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라보엠>

보헤미안 예술가들의 사랑

by 준희

학교 과제때문에 관람하고 작성한 후기이지만 기록해두고 싶어서 여기에도.



요즘 급 오페라에도 관심이 생겼는데, 얼마전에 예술의 전당에서 오페라 갈라 콘서트를 보고 온 후에 라보엠이라는 작품에 대해 특히 관심이 생겼다. 나는 특정 극을 보는 우선순위가 음악인데, 라보엠은 푸치니의 음악이 정말 아름다워서 내 마음에 들었던 거 같다.



La Boheme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은 ‘보헤미안’인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테마로 담고 있는 작품이다. 가난하지만 자유분방한 보헤미안 예술가들의 사랑 이야기와, 그런 환경 속에서의 삶의 역경 등 다양한 주제가 보여진다. 우선, 이번 기회에 한국 국립 오페라단의 공연 실황 영상과 더불어 2008년에 독일에서 필름 오페라로 제작된 버전도 함께 관람하였다. (오페라도 필름 형식으로 제작될 수 있다는 것은 이번 기회에 처음 알았다.) 한국 사람들이 하는 버전과 외국 사람들이 하는 버전을 모두 관람하고 나니 소소하게 비교해서 보는 재미도 있어서 만족스럽게 관람하였다. 수많은 오페라 중에 특히 라보엠이라는 작품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이 극의 메인 곡이라고도 할 수 있는 ‘Che gelida manina(그대의 찬 손)’이었는데, 이 곡을 선두로, 극을 다 감상하고 나니 푸치니의 음악이 왜 위대하다고 평가받는지도 단박에 이해할 수 있었다. 레치타티보는 물론 앙상블들과의 합창 등의 곡들이 푸치니 특유의 아름다운 선율의 현악기로 이루어지니 극 분위기와도 잘 어울리고 극을 한층 더 아름답게 느껴지게 만드는 듯 했다. 내용도 무겁지 않고, 프랑스 배경의 극인데도 이질감이 없는 내용과 소재를 사용해서 정말 편하게 관람한 거 같다.



너무 이국적이거나, 공감대가 없는 소재의 극을 보면 이입하기 힘들 때가 많다. 오페라는 더구나 한국이 아닌 해외에서 제작된 것이 대다수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역사적 배경이나 사회적 배경에서의 차이가 있기에 이해가 어려울 수도 있는데, 이 작품은 ‘사랑'이라는 보편적 소재를 평범한 사람들의 시선에서 표현한 작품이라서 더욱이 마음에 들었던 거 같다. 사랑이라는 보편적 소재를 다뤘지만, 진부하지 않고 적절히 기승전결도 갖추고 있는 스토리라인에, 좋은 음악들이 더해지니 안 좋을 수가 없는 작품이었다.. 누구에게나 다가갈 수 있는 보편적 소재와 주제에, 전 연령층이 관람해도 손색없는 그런 작품이기 때문에 라보엠이 지금까지도 전세계적으로 회자된다고 느꼈다. 제작된 지 100년이 넘은 작품이지만 지금까지 좋은 작품이라고 평가받는 데에는 확실히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오페라를 주로 관람하지 않는 관객들에게도 울림을 주고 흥미롭게 다가가야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문화예술, 공연예술로서의 그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오페라에 문외한이었던 나에게 이렇게 좋은 감상을 느끼게 했다는 것은 이 작품의 가치가 그만큼 높다고 생각한다. 지금껏 뮤지컬이나 연극 등 다른 형태의 공연예술은 관람한 적이 많지만, 오페라는 관람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렇기에 오페라라고 하면 쉽게 다가가기가 힘든 장르에, 보이지 않는 장벽같은 것이 존재했는데, 이 작품을 통해서 오페라도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문화예술이구나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이 기회를 통해서 다양한 작품을 관람하고 싶고 나아가서는 해외에서도 직접 관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극에서, 가난한 네 명의 예술가들은 파리의 다락방에서 생활하며 추위와의 사투를 벌인다. 가난한 예술가라는 소재는 공연에서 자주 다뤄지는 소재인데, 이 시대에 보헤미안 예술가들은 비단 프랑스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기에 꽤나 친숙한 소재로 다가온다. 예술가들은 가난하다는 인식이 보편적인 시대였고 그것이 현실이기도 헀으니 말이다. 이 극에서도 결국 ‘가난'때문에 벌어지는 일들이 대부분이라고 느꼈다. 그 중 인상깊었던 부분은, 자신이 쓴 희곡을 태워버리는 로돌포의 행동이었다. 예술가에게 본인의 작품은 본인 세상의 전부일텐데 그것을 땔감으로 써서 난로를 지피는 모습에 이들의 삶이 얼마나 힘들고 간절했는지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예술 활동을 정진하기 위해 예술 작품을 소멸시키는 행동이라니. 특히나, 이런 보헤미안 예술가의 비애가 오페라라는 형식의 예술 작품에서 드러나는 것도 입체적으로 느껴져서 좋았다. 어쩌면 시대반영이 들어간 부분 아닐까 싶었다. 이런 부분을 통해 관객과 공연의 관계가 조금이나마 허물어짐으로써 관객들에게 더 몰입을 가능하게 한다고 느꼈다.



사실 이 극을 보고있노라면 뮤지컬 <렌트>도 함께 떠오른다. 렌트에서는, 뉴욕에 사는 보헤미안 예술가들의 희로애락이 나오는데 라보엠의 주인공들과 참 닮은 점이 많다. 당장의 삶을 이어나가기도 힘들 정도로 가난하지만 예술은 포기할 수 없는 예술정신이 드러난다는 점과, 사랑에 자신의 인생을 바치고 가난이 때로는 그 사랑에 제약이 된다는 점이 오버랩 되었다. 이처럼 가난한 예술가들의 이야기에 관객들이 열광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그들의 삶이 특별히 대단하거나 위대한 삶이 아니어서라고 생각한다. 충분히 우리 주변의 이야기일 수 있고, 그만큼 쉽게 공감대를 형성하는 소재로써 관객들에게 다가가기에 전세계 사람들이 열광할 수 있는 것 아닐까. 그리고 그런 소재가 공연예술이라는 장르를 통해 나타난다는 아이러니함도. (알고보니 렌트가 라보엠을 현대식으로 재해석한 작품이었다는 후문!! 너무 충격받음 생각해보니 Light my candle도 그렇고 똑같은 장면이 꽤 있더라 왜 몰랐을까)



이 작품에서는 사랑도 꽤나 큰 주제로 다뤄진다. 비록 사랑에 대한 개개인의 감상은 모두 다르겠지만, 가장 뭉클하게 와닿은 장면은 ‘Addio, senza ranco’ 아리아 장면인데, 특히 4중창으로 두 커플이 각자의 방식으로 이별을 고하는 장면이 인상깊었다. 미미와 로돌포는 아직 서로 사랑하지만 미미의 악화된 몸 상태로 인해 이별을 고할 수 밖에 없는 사랑에 서로 헤어짐이 최선의 선택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이별을 이야기하는 장면에 눈물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반면에, 무제타와 마르첼로는 서로의 관계에 신뢰가 깨져 이별을 고하는데 같은 장면에서 이 네 연인들이 서로 다른 이유로 이별하는 부분이 대립되어 나타나 흥미로웠다. 결국 마지막 부분에선 서로에게 미련이 남아있다는 것을 보여주지만, 한 장면에서 네명의 연인들이 자신의 사랑을 떠난다는 점이 각자의 상황을 더욱 부각시키는 것 같아서 좋은 연출이었다고 생각한다.



예술성과 작품성이 매우 뛰어난 작품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극에서 불편한 지점이 아예 없었다고 한다면 그건 거짓말일것이다. 당연히 19세기에 만들어진 작품이란 점은 감안해야 하기는 하지만, 이 극에서 여성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이 21세기를 살아가는 여성의 관점에서는 불편한 모습들이 없지 않아 있었다. 미미라는 여성 캐릭터를 수동적이고 평면적으로 표현했다는 점과, 마지막에 죽음에 다다르는 캐릭터도 여성이라는 점에서 특히 신파가 묻어있다고 느꼈다. 또한, 물론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들은 아니었지만 로돌포가 미미와 헤어진다고 말할때 미미에게 바람끼가 있다는 이야기를 꾸며내고 그런 이야기들로 본인의 행동을 정당화하려는 듯한 모습도 이 극에서 미미라는 여성 캐릭터가 얼마나 평면적으로 비춰지는지 볼 수 있다. 남성 주인공의 감정이 우선시되고 남성 서사 위주로 흘러가는 듯한 인식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극에서는 당대 같은 시기에 제작된 오페라들과 비교하면, 귀족이 아닌 일반 서민의 삶을 소재로 삼았다는 점과 보편적인 소재인 사랑이라는 주제를 둘러싼 다양한 종류의 캐릭터들이 입체적으로 살아숨쉰다는 점을 통해 작품성은 높이 평가받아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푸치니의 위대한 음악이 극과 잘 어우러져 그 가치를 더 높인다. 이 극을 관람하고 나서 마음 한 켠으로는 이런 자유로운 삶도 꽤나 행복하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요즘같은 바쁘게 흘러가는 사회 속에서 이런 가치를 찾기가 쉽지 않은데, 예술과 사랑 두 가지 가치가 삶의 전부로써 사는 삶도 제법 낭만적이지 않을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