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추운 여름 07
핫초코 여행이라는 것을 다녀온 적이 있다. 이게 무슨 여행이냐 하면, 일본 도쿄에 있는 카페들을 돌아다니면서 어떤 핫초코가 맛있는지 하나씩 마셔보는 여행이다. 사실 여행이라기보다는 새로운 초콜릿 음료 개발을 위한 카페 직원들의 출장에 통역사로 따라간 것뿐이었지만. 도쿄를 천천히 산책하며 좋은 카페를 한 곳 한 곳 알아가는 것은 참으로 즐거운 일이었다. 온갖 커피와 음료들을 수없이 많이 마셨다. 그중에 기억에서 떠나지 않는 카페들이 몇 군데 있다. 요요기 공원 서쪽에 있는 MINIMAL TOMIGAYA는 초콜릿 전문점이다. 메뉴를 살펴보니 심상치 않은 녀석이 하나 있다. 카카오 펄프 주스. 호기심과 개발에 대한 도전정신으로 시도해 보았지만, 나처럼 달콤한 초콜릿을 기대하고 마신다면 으악하고 놀랄만한 맛이다! 조금 더 걷다 보면 유명한 푸글렌 커피점이 있고, 가게는 작지만 힙한 아이템과 바닐라, 초콜릿, 바나나, 캐러멜, 코코넛 등 다양한 맛의 라떼를 파는 THE LATTE TOKYO도 들러볼 만하다.
에비스 역 근처의 사루타히코 커피점도 좋았다. 그저 동네의 작은 커피점이겠거니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체인으로 다른 지점도 몇 개 있다고 한다. 아늑하고 친근한 곳으로 하루 종일 카페를 찾아 떠돌아야 했던 우리에게 편안한 휴식을 주었다. 이곳을 찾아간 이유는 바로 '포도 풍미를 가진 생 캐러멜 라떼'를 마셔보기 위함이었다.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한 입 머금자 포도와 캐러멜과 라떼가 입안에 한데 어우러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함께 출장을 갔던 동료들도 깜짝 놀라 눈빛을 반짝였고, 출장을 마치고 한국에 들어오자마자 포도 주스부터 시작하여 온갖 포도 시럽을 사는 등 난리도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곳은 츠바키야이다. 신주쿠에서 점심 식사를 마치고, "자, 이제 밥도 먹었으니 카페 한 곳 더 가 볼까요?"해서 우연히 눈에 띄어 무작정 들어간 곳이었다. 내부는 묵직하고 짙은 고동색으로 가득한 고풍스러운 공간이다. 꽃 모양의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이 귀엽다. 참고로 츠바키야의 츠바키는 '동백'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역시나 커피와 핫초코를 주문했다. 나는 막 나온 핫초코를 한 모금 마셔보고는 맹맹한 맛에 실망해 버렸다. 동료들이 웃으며 함께 서빙된 투명한 액체를 조금 넣어보라고 알려주었다. "이게 뭐예요?" "럼이예요, 핫초코에 넣어서 먹기도 해요." 조심스럽게 럼을 한두 방울 넣고 다시 한 입, 핫초코는 마법처럼 완전히 다른 풍미를 보여주었다. 우리가 핫초코에 기대하는 바로 그 맛, 너무 달지 않으면서도 깊고 진한 바로 그 맛이었다.
많이 걸으면서 도쿄를 눈으로 담고, 동료들과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고, 이런저런 카페들을 만나고, 커피와 핫초코를 질리도록 마셨다. 그때의 여행을 생각하면 기억 속에서 진하고 달콤한 향이 함께 난다. 지치고 피곤할 때면 언제든 꺼내어 마실 수 있는, 럼 한 방울이 들어간 마법의 핫초코 한 잔 같은 소중한 추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