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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아 PORA Aug 31. 2021

HOW DEEP IS YOUR LOVE

조금은 추운 여름 08

  어린이 도서관에서 근무할 수 있었던 것은 큰 기쁨이었다. 아이들을 참 좋아했고, 아이들도 내 마음을 잘 알아주었다. 우리는 참 즐겁게 놀았다. 도서관을 자주 찾아오는 친구들 중에는 필리핀에서 온 남매가 있었다. 12살이고 누나인 사이자는 책을 좋아하고 매사에 차분하며 침착했다. 아직 7살인 남동생 코코는 도서관을 달리면서 신나게 놀다가 누나에게 자주 혼이 났다. 그럴 때마다 코코는 나에게 와서 투정을 부리며 영원히 끊이지 않는 긴 잡담을 시작했다. "장난감이 있는데 그건 문어 장난감이에요, 문어! 문어! 아, 그리고 어제 기차를 탔어요. 기차가 이렇게 슝, 근데 문어 장난감은 변신하면 엄청 큰 문어가 돼요." 영어로 얘기하는 통에 반 정도는 못 알아들었지만 내 영어실력이 허락하는 선에서 짧지만 열심히 대답해 주었다. '예아', ‘어허’같은 반응만으로도 코코는 대화 상대로서 충분하다고 인정해 주는 것 같았다. 

  하루는 아이들을 데리러 어머니가 찾아오셨다. 코코는 어머니를 보자마자 칭얼거리며 누나에게 혼난 얘기를 쏟아내고, 사이자는 그 와중에도 조용히 책을 읽었다. 어머니는 두 아이를 보고 못 말린다며 웃었다. 함께 대화를 나누던 중, 사이자의 노래 실력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한 번도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본 적이 없어서 놀랐다. 코코는 무척이나 자랑스러워 하는 얼굴로 "누나 진짜 잘해요!"라고 거들었다. 도서관에 있는 모두가 노래를 청하자, 사이자는 '휴, 어쩔 수 없지.'라는 표정으로 첫 소절을 불렀다. 


I know your eyes in the morning sun

I feel you touch me in the pouring rain 


  비지스의 'How deep is your love'였다. 조용한 도서관 안에 높고 낮은 음을 오가는 여리고 부드럽고 아름다운 목소리가 가득 찼다. 커다란 창문 밖으로 해가 지고 있는 오후 6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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