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추운 여름 02
어느 여름, 뜨거운 바람이 불고 조금도 걷지 못할 만큼 다리가 무거워지는 날이 있다. 영혼까지 땀이 가득 차 금방이라도 녹아내릴 것처럼 느껴질 때면 얼른 영혼을 식혀주어야 한다. 나는 그럴 때 초계국숫집을 찾는다. 적당한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으면 선한 인상의 아주머니가 메뉴를 건네주신다. 위가 작은 편이라 초계국수와 더불어 2줄이 기본인 전병까지 시킬지 말지 고민한다. 남길 것이 분명하지만 둘 중 어떤 것도 놓칠 수는 없기에 아주머니께 "저 초계국수 하나랑 전병 주세요."라고 패기 있게 주문하니 아주머니께서는 "어머, 혼자서 다 드실 수 있어요? 전병은 한 줄만 줄까요?" 하신다. "너무 좋죠!" 야호.
금세 초계국수 한 그릇과 전병 한 줄이 나왔다. 뽀얀 면, 잘게 찢긴 닭고기에 얇게 저민 무를 곁들여 얼른 입에 넣는다. 면은 쫄깃하고 닭과 무는 새콤달콤하다. 시원한 국물을 들이켜고 나서 바삭하고 따뜻한 전병도 크게 한 입 물어본다. 역시, 시키길 잘했어. 잠시지만 짧은 에세이집을 펼쳐 음식을 우물거릴 동안 조금씩 읽는다. 그러다 보면 주변의 소리도 조금씩 귀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여기저기서 후루룩, 후루룩하는 소리가 들린다. 서로 웃으며 이야기하는 소리도 들려온다. 모두가 같은 공간에 모여 같은 것을 먹고 같이 행복하다는 사실에 왠지 웃음이 난다. 더운 바람도, 무거운 다리도, 괜한 걱정과 고민도 어떻게 되든 상관 없어지고 상쾌한 마음으로 가게를 나선다. 역시, 여름에는 초계국수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