 도둑맞을까 봐 손에 스트랩을 연결해 꼬옥 쥐며 한참을 헤맨 후, 힘겹게 호스텔에 도착해 체크인을 할 수 있었다. 늦은 시간에 도착했기에 가자마자 대충 짐을 풀고, (이후에는 의미 없어지는)자전거 자물쇠로 캐리어를 연결해놓은 뒤 잠에 들기 위해 눈을 감았다. 걱정했던 것보다 혼자 오는 것은 별 거 아니었다고 느끼며. 내일부터 열심히 돌아다니면서 사진도 많이 찍겠다는 들뜬 마음을 눌러 담으며.


 다음 날, 다들 자고 있는 유럽인들 사이에서 혼자만 부지런히 일어나 공용 부엌에서 간단한 조식을 먹고, 방으로 들어와 외출 준비를 마치고, 눈이 마주친 서양인(나중에 대화해보니 네덜란드인이었다)과 '모닝' 이라며 인사를 나누고, 외국에 온 게 실감 나는 아침인사에 기분이 좋아진 채로 호스텔 문 밖을 나섰다.


 본격적인 런던 여행의 시작이었다.


 이때부터 런던의 어떤 매력에 취하게 되어, 수 많은 국가를 돌고 나서도 런던을 향한 그리움 속에서 헤어나올 수 없는 사람이 되었는지 크게 다섯 가지 포인트로 나눠서 소개하고자 한다.




#1 미술관


 

 첫째 날의 일정 중 하나는 '내셔널 갤러리'였다. 한국에서는 발걸음 하지도 않았던 미술관을 유럽에 왔다고 가보다니. 미술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발길 닿는 대로 주욱 돌아보고, '꼭 봐야 한다던' 유명한 화가들의 작품도 구경하기 위해 부지런히 몸을 움직였다.


 신기한 곳이었다. 명화의 앞에서 이젤을 펼치고 자신만의 그림을 펼쳐내는 화가가 있었다. 미술관의 명화 앞에서 또 다른 그림을 그리는 화가라니, 이후에 유럽을 다니며 느낀 바로는 그리 놀랄만한 광경은 아니었지만, 당시 우물 안 개구리였던 내 눈에는 그것마저도 예술을 담고 있는 나라의 멋스러움처럼 느껴졌다. 더 옆에는 단체로 견학이라도 왔는지, 작품 앞에 일렬로 줄지어 누군가의 설명을 듣고 있는 아이들이 있었다. 나는 학교에서 미술시간에 사진으로만 보고 들었던 작품들을, 유럽에서 자라난 아이들은 미술관에서 실제로 보고 배울 수 있겠구나 싶어 새삼스럽게 환경의 차이를 절감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쇠라의 '아스니에르에서의 물놀이'다. 의도하고 향한 곳은 아니었는데, 그저 끌리는 방향으로 돌아다니다 보니 한 전시관에서 딱 마주친 작품이었다. 보자마자 학창 시절에 들었던 '점묘법'이 머리에 스치고 지나갔다. TV에서만 보던 연예인을 우연히 길거리에서 마주친 것 같은 내면의 반가움이 솟아올랐다. 그 앞에서 사진을 몇 장 남기고, 내일이라도 없어질세라 가장자리의 사인까지 구체적으로 바라보며 눈에 담았다.  



 나의 첫 유럽 미술관 탐방은 기대 이상으로 내면의 클래식한 예술 추종의 욕구를 자극했다. 내가 런던에 산다면 일주일에 한 번씩은 이곳에 들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명 작품들을 활용한 기념품샵의 상품들을 작품별로 모아 집에 늘어놓고 싶었다. 이후에 들고 다녀야 할 내 캐리어의 무게를 생각해서 비록 엽서 한 장과 에코백 하나로 끝났지만.


 덕분에 이후의 다른 국가들에서도 일정이 뜨면 계획에 없던 곳까지 검색해가며 미술관과 박물관으로 향했다. 한국에 돌아와서 미대의 이론전공을 수강하기도 하고, 미술관과 미술사조에 관련된 수업들을 이것저것 찾아 듣기도 했다. 유럽에 가기 전에 미리 이런 것들을 알고 가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미련도 가져봤다. 이 모든 것은 내셔널 갤러리에서의 좋은 첫 시작 덕분이라고 여기며, 언젠가 내셔널 갤러리의 신전 같은 입구로 다시 향할 날을 바라본다.



#2 풍경


 영국에서 가장 좋았던 것 풍경은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 번째는 바로 '하늘'이다. 물론 날씨 좋다는 여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영국답게도 내가 머물렀던 일주일 간 반이 맑고, 반은 흐렸으며 갑작스럽게 쏟아지는 폭우도 맞았다. 그래도 화창했던 날에 쏟아질 듯이 가까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던 새하얀 구름 뭉치들이 잊히지 않는다. 한국에 있을 때보다 하늘에 더 닿을 수 있을듯한 기분이었다.


 이런 생각까지 했다.

 '이런 곳에서 나고 자라면서 저런 하늘을 맨날 보면, 없던 예술성도 생기겠다'라는.


 나는 짧게 머물렀을 뿐이기에 실제 영국 지형이 그런 것인지, 그저  기분 탓이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수없이 찍었던 구름 사진들과, 지금도 영국 하면  새파란 자연의 천장이 먼저 떠오르는  보면 강렬했던 기억  하나임에는 분명하다.

 


 두 번째는 '공원'이다. 그때그때 근처의 가장 가까운 곳들을 찾아 참 많이도 누워 있었는데, 내가 영국에 다시 돌아가고 싶은 이유들 중 하나는 바로 파크다. 근처 곳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파크에 누워있노라면 풍경화 속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자연의 느긋함을 향유하는 인물들 중 한 명이 된 것 같았다. 파크에 에코백만 베고 누워서 선글라스를 끼고 맑게 갠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던 장면이 선명하다. 버스를 타고 근교를 가던 중 하이드 파크를 지날 때는 웃통을 벗은 채로 조깅을 하고 있던 영국인이 있었다. 파크에는 말을 타는 사람도 볼 수 있었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강아지와 산책 나온 현지인들도 눈에 띄었다. 도시에서조차 찾아볼 수 있는 숙련된 여유로움이 못내 부러웠다.

 


 세 번째는 '건물'이다. 런던에서 인상적이었던 풍경 중 하나는 바로 '통일성 있는 건물'이었다. 어떻게 보면 건물의 개성이 없다고 느껴질 수도 있겠다. 그러나 건축물 자체가 이국적이고 이질감 있게 느껴지는 관광객인 내게는 그 자체가 하나의 개성이었고, 고전미 가득한 건물들이나 동화에 나올 법한 잘 다듬어진 모양의 집들이 동일한 형태를 갖추고 일자로 늘어져 있는 거리의 경관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여름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인 색색이 편 꽃들의 향이 내가 느낀 풍경에까지 묻어서 더욱 그리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 #2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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