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같은 습도에
땀 흘리는 걸 피하기란
불가능하다.
땀은
그렇게 보이지 않았는데
지내다 보니 좋은 사람,
시간을 들일수록 더 좋아지는 사람,
(부정적인) 고정관념이나 편견을 갖고
거리를 두었지만 진국인 사람이다.
땀이 막 나기 시작하려고 할 때
표정이 찌그러진다. 속으로 투덜댄다.
아, 땀 나기 시작한다.
땀이 한 번 나기 시작하면,
땀이 나게 된 원인을 제거해도
(뛰는 걸 멈춘다, 껴입은 옷을 벗는다, 그늘로 이동한다, 에어컨을 켠다, 뜨거운 음식을 그만 먹는다 등)
얼마간은 땀이 계속 난다.
땀이 멈추기까지 약간의 시차가 존재한다.
이건 언제 확실하게 경험했느냐 하면,
1분 1초가 귀한 평일 아침이다.
지하철역에 도착했는데
전광판에 ‘당역 접근’이라는 글자가 떴을 때
그 네 글자를 확인하자마자
전력 질주가 시작된다. 항상 동료가 존재한다. 나만 뛰는 경우는 드물다.
개찰구에 카드는 찍었고, 이제 몇 십개의 계단을
미끄럼틀 타는 것처럼 미끄러져 내려가야 한다.
가상의 출발 드림팀의 도전이 시작되는 거다.
속으로 출발 드림팀 bgm을 재생한다.
도전 버튼 눌렸다~
계단 내려가는 게 핵심이다.
다치지 않고, 부딪히지 않으면서
신속하게 이동한다.
여기에서 퀵실버처럼 발빠르게 행동하지 않으면
열차는 떠나고 스크린 도어에 비친 추노 한 명과 마주하게 된다.
(솔직히 ‘당역 도착’이라고 뜨면,그건 보내줘야 한다.
이건 내가 스파이더맨이라 지하철 바깥에 붙어 갈 수 있는 경우 아니면 탑승은 어렵다.
숱한 실험을 해 본 결과 그렇다.)
그렇게 혼신의 힘을 다해 열차에 탑승하면
객실 내 눈을 감고 있거나, 책이나 영상을 보는 평화로운 사람들과 달리
이제 나는 내 움직임에 대한 피드백이 나타날 시간이다.
땀이 맺히고 흐르기 시작한다.
나 혼자 땀과 보이지 않는 사투가 진행된다.
멈췄는데 그때부터 땀이 쏟아지는 그 상황은
항상 찝찝하고 괜히 주변을 살피게 된다.
(머리에 열이 많아 땀이 많이 난다.
똑같이 땀을 흘려도 내가 더 티가 많이 나서 사람들이 얼굴 보고 놀랄 때가 있다.)
잠깐 땀이 맺히고 흐르다가 그치면
아우, 그건 어딘가 기분을 침체되게 만든다.
하지만, 운동이나 야외 활동 등으로
땀을 한 시간 이상 계속 흘릴 때는
이상하게 땀을 흘릴수록 기분이 좋아진다.
몸도 마음도 가뿐해 진다.
오늘 저녁도 동네 구석구석
세 네 시간 돌아다니며 도보 배달을 하니
마스크가 내 피부인가, 티셔츠와 바지가 내 몸인가 싶다.
몸에 들러붙는 옷과
머리에서 뒷목으로 흘러내리는
땀이 여간 성가신 게 아니었다.
‘제발 마스크라도.. 마스크라도 없이 다니고 싶다..’
라는 혼잣말을 기운은 빠졌으나 한 글자씩 또박또박 말한다.
이것도 땀 흘리기 시작한 몇 분 사이에 신경질적으로
나타나는 반응이고, 그 이상 시간이 흐르면
감정이 옅어진다.
땀을 잠시 식혀주는 바람이 한 번
가볍게 불면 한순간에 마음이 들뜬다.
냉방 중인 가게 문이 열려 바깥으로 시원한 공기가 나와 만나면 세상 인자한 미소를 짓게 된다.
시간이 더 흐르면, 몸을 직접 움직이며
땀 흘려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또, 집에만 있으면 실내에서 운동하는 것과 별개로 한정된 공간에서 오는 답답함을 자주 마주해야 하는데, 이 움직임이 그런 스트레스를 덜어준다는 점에서도 감사하다.
걷기 운동을 하면서 소액의 리워드(용돈) 받는다고 생각하면 이 시국에 누릴 수 있는 최선의 일석이조가 바로 이거다.
아무래도 오토바이와 자전거 이용하는 사람이 많고
도보는 (특히나 이런 계절에) 흔치 않다.
가게에 들어서고 배달지에 음식을 전달하면서
여자가 온 걸 보면 흠칫 놀라는 게 흔하다.
그럴 때 묘한 쾌감을 느끼기도 한다.
사회적 통념을 깨부쉈다는 데에서 오는 짧은 희열이 있다.
도보는 일이 많이 주어지는 게 현실적으로 반가울 상황은 아니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도보라는 건 시간을 하루 종일 준다고 한들 몇 시간 정도면 에너지 고갈로 걷지 못한다. 하루에 아무리 애를 써서 오래 걸어다녀도 한계가 분명 찾아온다. 보통 20,000보 넘으면 횡설수설하다가 발이 아파서 걷는 건지 발을 바닥에 끄는 건지 모르는 증상이 나타난다. 최고로 오래 걸은 건 30,000보 정도인데 이때는 한 걸음 뗄 때마다 내가 이 발을 내일도 쓸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찰을 하기 시작한다. 이런 날은 발을 마사지하면서 사람한테 건네듯 말을 하게 된다.
“오늘도 정말 고생 많았어. 긴 시간 걷느라 수고했어. 다 네 덕분이야. 고맙다, 고마워! 앞으로도 잘해 보자.”
그렇게 동네에서 몇 시간을 걸어서 이동하고 나면
정말 피곤하다. 감정을 내보낼 기운이 없고, 터덜터덜 걸으며 집으로 간다.
오늘은 오후까지 편두통을 앓다가
저녁 때 나갔더니 상태가 메롱이었다.
땀을 몇 번 닦았는지 가늠할 수 조차 없었는데,
오늘 노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신기한 변화를 겪었다.
몸이 천근만근이고
땀을 수시로 흘려 피부는 번들거린다.
집이 가까워 질수록
발걸음이 사뿐사뿐 가벼워 진다.
나는 돌 덩어리였는데, 점차 솜사탕으로 변한다.
건물에 들어와 홀로 엘리베이터에 타자
정말 ‘곧’ 씻을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찼다.
혼자 탄 엘리베이터 안에서
그 기쁨을 연체동물의 움직임처럼 표현했다.
집이 코앞이다. 엘리베이터 타고 올라가던 중,
샤워할 생각에 신나서 노래를 흥얼거리고 리듬에 몸을 맡긴다.
이런 날은, 개운하게
씻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덩실덩실 어깨춤이 나온다.
씻고 싶으면 언제든 씻을 수 있다는 사실 한 가지가 지닌 영향력은 제법 크다.
땀이 흘러서 짜증이 난다는 감정적 반응보다 무언가 열정을 들여 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 크게 다가온다.
이렇게 되면 그 일에 더 집중하게 된다.
흘린 땀을 씻어낼 수 있다고 보장되는 것만으로
땀을 흘려도 그러려니 한다.
오늘은 그 당연한 게
문득 낯설게 다가왔고!
몸에 붙은 꿉꿉함을
물로 씻어 내는 게
그 어느 때보다 상쾌했다.
몸도 마음도 개운하고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