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AI가 낸 답은 거의 항상 맞아 보인다. 논리적으로 어긋나지 않고, 통계적으로도 그럴듯하다. 그래서 우리는 점점 더 그 답을 신뢰하게 된다. 문제는 그 ‘맞음’이 언제나 안전하지는 않다는 점이다.
답 자체만 놓고 보면 흠잡을 데가 없다. 하지만 그 답이 만들어낸 결과가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었을 때, 관계가 어긋났을 때, 상황이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을 때 문제가 시작된다. 그다음 장면을 누가 감당하는가라는 질문이 남는다.
AI는 그다음 장면에 등장하지 않는다. AI의 답은 결과를 만들어내지만, 그 결과를 살아내는 주체는 아니다. 이 차이는 작아 보이지만, 사실은 전혀 다른 세계를 가리킨다.
우리는 오랫동안 정답을 맞히는 사람을 유능하다고 불러왔다. 시험에서도, 업무에서도, 평가에서도 정확함은 언제나 가장 큰 미덕이었다. AI는 이 미덕을 거의 완벽하게 구현한다. 흔들리지 않고,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며, 언제나 가장 합리적인 답을 제시한다.
그래서 더 위험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정답’이라는 이름으로 책임을 뒤로 미루기 쉬워지기 때문이다. “이게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었습니다”, “데이터가 이렇게 나옵니다”, “대부분 이 방법을 씁니다”라는 말들은 틀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 말들 뒤에는 책임질 사람이 서 있지 않다. 결과가 좋을 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결과가 좋지 않을 때, 그 말들은 아무도 보호해주지 않는다.
책임은 언제나 말이 아니라 사람에게 돌아온다. 그래서 나는 요즘 결정을 내릴 때 정답보다 먼저 하나의 질문을 떠올린다. 이 선택의 결과가 내 이름으로 남아도 괜찮은가라는 질문이다.
AI의 답은 익명이다. 어디에도 이름이 없다. 하지만 인간의 결정에는 항상 얼굴이 붙고, 그 얼굴은 다시 그 사람을 마주해야 한다. 그 사실이 결정을 무겁게 만든다.
책임은 늘 불편하다. 속도를 늦추고, 확신을 망설이게 만든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책임을 시스템에 넘기고 싶어진다. AI가 추천했으니까, 알고리즘이 그렇게 말했으니까라는 말 뒤에 숨고 싶어진다.
하지만 그 순간, 우리는 결정에서는 빠져나올 수 있을지 몰라도 결과에서는 빠져나올 수 없게 된다. AI는 선택을 도와줄 수는 있어도, 선택의 무게를 나눠 갖지는 않는다. 그 무게는 끝까지 사람에게 남아 있다.
이 차이는 우리가 일을 대하는 방식 자체를 바꾼다. AI 시대의 일은 정답을 찾는 경쟁이 아니라, 책임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과정이 되어간다. 무엇을 아느냐보다, 무엇을 떠안을 수 있느냐가 중요해진다.
이 변화는 전문직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회사에서, 가정에서, 인간관계 속에서 우리는 이미 비슷한 장면들을 겪고 있다. 추천 시스템, 평가 지표, 평균값은 대부분 틀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 기준을 따른 결과로 누군가 상처를 입었을 때, 관계가 멀어졌을 때, 그 책임은 결국 우리에게 돌아온다. 그래서 책임은 언제나 효율의 반대편에 서 있다. 효율은 빠르게 답을 내놓지만, 책임은 천천히 생각하게 만든다.
효율은 과정을 생략하지만, 책임은 과정을 견디게 한다. 나는 점점 더 이 생각을 하게 된다. 책임을 지는 선택만큼은 아직 사람의 마지막 영역으로 남아 있다는 생각을.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책임을 대신 지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책임이란 결과를 떠안는 행위이자, 관계를 유지하려는 의지이기 때문이다. 그 의지는 계산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책임을 진다는 건 틀릴 가능성을 함께 끌어안는 일이다. 그래서 불안하고, 그래서 느리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사람은 다시 사람으로 남는다.
나는 이제 정답을 맞히는 것보다 이 선택을 끝까지 감당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AI가 내린 답 위에 내 이름을 올려도 괜찮은지, 그 결과를 다시 설명해야 할 날이 와도 도망치지 않을 수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 질문을 통과한 선택만이 비로소 내 결정이 된다. AI는 틀리지 않는다. 하지만 책임지지도 않는다.
그래서 이 시대에 사람이 해야 할 일은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정답의 결과를 끌어안는 일인지도 모른다. 나는 요즘 어떤 선택을 하고 있는가. 그 선택의 결과 앞에, 나는 내 이름을 남길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