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엄마는 무너지지 않는다 (2)

#2. 일과 삶이 부딪힐 때, 연결의 힘

by 이민주

“엄마, 오늘은 회사 안 가면 안 돼?”
아이가 네 살이었을 때, 출근 준비를 하던 내게 조심스럽게 건넨 말이었다. 양말을 고르다 멈춘 아이의 눈에는 아직 시계도 모르는 시간 감각이 담겨 있었고, 그 안엔 한 사람의 삶을 붙잡는 질문이 숨어 있었다.


나는 잠시 멈칫하다가 웃으며 말했다.
“오늘은 가야 해. 대신 엄마는 늘 너를 제일 먼저 생각해.”
말은 그렇게 했지만, 마음 한쪽에서 잔잔한 파문이 일었다.
‘나는 정말 아이를 제일 먼저 생각하고 있는 걸까?’
‘일과 삶은 왜 늘 충돌하는 걸까?’


그날 이후, 나는 매일 이 질문 앞에 서 있었다. 아이를 품에 안고도 메일을 확인하고, 업무를 하면서도 아이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삶은 분명 하나인데, 사회는 나를 둘로 나누려 했다. ‘일하는 나’와 ‘엄마인 나’. 그 경계선 위에서 나는 늘 흔들렸다.



충돌은 필연일까


워킹맘의 하루는 늘 시험 같다. 출근 전엔 등원 전쟁, 퇴근 후엔 육아 전투. 그 사이에서 나의 하루는 언제나 초 단위로 쪼개진다. 아이의 요구, 직장의 일정, 그리고 집안의 루틴이 겹쳐질 때마다 내 마음은 여러 방향으로 찢겨나갔다.


이 모든 시간을 ‘정상적으로’ 버틴다는 건 처음부터 불가능한 미션이었다. 가끔은 중요한 미팅이 있는 날, 아이의 열이 오르고 회의 도중 울려오는 전화 한 통이 나를 현실로 불러낸다. 그 짧은 통화 안에서 나는 직장인과 엄마, 두 정체성 사이를 오가야 했다.


일을 멈추면 미안했고, 아이를 두고 오면 죄스러웠다. 그날은 대체로 둘 다 완벽히 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 실패감은 고스란히 나를 향했다.
“일도, 육아도, 왜 이렇게 안 되지?”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하루가 두 개의 세계로 나뉘어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 구조 자체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애초에 이건 개인의 능력 문제가 아니구나.’

나를 계속 몰아세운 건 누구보다 나 자신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분리하려 했기에 부딪혔다


한동안 나는 일과 육아를 철저히 분리하려 했다. 회사에서는 완벽한 전문가, 집에서는 헌신적인 엄마. 두 역할을 정확히 나누면 오히려 더 효율적일 거라 믿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내 안의 에너지는 빠르게 고갈됐다. 회사에서 최선을 다한 날일수록 집으로 돌아오면 말수가 줄고 표정이 굳었다.
‘나는 왜 이렇게 피곤할까?’
그 이유는 간단했다. 경계를 나누는 일은 곧 나를 쪼개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업무 중에도 아이가 떠오르고, 아이와 있을 때도 메일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몸은 하나인데, 마음은 둘로 나뉘어 있었다. 삶은 통합되지 않은 채, 늘 어딘가 불완전했다.


그때부터 생각을 바꿨다.
‘이 둘은 충돌하는 게 아니라, 연결될 수 있는 게 아닐까?’
일과 육아를 분리하려고 애쓰는 대신, 두 세계를 넘나드는 자신만의 리듬을 찾기 시작했다.


그건 완벽한 균형이라기보다 현실 속에서 계속 미세하게 조율되는 ‘살아 있는 설계’였다. 누군가에게 멋져 보이는 하루보다 나에게 진실한 하루를 만드는 일, 그게 내가 내린 새로운 정의였다.



연결은 곧 설계다


내가 처음 바꾼 건 기대치였다.

‘완벽한 워킹맘’이라는 환상을 내려놓았다. 모든 걸 잘하려 하기보다
하루 중 내가 가장 집중할 수 있는 시간대에 에너지를 몰아주기로 했다.


출근 전 20분은 아이와 이야기하는 시간, 퇴근 후 40분은 휴대폰을 멀리 두고 온전히 놀아주는 시간. 짧지만 진짜로 연결되는 순간을 만들고 싶었다. 그 20분과 40분이 쌓여서, 하루의 균형을 만들어 주었다.


두 번째는 가치관의 통합이었다.
일과 육아를 따로 두는 대신, ‘하나의 삶’이라는 전제 아래에서 다시 구성했다. 아이를 키우며 배운 관찰력과 인내는 고객의 발명을 다루는 방식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고, 업무 중 얻은 통찰과 논리 구조는 아이의 질문을 받아줄 때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서로 다른 세계에서 배운 경험이 예상치 못한 곳에서 서로를 지탱했다. 아이에게 배운 인내는 고객과의 협의 자리에서, 업무 중 배운 침착함은 아이의 떼쓰는 순간에서 나를 살려냈다.


이제 나는 안다. 설계란 완벽한 구조를 세우는 일이 아니라 그날의 변수에 맞게 삶을 다시 조율하는 기술이라는 것을. 연결은 단순히 두 세계를 이어 붙이는 일이 아니다. 하루의 결을 따라가며, 자신의 리듬을 새로 그려내는 일이다.



일과 삶은 ‘적’이 아니다


“그렇게 연결하면 오히려 더 피곤하지 않아요?”
누군가 이렇게 묻는다. 하지만 내 대답은 명확하다.
“연결은 피로가 아니라 해석이에요.”


일과 삶은 서로의 적이 아니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나를 끌어당기는 두 힘이 결국 한 방향으로 나를 성장시키고 있었다. 하루라는 구조 안에서 이 둘은 서로를 보완한다. 기록은 감정을 붙잡아주고, 루틴은 일상에 질서를 준다. 그리고 연결된 관점은 일과 육아를 동시에 바라보게 해 준다.


나는 여전히 바쁘고, 여전히 실수도 한다. 하지만 그 모든 순간을 덜 미워하게 되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내가 쌓아 올린 하루의 리듬 속에서 ‘충돌’은 더 이상 싸움이 아니라 대화가 되었다.


때로는 일에 몰입하는 내가 아이에게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고, 아이의 웃음이 다시 내 일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이렇게 연결된 삶은 서로를 지치게 하지 않고, 오히려 서로를 살아 있게 만든다.



연결 이후의 하루


아침, 아이를 안고 말한다.
“엄마는 오늘도 일하러 가. 네가 준 힘으로.”
그 말에는 미안함보다 다짐이 담겨 있다. 일은 나를 위한 일이기도 하고, 아이를 위한 일이기도 하니까.


사무실의 컴퓨터를 켤 때마다, 나는 다시 다짐한다. 오늘의 나는 두 세계를 오가는 유랑자가 아니라, ‘하나의 삶’을 설계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삶의 경계 너머에서, 나는 오늘도 연결을 택한다. 그리고 그 연결 속에서 내 일은 조금 더 따뜻해지고, 내 삶은 조금 더 단단해진다. 일과 삶이 충돌하지 않는 그 순간, 나는 비로소 나답게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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