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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수레 Dec 15. 2021

개인주의자의 엄마 표류기

-임신 9개월, 처음 느껴보는 공포 

4월에 임신을 확인한 아기의 출산 예정일은 무려 다음 해 1월 4일.


참으로 아슬아슬했다. 뭐 대단한 작전을 세우고 수정란이 자궁 내벽에 착상하는 과정을 거친 게 아닌데 이렇게나 절묘한 출산 예정일이라니. 삐끗하면 12월 31일생의 억울함을, 조금 운이 좋으면 1월 극초 반생이 되는 게 우리 아기의 운명이었다.


아이의 출생 예정일이 1월인 것을 듣고 이모저모 검색하다가 가장 많이 느낀 점은 나 빼고 모두 다 계획임신인 것 같다는 점이었다. 겨울 생은 추워서 산후조리가 힘들고, 여름 아기는 엄마, 아기 모두 다 더워서 진이 빠지느라 힘들고, 차라리 봄이나 가을 출산이 좋으니 그때로 계획해서 아기를 낳았다 - 이런 스토리의 출산 후기가 굉장히 많았다. 뭐 세상 좋아진 덕에 어플 하나 깔면 병원을 안 가도 배란일을 알고 생리주기까지 정확히 계산이 되는 시대이긴 했다. 하지만 나는 3년 내내 안되던 임신이 저렇게 원하는 계절에 낳을 정도로 조절이 된다니.. 실로 임신의 세계는 무궁무진했다.


출산예정일을 한 달 앞둔 2016년 12월은 참으로 다사다난했다. 갑자기 타 지역으로 발령받은 남편 때문에 언제 애가 나올지도 모르는 부른 배를 안고 이사 갈 집을 보려다녔다. 36주에 한번, 37주에 한번 KTX를 타고 대한민국 지도를 세로로 찢었다는 이야기를 누가 믿어줄까!  그 와중에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 38주에는 3킬로에 근접해졌다. 아이가 걱정 없이 클수록 내가 느끼는 몸과 마음의 고통은 극심했다.


첫 번째 걱정은  누가 뭐래도 잘 키울 수 있을까?라는 원론적인 걱정.. 아이와 내 인생은 이제 앞으로 어디로 흘러갈까라는 생각이 24시간 중 12시간가량 나를 지배했다. 준비된 상태의 부모가 몇이나 될까?라는 어림짐작으로 자위하기도 했지만 그건 남의 이야기이고 내가 키워야 할 내 자식이 곧 세상에 나온다는 게 현실이었다. 내가 바람직한 부모가 될 수 있을까? 내가 가진 단점을 아이에게 대물림하지 않으며 평생을 키울 수 있을까? 어느 부모도 풀지 못했을 듯한 질문들을 던지는 동안 뱃속의 아기는 힘차게 태동했다. 


 그리고 하루 중 나머지 12시간을 괴롭히는 두 번째 걱정은.. 출산의 고통은 도대체 얼마나 아플 것인가라는 두려움.  그 두려움에 출산 2주 전부터는 정말로 제대로 된 밤잠을 자기 어려웠다. 


자연분만과 제왕절개 같은 건 사실 출산의 고통을 가늠하는데  별다른 토론거리가 되지 않는다. 왜냐?? 둘 다 미치게 아프기 때문에!!  나는 사실 한 번의 출산밖에 겪지 못했고 그 또한 자연분만이었기에 제왕절개의 고통을 알지 못한다. 다만 보통의 사람이라면 생살을 찢는 고통의 정도는 대략 예상할 수 있을 테니 어떤 분만방법이 더 아프냐고 따지고 드는 건 하등 쓸데없는 짓이란 것이다. 


난소의 자그마한 혹을 제거하느라 배꼽에 아주 작은 구멍을 냈을 때도 일주일을 끙끙대며 침대에서 살았고  보름 가까이 가슴팍에 가득 찬 이산화탄소로 인한 가스통에 시달렸다. 하물며 열 달을 뱃속 장기들을 누르던 양수와 태아의 무게를 견뎌내다 비로소 아이를 쏟아냈는데 분만 방법이 어떻다 한들 그 뱃속이 무사할까. 고통의 순위로 나눌 것 없이 출산의 고통은 그저 아플 것이라는 상상들이 나를 괴롭혔다. 


12월 31일 아침이 밝았다. 나는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상상을 하며 미동도 않고 오전 내내 침대에 누워있었다. 지금부터 진통을 해도 12시간만 견디면 12월 생이 아니라 1월생을 낳을 수 있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계산을 하기도 하고, 평균보다 큰 뱃속 태아가 성질이 급해 단 몇 시간 만에 세상 빛을 보겠다고 서두른다면 억울하게도 태어난 지 몇 시간 만에 두 살이 될 수도 있겠다 라며 고개를 흔들었다. 


예전 부부클리닉이나 주말드라마에서 보았던 장면이 떠올랐다. 시어머니가 용한 점집에 가서 태어날 아이의 사주를 미리 봐오며 이 날 이때 태어나야 아이가 좋은 사주를 타고 날 테니 그날에 맞춰서 제왕절개를 하라고 주문하는 장면. 그 말대로라면 사주도 만들어 낼 수 있는 세상이니 얼마나 속 편한가. 하지만 나도 남편도 순리를 거스르며 얻는 것은 그만큼의 대가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었다. 12월 31일 밤 10시에 태어나더라도 그것마저 아이의 운명이니 그냥 받아들이자고. 지금 생각하니 정말 뭘 모르는 속 편한 소리가 아닐 수 없다. 


그렇게 넋 놓고 누워있다가 감사하게도 잔잔한 호수처럼 아무런 진통도 없이 12월 31일의 밤을 맞이했다. 밤 10시가 지나갈 무렵 남편이 준비한 작은 케이크에 촛불을 켜고 자축했다. 지금부터 진통이 와도 아이는 1월 1일 생일 테니 , 태어나자마자 두 살이 아니라 한 살 인 것을 축하하는 의미였다. 지금 생각하니 축하할만했다. 아이의 인생에서 1월생이라는 것이 좋은 쪽으로 얼마나 큰 의미를 차지할지 아직은 모른다. 하지만 다섯 돌이 된 지금까지 아이는 1월생이라 아쉬운 것보단 얻은 것이 훨씬 많으니 그날 우리가 켠 촛불은 의미가 깊다. 


침대에 누워 12월 생이 아니라 1월생을 낳게 된 것으로 이제 나의 소임은 다 했다 라고 생각했다.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이제 나와도 된다! 혼잣말하며 잠든 기억이 난다. 그 말을 듣기라도 한 걸까? 1월 1일 새벽부터 수박을 엎어놓은 듯한 배가 꿈틀대며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가진통이 잔잔하게 시작되었다. 


처음 느껴보는 진통의 공포 속에서 약하디 약한 내 4번과 5번 허리디스크가 부들거리며 말을 걸어왔다. 


"인생 2막 준비됐니?"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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