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이유식도 조성물 설계다
‘이유식을 또 안 먹네.’
익숙한 장면이지만, 여전히 마음 한구석이 무너졌다. 나는 한참을 아이의 숟가락을 들었다 놓았다 하며 생각했다. ‘왜 이렇게 안 먹을까? 배가 부른 걸까, 맛이 없나?’
하지만 그날, 내 머릿속에는 전혀 다른 질문이 떠올랐다.
‘혹시… 이건 조성물 설계가 잘못된 건 아닐까?’
나는 대학원 시절 세포를 다루며 조성물을 설계하는 실험을 했다. 어떤 물질을 얼마나 넣느냐, 어떤 조건에서 반응시키느냐에 따라 결과는 전혀 달라졌다.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오면 가설을 다시 세우고, 변수를 조정하며 설계를 수정했다. 그 과정은 지루했지만 동시에 창의적이었다. 매번 달라지는 결과 속에서 ‘왜?’라는 질문이 나를 성장시켰다.
그리고 지금, 내 앞에는 실험실 대신 식탁이 있다. 아기 의자에 나란히 앉은 두 아이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들의 표정, 움직임, 그리고 아주 미세한 반응 하나하나가 내게는 세포의 반응만큼이나 중요한 데이터였다.
그날부터 이유식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었다. 아이의 하루를 설계하는 나만의 관찰 노트, 그리고 ‘사랑의 조성물’이 되었다. 이유식 한 숟가락은 아이의 몸과 마음이 세상과 처음 만나는 통로였다. 내가 연구실에서 다루던 조성물이 생명과 반응했다면, 지금 내 손끝의 이유식은 두 아이의 ‘세상을 배우는 감각’과 반응하고 있었다.
아이는 말을 하지 않지만, 매 순간 신호를 보낸다. 숟가락을 밀어내는 손짓, 입술을 꼭 다무는 표정, 겨우 한 입 삼키고 찡그리는 눈빛. 이 모든 것은 실험실의 그래프보다 훨씬 더 풍부한 피드백이다.
예전엔 이런 반응이 두려웠다. ‘이걸 또 안 먹네… 내가 뭘 잘못했을까?’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시선을 바꿨다. ‘거부’는 ‘실패’가 아니라, ‘데이터’였다. 그 표정과 몸짓은 나에게 무언가를 알려주는 언어였다. 나는 아이의 반응을 하나하나 기록했다.
“감자는 잘 먹었지만, 단호박은 표정이 굳었다.”
“온도가 너무 뜨거웠을 때는 고개를 돌렸다.”
“같은 재료라도 질감이 바뀌면 먹는 양이 달랐다.”
이 작은 기록들이 쌓이자, 나는 점점 더 이해하게 되었다. 문제는 아이가 아니라 설계자인 나의 시선이었다. 결국 이유식은 ‘먹이기’가 아니라 ‘읽기’였다. 아이가 보내는 신호를 읽고, 그에 맞게 나를 조정하는 일. 그건 과학의 영역이면서 동시에 사랑의 영역이었다.
조성물 특허를 출원할 때는 성분의 종류, 함량, 배합비, 안정성, 용도까지 정확히 기재해야 한다. 모호함은 허락되지 않는다. 구체적이고 명확해야 한다. 육아도 다르지 않았다. 아이에게 주는 이유식은 매일 새롭게 설계되는 ‘생활의 연구’였다.
나는 어느 날부터 이유식 일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오늘의 재료, 조리 온도, 질감, 반응, 그리고 아이의 표정까지. 처음엔 단순한 기록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건 하나의 보고서가 되었다.
“오늘은 쌀죽보다 단호박죽의 반응이 좋았다.”
“처음 먹는 식재료는 오전에 시도할 것.”
“하루 두 번 먹이는 건 아직 이르다.”
그 노트는 단순한 체크리스트가 아니라, 내가 아이에게 보내는 작은 논문이자 사랑의 설계서였다. 하루의 이유식을 설계하는 일은 아이의 ‘미래 식습관’을 미리 그려보는 일과도 같았다. 단 한 숟가락을 위해 나는 수없이 설계하고, 수정하고, 다시 시도했다.
생각해 보면, 이유식은 엄마의 첫 번째 ‘지적 설계’다. 먹는 것에 담긴 사랑, 그 사랑을 구조화하려는 시도. 그게 바로 이유식이라는 이름의 조성물이다.
사람들은 육아를 감정의 전쟁이라고 말한다. 울음과 분노, 피로와 미안함이 얽혀 있는 감정의 미로.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육아는 감정만으로 버틸 수 없는, 끊임없는 설계의 과정이라고.
아이의 수면 루틴을 세우고, 식사 시간을 기록하고, 놀이의 순서를 조율하며 나는 하루를 ‘관찰 가능한 실험실’처럼 운영했다. 물론 그 실험실에는 변수가 너무 많았다. 갑작스러운 발열, 예고 없는 성장통, 그리고 쌍둥이의 ‘동시 울음’. 하지만 그 모든 혼란 속에서도, 데이터를 쌓듯 하루를 관찰하면 감정에만 휩쓸리지 않고 상황을 해석할 수 있었다.
육아는 감정이 아니라 지속적인 관찰 시스템이다. 어제의 패턴이 오늘의 단서가 되고, 오늘의 피드백이 내일의 설계를 바꾼다. 이 반복의 구조 속에서 나는 ‘엄마로서의 나’와 ‘연구자로서의 나’를 처음으로 하나의 사람으로 통합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육아는 더 이상 버티는 일이 아니었다. 그건 내가 주체적으로 설계해 가는 지식의 과정이었다.
육아는 과학이 아니다. 그보다 훨씬 복잡하고, 훨씬 섬세하다. 하지만 ‘과학자처럼 생각하는 법’을 배우면 우리는 아이의 하루를 훨씬 정확히 들여다볼 수 있다. 그 작은 피드백 하나도 어떤 논문보다 깊은 의미를 담고 있을지 모른다. 오늘도 나는 이유식을 만든다. 재료를 고르고, 배합하고, 온도를 체크하고, 반응을 기록한다.
누가 알겠는가. 이 작은 조성물 설계 안에서 내 아이의 세계가 자라나고 있는지도. 그리고 언젠가 아이가 나보다 먼저 숟가락을 들 날이 오면, 나는 그 순간을 또 다른 설계의 완성이라 부를 것이다. ‘먹였다’가 아니라 ‘함께 자랐다’고 말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실험의 결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