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투

by 숲 속 꿀단지


2021-10-06 하루 사진 한 장.jpg




열대야가 지속되던 한여름,

매일 잠을 설쳤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밤새 끝이 없는 혈투가 있었다.

바깥이 어두워 지면

슬슬 모기는 안으로 들어온다.

아파트에 살고 있으니

베란다 배수관을 통해

수직 이동이 가능하다.

아마 올라오다 잠시 쉬다 올라오고 그럴 것 같다.

그리고 사람 타라고 만든 엘리베이터에 무임승차하는 모기도 있을 거다.

아무튼 살면서 모기 물리는 게

뭐 대수로운 일이라고,

셀 수 없을 정도로 모기에게 헌납한 피가 얼만데.

그래도 이번 혈투는 어디에도 하소연할 데가 없어

허공에라도 외치고 싶다.

자기 전, 안경을 쓰고 방 구석구석을 살핀다.

모기가 자주 출몰하는 구석진 곳을 슬쩍 건드리면

모기가 등장하곤 한다.

눈에 잘 띄는 벽지에 붙어 있는 모기는

내가 잡아야 하는 안쓰러운 모기다.

불 끄기 직전

꼼꼼한 탐색으로 두 마리를 잡았다.

(이미 저녁 때부터 내 방에서만 5마리 넘게 잡았다..)

창문도, 방문도, 붙박이장도 다 닫힌 상태에서

진행되는 탐색 작업이므로

나는 오늘의 혈투는 이걸로 끝이라 생각하고

도구를 침대에 놓고 방 불을 껐다.

한창 깊이 잘 자고 있을 때

모기생퀴가 나타났다.

대체 어디에서 나타난 건데.

몇 시간 만에 쑥쑥 자라서 성체가 된 거니?

이 쯤 되면 누군가 내가 잘 때

내 방으로 모기를 방생하는 게 아닌가 하는

합리적 의심이 그럴 듯 하다.

물론, 이건 아니지만.

잠결에 너무 가려워서

참을 수가 없었다.

여기저기 몸 곳곳을 물어

긁다가 약이 점점 오른다.

비몽사몽 상태로 오른쪽 종아리 긁다가

왼쪽 종아리 긁다가 팔 긁다가

세어 보지 않았으나

침대에 있는 동안 밤새 스무 방 정도는

물린 것으로 추측된다.

한 마리가 아닌 여러 마리가 나타났던 건 분명하다.

이건 잠을 자는 건지 마는 건지

점점 신경질이 나려고 했다.

이어플러그를 뚫고 들어오는

“위잉~~윙~”

잠을 방해하는 건 용서할 수 없다.

관용을 베풀기 상당히 어려운 부분이다.

우리집은

1인 1 선풍기를

초과 달성(사람이 5명인데 선풍기가 5대 넘음)하여

구비하였고,

그 두 번째 타자로

올해는 1인 1 전기채를 갖춘 상태다.

*

나는 침대 오른쪽 구석에

전기채를 놓는다.

내 손이 전기채의 손잡이를

(특히, 두 개의 버튼을 눌러야 하는 부분)

재빠르게 쥘 수 있는 허리와 허벅지 사이에

전기채 위치를 잡고 잠에 든다.

대체 탐색 작업을 마치고 잠에 들었음에도

한 마리도 아닌 몇 마리인지 추정도 안되는

여러 마리의 모기생퀴가 어디에서 나타난 건지,

어떻게 들어온 건지 도통 모르겠다.

그렇게 나는 잘 자고 있다가 가려워서 깨고

이어플러그 안으로 들어오는 윙윙

귀 근처에서 나대는 소리에 깨고

몸은 계속 깊이 잠에 빠지려고 하는데

적당히 좀 하지..

눈은 뜨지도 않고 감은 채로

(아마 미간을 조금 찌푸렸을 거다.)

전기채를 잡아

감으로 모기가 있을 것 같은 곳을 향해

양쪽 버튼을 동시에 누르며

국가대표 배드민턴 선수가 된 것처럼

가볍고 빠르게 전기채를 허공에 휘저었다.

“타닥. 타다닥.”

소리로 알 수 있다.

몇 초 내로 타는 냄새가 나면

확실히 모기를 잡은 거다.

내가 밤새 이 배드민턴 채를 몇 번 휘둘렀는지 모른다.

내 방에서 모기 주주총회 열리나?

잠 좀 자자…!

무시하고 자려고 애써 집중하고

잠에 빠져들었다 살짝 깨면

이미 몇 군데 물린 상태다.

얘네 진화가 왜 이렇게 빠른 건지

속도도 빠른데, 가렵기도 엄청 가렵고

건드리지 않았는데 따가운 경우도 있다.

하도 잠결에 배드민턴 연습을 했더니

점점 오른쪽 손과 팔에 힘이 빠졌다.

안대를 쓰고 있음에도

얼굴 근처에서 깝죽대는 모기를 잡느라

안대 아래쪽으로

전기채의 빨간 불 켜진 게

훤히 보인다.

절망적이었다.

잠 좀 자자, 정말로.

헌혈할 테니 잠은 방해하지 말아줘라.

전기채 잡고 휘적거린다고 팔이 아파.

꿀잠 자고 싶단 말이야!

아직도 몇 마리가 있었는지 파악되지 않는

그 새벽에..

나는 물리기도 엄청 물리고

가려워서 긁다가

모기채 들고 흔들다가

귀에 때려박는 세레나데 듣기를

반복했다.

지친다.

너무 지쳤다.

깊이 잘 자고 싶다.

여름에 마른 장마가 심했더니

뒤늦게 가을에서야 모기가

이전보다 더 활개를 친다.

모기는 해충 맞아..

잠을 방해하는 모든 것,

해로운 것이니.

잠을 자는 건지 마는 건지

피는 피대로 주고

가려움 및 세레나데는

그거대로 다 받고.

모기를 위한 헌신이자 봉사였다.

물려도 좋으니 잠 좀 깨우지 말라고!!!

속으로 외쳤다.

그리고 이제 기운이 다 빠진

오른쪽 손으로 전기채를 쥐고

허공에 있는 모기를 잡으려고 하다가

나는 너무 지치고 힘이 빠진 나머지

순간 스르륵 잠이 들고,

쥐고 휘두르던 전기채를 침대로 내려놓는다.

문제는, 몸 곳곳을 물리니

물린 위치를 긁거나

내 피부에 앉지 말라고

팔, 다리를 휘저었더니

온 몸을 감싸도록 포근하게 덮은 이불은

구석에 구겨진 지 오래고

나는 이불을 덮지 않은 상태였다는 거다.

그렇게 나는..

내가 쥔 전기채로,

너무나 자연스럽게

스르륵

내 허벅지에 전기채를 대면서

내가 감전이 된다.

“웩!!!!”

“따거(워)!!!!!!!”

잠이 확 깼다...

이런 십장생.. 분하다..

생명에 지장이 가는 정도는 절대 아니지만,

“악!” 소리는 날 정도의

전기가 흐른다.

절대 태연한 척 할 수 없는 세기다.

한숨이 나왔다.

따끔해서 눈물이 찔끔 고였다.

이건 전기채로 결국 나를 잡아야 끝나는

혈투인 걸까.

어두컴컴한 새벽에

너무 서러웠다.

나 정말 서러웠는데,

깊은 새벽에 이런 거 말할 데도 없고…

지치고 괴롭고

아프고 따갑고 가렵고

울고 싶었다.

그 사이에

손가락이 간지럽다.

전기채를 쥐지 않는 왼쪽 손가락을 물은 거다.

아우, 살 없는 데라 더 따가워.

하...

날 밝고 확인하니

물어도 하필 중지를 물었다.

모기, 너, 뻐큐라고 알아…?^^

살다 살다 전기채로 해충 잡다가

내 손으로 나한테 전기채 가져다댄 건 처음이다.

내 피부에 전기가 통했을 때

너무나 짜릿했다.

맘 같아선 서러워서

침대에 앉아 울고 싶었다.

밤에 잠을 자려는 게

이렇게 방해 받을 일이야?

나 깨우지 말고,

내 피 가져가는 건 괜찮다고 했잖아.

어쩜 이리 염치가 없고 뻔뻔할 수 있어?

내가 뭘 더 해 줘야 하는데…

나 자칫 깊이 잠들었으면

내 오른쪽 다리 태울 뻔했어.

연기가 나고 천장의 스프링클러가 작동했으면

내 방 순식간에 수영장으로 변신하는 거라고.

그러면 난 더 큰 감전에 노출되고

우리 가족이 내 생명 보험금을 탈 수 있는 지경까지

갔을 수 있다고.

다른 때는 그러려니,

너도 먹고 살아야 하니

피를 찾는 거니

몇 방 물리는 건

같은 지구를 살아가는

생태계 간 배려라고 생각했다.

사실, 순전히 인간의 호의지.

이제 그 생각에 변화가 나타났다.

인마는 해충이며, 이 혈투는 둘 중 하나가

죽을 때까지 진행되는 혈투인 것이다.

피를 지키려는 자, 숙면을 취하고자 하는 자,

그리고

주린 배를 채우려는 배고픈 모기 생퀴.

아주 얌생이가 따로 없어.

내 피는 나도 필요해.

그리고 애초에 내 것이야.

조금 나누려는 마음은

이제 없다.

전기채로 내 몸에 전기가 통하면서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눔, 그런 거 이제 없어.

가을의 초입에서

이 혈투는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예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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