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쓴 특허 명세서, 왜 무기가 되지 못하는가

완벽한 문장, 그러나 무력한 무기

by 이민주

“대표님, 요즘은 특허 명세서도 AI가 써주잖아요.”
T 대표가 자신 있게 말했다.


노트북 화면에는 깔끔한 PPT 한 장이 떠 있었다.


“조성물 정보랑 효능만 넣었는데, 청구항까지 자동으로 나오더라고요.
이 정도면 굳이 변리사한테 맡길 필요가 있을까요?”


나는 화면을 잠깐 들여다봤다.
그리고 천천히 말했다.


“대표님, 보기엔 완성도 높고, 문장도 매끄럽죠.
하지만 그걸 그대로 출원하면 대부분 거절됩니다.
설령 등록이 되더라도, 시장에서는 전혀 무기가 되지 못합니다.”




AI가 잘하는 일과 어려워하는 일


AI의 표현력은 분명 뛰어나다.
정리도 빠르고, 문장도 매끄럽다.
창업자 입장에서는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나?’ 싶을 것이다.


하지만 특허 명세서는 논문이 아니다.
그건 법적 권리 문서이자 시장 경쟁의 전략 설계도다.


따라서 단순히 기술을 설명하는 수준을 넘어,


‘예상할 수 없었던 차별성’을 증명하고

‘회피가 불가능한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


AI는 기존 문서의 패턴을 학습해 문장을 조합하는 데는 능하지만,
법적 판단과 전략적 의도를 반영한 설계에는 약하다.


겉보기엔 완성도가 높지만,
실전에서는 작동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AI는 ‘예상 불가능성’을 설계하지 못한다


“그래도 꽤 그럴듯하던데요?”
T 대표가 되물었다.


나는 조용히 설명했다.
“대표님, 심사관이 찾는 건 단 하나입니다.
‘이건 기존 연구자가 예상할 수 있었는가?’입니다.”


AI는 보통 이렇게 쓴다.

“성분 A와 B를 혼합했을 때 항산화 효과가 나타났다.”


문제없어 보이지만, 심사관의 시선은 다르다.

“A도 항산화, B도 항산화. 그렇다면 당연한 결과 아닌가요?”


결과는 진보성 없음으로 거절이다.


하지만 전략가는 다르게 쓴다.


“A 단독 효과는 5%, B는 6%.
A+B 조합은 20%로, 단순 합(11%)을 넘는 예상 불가능한 시너지 효과를 보였다.”


이건 단순한 문장 차이가 아니라,
법의 논리를 아는 사람이 설계한 언어다.


AI는 이런 전략적 구조를 아직 완전히 구현하지 못한다.
결국, AI에게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의 경험과 판단이 필요하다.


그걸 설계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면,
AI가 만든 특허는 전장에서 힘을 잃는다.




데이터 없는 문장은 힘이 없다


특허에서 데이터는 주장과 다르다.
데이터는 곧 증거다.


하지만 AI가 만든 문장에는 종종 근거 없는 확신이 들어 있다.


“본 조성물은 피부 보습 효과를 향상한다.”
“혈당 개선에 도움을 준다.”


말은 멋지지만, 수치도 없고 비교군도 없고 통계도 없다.
심사관의 질문은 단 하나다.

“그래서, 증거는요?”


전략가는 이렇게 쓴다.

“28일 후 보습지수 35% 향상,
대조군 대비 p <0.05 수준의 통계적 유의성 확보.”


이건 데이터 기반의 논리적 주장이다.
AI는 이런 실험 데이터의 구조를 ‘논리적으로 설계’하기보다,
단순히 문장을 유려하게 만드는 데 집중한다.


결국, 문장은 완벽하지만
증거가 없는 문장은 시장에서 무기 역할을 하지 못한다.




청구항, 그 허술한 칼날


“AI가 청구항까지 써주던데요?”
T 대표가 말했다.


나는 미소를 지었다.
“대표님, 특허에서 진짜 권리가 되는 건 청구항입니다.
이게 허술하면, 등록돼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AI가 만든 청구항은 대체로 이렇게 나온다.

“성분 A와 성분 B를 포함하는 조성물.”


언뜻 넓어 보여도, 실상은 위험하다.


심사관은 이렇게 본다.

“A도 좋고, B도 좋으니 둘을 같이 쓰는 건 너무 당연하지 않나요?”


결과는 다시 ‘예상 가능’으로 거절이다.


전략가는 다르게 쓴다.

“A는 20~50% 범위 포함,
A:B = 1:1.5~3.0에서 현저한 효과 확인됨.”


이건 단순한 문장이 아니라 법적 설계의 수준 차이다.
AI가 만든 청구항은 칼의 모양은 있지만,
날이 빠진 칼과 같다.




AI와 사람의 협력 구조


그렇다면 AI는 필요 없을까?
그건 아니다.
AI는 여전히 탁월한 조력자다.


관련 논문과 데이터 탐색

기존 특허의 구조 분석

반복 문구 초안 작성

키워드 기반 조합 탐색


이런 영역에서 AI는 사람보다 빠르고 정확하다.
문제는 누가 그 결과를 전략적으로 해석하느냐다.


AI는 표현을 돕고,
사람은 방향을 잡는다.
AI는 속도를 높이고,
사람은 법적 무게를 만든다.


특허의 문장은 AI가 쓸 수 있지만,
특허의 전략은 사람만이 쓸 수 있다.




창업자가 던져야 할 네 가지 질문


나는 T 대표에게 말했다.


내 명세서는 단순한 설명문인가, 전략 문서인가?

데이터는 수치·비교군·통계로 설계돼 있는가?

청구항은 회피를 막는 구조로 짜여 있는가?

나는 AI에게 초안을 맡기되, 전략 방향은 직접 설계하고 있는가?


T 대표는 고개를 숙였다.
“확실히, 문장만 보고 안심했던 것 같습니다.”




AI는 도구, 전략은 사람이다


“대표님, AI는 훌륭한 비서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장수가 되려면 전략이 필요합니다.


특허는 결국 데이터, 청구항, 전략의 합으로 완성됩니다.
AI는 그중 ‘표현’을 돕지만,
‘판단’과 ‘설계’는 사람의 몫입니다.


AI가 만든 문장은 빠릅니다.
하지만 시장을 지키는 특허는 사람의 판단에서 태어납니다.”



오늘의 정리

AI는 표현의 전문가지만, 전략의 설계자는 아니다.

특허 명세서는 논문이 아니라 시장 경쟁용 설계도다.

데이터·범위·진보성은 사람이 판단해야 완성된다.

AI는 조력자이고, 방향을 정하는 건 인간의 역할이다.

특허의 속도는 AI가, 무게는 사람이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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