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뮤지컬 하데스타운, 캣츠 그리고 라이온킹

by 준희

죽음이라는 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두려워 할 추상적이고 보이지 않는 공포이다.


그 누가 한번도 죽음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았던 적이 있었을까.​


본 글에서는 내로라하는 뮤지컬 작품 세 개를 중심으로 죽음을 다루는 방식에 대해 적어보려 한다.​


얼핏 보면 이 작품들이 어딜 봐서 죽음이라는 테마를 다루고 있나 싶겠지만, 나에게 죽음에 대한 인식을 바꿔준 세 작품을 골라봤다. 이 작품들은 죽음을 아름답게 표현하여 되려 삶에 대한 희망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정말 애정하는 작품들이다.​


놀랍게도, 뮤지컬 라이온킹의 메인 테마와도 같은 첫번째 넘버 ‘Circle of life’ 가 세 뮤지컬을 다 어우르는 주제와도 같다. 삶의 순환을 수미상관으로 보여주는 뮤지컬 라이온킹, 순환되는 삶의 과정에서 영원한 사랑을 다룬 뮤지컬 하데스타운, 그리고 삶과 죽음의 순환을 고양이들의 인생을 통해 보여준 뮤지컬 캣츠.​


(스포일러 주의)

​1. Hadestown

사실, 하데스타운은 원래도 죽음이라는 주제를 전체적으로 갖고 가는 작품이기에 어쩌면 죽음을 다루는 극이라는 말이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서도 이 작품이 나에게 준 의미는 꽤나 크다. 죽음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준 극이기에.

이 극 전체에 녹아있는 은유적 연출들이 특히 참 아름다워서 좋았다. 그것이 결국 모두 ‘죽음’을 의미한다는 것 자체도. 가령, 지옥 즉 죽음의 공간으로 가게 된 에우리디케에게 운명의 여신들이 (애도의) 노래를 부르며 쓰고있던 터번에서 베일을 내린다. 그리고는 무반주로 애도의 노래를 부른다. 지옥의 일꾼이 되기 위해 지옥행을 택한 에우리디케의 모습을 통해서도 가난이 가져온 죽음이라고 해석을 하였는데, 그런 그녀에게 애도를 하던 여신들의 모습이 인상깊다. 그런 에우리디케를 찾으러 지옥행을 택한 오르페우스에게 지옥의 문턱에서 여신들은 등불을 들고 경계한다. 지옥의 문지기 케르베로스인 것이다.

사실, 죽음을 다룬 작품이라는 것보다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참 각색을 잘 한 작품이라고 느꼈다. 원래도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스토리 중 하나인데, 그것을 완벽하게 희극화 하였다고 느꼈다. 자연의 섭리인 죽음이라는 관념을 아름답게 풀어낸 하데타같은 예술 작품들을 너무너무 좋아한다.​


모든 부분에서 죽음의 의미를 암시하고는 있지만 그 어떤 단어도 직접적으로 칭하지 않으면서 그 관념을 표현하는 것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에우리디케의 죽음이라던가, 계절의 변화라던가 이 신화에서 다루는 자연의 섭리들이 당연하지 않게 나타나서 좋았다.​​


2. ​Cats


뮤지컬 캣츠의 마지막 부분이자, 그리자벨라가 부르는 넘버 메모리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그 바로 다음 넘버인 ‘Up to the heavyside layer’라는 넘버를 가장 좋아한다.​


(정말 좋고 아름다운 넘버이니 꼭 한번씩 들어보길 바란다. https://youtu.be/pKH63cRJ3p4 )

이 넘버에서 그리자벨라는 천국으로 올라가는데, 그 부분 가사를 보면 ‘up to the heavyside layer past the Russell hotel’ 이라는 구절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여기서 heavyside layer의 본래 의미는 지구의 대기층이지만 이 극에서는 천국과도 같은 의미로 나타난다. 고양이들이 가장 가고 싶어하는 곳으로 묘사되며 죽음이라는 무시무시한 공간이 아닌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공간 쯤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고양이들이 다같이 모여서 누가 heavyside layer로 갈 것인지 정하는 장면도 나온다. 일종의 죽음을 표현한 장면이겠지만, 그곳에 가는 고양이를 영광스럽게 표현한다는 점이 죽음을 참 아름답게 표현하였다고 느꼈다. 그걸 보는 관객들도 어쩌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덜게 되는 그런 연출이 아닐까.​


(그리고 Russell hotel은 그곳으로 가는 길에 위치한 호텔인데, 죽음의 과정에서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위치 쯤으로 나타나는 것 같다.)​


이토록 아름답게 표현된 죽음의 과정을 통해, 고양이들은 죽음으로 이르는 길이 외롭지 않도록 다같이 모여서 이승에서의 마지막을 기린다.

본 장면을 보며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많이 떨쳐낸 것 같다. 정말 극장에서 이 장면을 보고있으면 이렇게도 아름다운 죽음이라면 맞이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진다.​


사실, 한동안 죽음에 대해 생각을 정말 많이 하고 (어쩌면 지금도) 두려워하던 시기가 있었는데 이런 작품들을 통해 죽음이 무섭기만한 과정은 아니구나 하고 위로 아닌 위로가 된 거 같다. 어쩌면 죽음도 당연한 삶의 이치이기에 무서워할 필요가 없는 것인데.


3. ​Lion King


라이온킹의 첫 넘버, ‘Circle of life’ 즉 인생의 순환이라는 곡은 이 극 전체를 어우르는 주제와 같은 곡이다.

처음에 무파사와 사라비가 프라이드락을 오르면서 시작된 극이 이런저런 스토리를 겪고 다시 심바와 날라가 프라이드락을 오르면서 완벽한 수미상관의 구조로 극이 끝난다.

극 내에서 심바의 아빠인 무파사가 일종의 계략으로 죽음을 맞고, 그런 아버지의 죽음을 자신의 책임이라 자책하는 심바의 모습이 나온다. (결국 스카의 가스라이팅이었지만.) 심바는 자신의 고향을 떠나 자신이 누군지도 잊은채 그냥 목적없는 삶을 이어나가는데, 그 때 계시자와 같은 라피키가 심바에게 나타난다. 그러면서 아버지의 환영을 보여주고, 그는 항상 마음 속에 살아있다고 잊지 말라고 한다.

이 부분을 통해 상실을 극복하는 법을 깨달은 것 같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 믿고 기억하는 사람 속에는 영원히 살아있음을 전달하려던 것이 아닐까.​


이 극이 주는 메세지가 너무 좋다. 어떻게보면 자기 자신을 찾아나가는 여정인데 그 속에서 아픔을 이겨내는 법을 알려줘서 볼때마다 울컥한다. 정말 여러모로 내 삶의 이정표같은 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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