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세 개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법
“쌍둥이세요?”
유튜브 채널명을 보고 누군가 내게 물었다. ‘둥이변리사’라는 이름 때문이었다. 쌍둥이 자매냐는 질문이었겠지만, 나는 웃으며 말했다.
“아니요. 저는 쌍둥이 엄마예요.”
이 이름을 만든 건 2020년이었다. 육아휴직을 마치고 다시 ‘나답게’ 살고 싶다고 결심했던 해. 두 아이를 돌보며 멈춰 있던 시간들이 끝나갈 무렵, 나는 조용히 나에게 물었다.
“나는 누구인가?”
그 질문은 간단하지 않았다. 이름표처럼 붙은 직업만으론 내 삶을 설명할 수 없다는 걸, 그때 처음으로 깊이 실감했다.
내 삶엔 세 개의 이름이 있다. 변리사, 엄마, 그리고 기록자. 이 이름들은 내 역할을 나누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나라는 사람을 입체적으로 구성하는 조각들이다.
첫 번째 이름, 변리사. 법률과 기술의 경계에 서서, 누군가의 아이디어가 권리가 되도록 돕는 사람. 이공계 실험실에서 연구하던 내가 인생의 방향을 바꾸며 선택한 길이었다. 짧고 밀도 높은 시간을 거쳐 ‘이공계 고시’라 불리는 자격시험을 통과했고, 그 이후부터는 상상 속의 발명을 현실의 권리로 바꾸는 일을 해왔다.
두 번째 이름은 엄마다. 그것도 쌍둥이의 엄마. 성격도, 반응도 다른 두 아이와의 하루는 감정의 롤러코스터와 같다. 기쁨과 분노, 무력감과 회복이 한날한시에 오가는 감정노동자의 일상. 하지만 그 속에서 나는 조금씩 단단해졌다. 세상의 어떤 직함보다 무게감 있는 이름. 내가 지켜야 할 삶의 가장 깊은 곳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은 기록자. 처음엔 하루 10분, 글 몇 줄로 시작했다. 소소한 일상, 사라지는 생각, 감정을 붙잡고자 하는 시도. 그러다 보니 어느새, 기록은 단순한 습관을 넘어서 내 삶을 붙잡아주는 언어가 되어 있었다. 쓰는 행위는 나를 정리하게 했고, 정리된 언어는 다시 나를 이끌어주었다.
처음엔 이 세 이름이 따로 존재하는 줄 알았다. 출근할 땐 변리사 모드, 아이들과 있을 땐 엄마 모드, 밤이 되면 글 쓰는 사람으로 전환. 정체성을 그때그때 갈아입는 듯한 삶. 하지만 어느 순간, 나는 이 셋이 충돌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다.
오히려 서로에게 에너지를 주고받는다는 걸.
육아 속에서 배운 공감력은 고객의 발명을 이해하는 데도 쓰였다. 업무의 긴장과 스트레스는 기록을 통해 정리되고 해석되었다. 그리고 그 기록은 다시 육아와 일에 명료함을 더해주었다.
정체성이 분리된 게 아니라, 하나의 나를 중심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 겹치는 것이 아니라 겹겹이 쌓이는 것. 그것이 내가 경험한 확장의 시작이었다.
사람들은 종종 이렇게 묻는다.
“워킹맘이세요?”
“그렇게 바쁜데, 글은 언제 쓰세요?”
예전엔 이 질문이 당혹스러웠지만 지금은 가볍게 웃으며 말한다.
“세 가지 일을 해요. 그리고 그게 저를 더 저답게 만들어줘요.”
엄마이기에 감정의 결을 읽으려 노력했고, 변리사이기에 문제를 단순하게 구조화할 수 있었으며, 기록자이기에 그 모든 시간을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낼 수 있었다.
세 개의 이름은 서로를 해석하고, 보완하고, 연결한다. 충돌이 아닌 확장. 경계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경계 너머까지 나아가는 삶.
오늘도 나는 하루라는 여백에 작은 점 하나를 찍는다. 그 점은 누군가에겐 사소해 보일지 몰라도, 나에겐 의미 있는 시작이다. 그 점이 쌓여 선이 되고, 그 선이 모여 나라는 사람을 설명하는 문장이 된다.
변리사, 엄마, 기록자.
나는 오늘도 세 개의 이름으로 살아간다. 그리고 그게, 꽤 괜찮은 삶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