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세미꽃을 보고 쓰다
지금 내 나이쯤이었지 싶은데, 그 시절 엄마들은 왜 다들 똑같았는지. 단체로 날 잡아서 미용실 의자에 앉은 것마냥 한결같은 빠글빠글 머리였던 거다. 빗은커녕 손가락도 안 들어갈 듯 빽빽한 컬은 한 달쯤은 거뜬히 유지되었다. 그러고도 몇 주쯤 지나 미용실 크루 중 한 아줌마가 입을 열기 시작하면 머리하는 날이 도래했다는 뜻이었다. 대개 이런 대사였다. “머리가 완전 쑤세미야!”
수세미라니. 설거지할 때 쓰는 그 녹색의 보풀 엉긴 천떼기? 영문을 몰라 무슨 말이냐고 묻는 얼라의 물음을 다들 무시했으니 오랫동안 그 대사는 작전 암호마냥 미스테리하기만 했는데, 어느 날엔가 동생네 다니러 온 시골 사는 이모가 비밀을 알려주었다. 수세미라는 식물이 있다고!
미스테리는 풀렸고 수세미가 그 수세미에서 온 이름이라는 지식도 덤으로 얻었으나, 수세미라는 식물이 뭔지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인터넷도 없던 때고 식물도감 따위를 찾아볼 깜냥도 없었다. 그냥 그런 게 있나보다 하고 몰라도 사는 데 지장 없는 수세미의 존재를 잊고 살았다.
서른 즈음에 처음으로 읍 단위 마을에 살게 되었는데, 거기엔 오일장이라는 게 있었다. 오 일에 한 번 열면 장사하는 사람들은 나머지 사 일은 노는 거야? 쓸데없는 걱정을 하며 구경 갔다. 장터국밥이니 국수니 뭐든 사먹어 보겠다고 현금을 챙겨서 갔다. 거기서 발견했던 거다. 소쿠리에 소복하게 담긴 처음 보는 식물. 녹색의 빠글빠글 봉긋봉긋 모양새에서 옛날 엄마와 친구들 머리를 보았고, 촌년은 유레카를 외쳤다. “찾았다, 수세미!”
그땐 너무 흥분해서 못 봤다. 소쿠리 뒤에 퍼지고 앉아 고구만지 뭔지 줄거리를 다듬던 할매가 친절하게 써놓은 상품명.
”보로꾸(브로콜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